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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함영주 회장의 '불원복'(不遠復)

Numbers_ 2024. 3.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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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함영주 회장의 '불원복'(不遠復)

재임기간 내내 재판 시달리면서도 경영성과 ‘뚜렷’후계 공론화 부담에도 이승열 강성묵 사내이사로무망지재(无妄之災), 예상치 못한 재난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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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내내 재판 시달리면서도 경영성과 ‘뚜렷’
후계 공론화 부담에도 이승열 강성묵 사내이사로

 

무망지재(无妄之災), 예상치 못한 재난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말인데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있습니다. 입우감담(入于坎窞), 깊은 구덩이에 빠진다는 의미입니다. 꺼내줄 사람도 없고, 발버둥 칠수록 더 빠지는 절망의 상황을 가르칩니다.

회장 재임 기간 내내 이른바 ‘채용 비리’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재판을 받는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을 보면 ‘무망지재’와 ‘입우감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10월 적폐 청산의 하나로 시작된 이른바 ‘금융권 채용 비리 사건’은 전임 박근혜 정부 시

절에 선임된 금융 CEO들의 연임에 정부당국이 부정적 태도를 보이면서 금융권 전체로 확산됩니다. 하나금융은 함영주 행장이 2015~2016년의 신입사원 채용과 관련 비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습니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지난해 11월 2심 재판부는 예상 밖으로 함 회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임원 자격이 상실됩니다. 같은 채용 비리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더욱이 1심에서 무죄였다가 2심에서 뒤집어져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함영주 회장의 ‘무망지재’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함 회장은 은행장 시절이던 2016년 팔았던 해외펀드에서 큰 손실이 나면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불완전판매와 내부통제 미흡으로 2020년 문책 경고를 받습니다. 문책경고를 받으면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됩니다. 함 회장은 이에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징계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징계 취소 행정소송을 진행했습니다. 2022년 3월 1심 판결에서는 패소했지만 함 회장은 지난달 말 2심 재판에서 극적으로 승소했습니다. 같은 DLF 관련 소송에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함 회장의 2심 승소는 당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함영주 회장의 ‘입우감담’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채용 비리 재판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DLF 관련 소송은 금융당국의 상고 여부를 봐야 하는데 전례에 비춰보면 상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융당국의 상고를 전제로 할 때 두 재판 모두 상고심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민사사건의 경우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상고심이 보통 4개월 이내에 빨리 끝나버립니다. 함 회장 관련 형사재판은 심리불속행 기각이 적용되지 않지만 상고 후 초기에  선고하지 않으면 상고심은 그야말로 하세월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재판의 상고심에서 함 회장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지 않는 한 하나금융의 CEO 리스크는 계속됩니다.

 

하나금융은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지난달 말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증권 사장을 신임 사내이사로 선임했습니다. 함영주 회장이 내년 3월 초 임기 만료되고, 함 회장의 상고심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CEO 공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승열 행장과 강성묵 사장은 함영주 회장이 오래전에 점 찍어 둔 후계자들입니다. 능력도 검증됐고 조직과 함 회장에 대한 로열티도 강하고 지역적으로도 대구경북(이승열 행장)과 충청(강성묵 사장)으로 안배됐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보완하고 경쟁하면서 함 회장은 물론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외이사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함영주 회장으로서는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 후계 구도를 공론화하는 게 크게 부담스러웠을 텐데 이번에 조직을 위해 결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역’에서는 ‘입우감담’의 어려움에 빠진 군주에게는 훌륭한 참모들의 보좌가 필요한데 이때 중요한 것은 화려하고 형식적인 게 아니고 소박한 질그릇에 술 한 병,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를 담아 바치는 진심 어린 소통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군주와 참모들의 마음이 통하면 끝내 허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승열 행장과 강성묵 사장이 참고할만합니다.

 

함영주 회장은 시골에서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입행한 후 평생 영업만 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금융 CEO 출신 중에 함영주 회장만큼 내세울 게 없는 사람도 드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판한 ‘앉아서 돈 벌고 출세하는 기획부서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김정태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될 때도 본인이 하고 싶어 한 게 아닙니다. 회장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며 고향으로 피신한 적도 있습니다. 회장에 취임한 뒤에는 재임 기간 내내 재판에 시달리면서도 하나금융을 KB금융 신한금융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금융그룹으로 키웠습니다.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건너지 못할 큰물이 있다면 뒤로 물러나 반성하고 덕을 쌓아야 합니다. 발버둥 칠수록 더 빠지는 상황이라면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사 죽으라는 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나면 다시 회복의 시간이 옵니다. 군자의 도는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자라납니다. ‘불원복 원길’(不遠復 元吉), 머지않아 회복되고 크게 잘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금융과 함영주 회장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