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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전반에 회사채 미매각이 발생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연초효과가 끝물에 접어들고 공사채 발행량이 급증하면서 자금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보고서를 통해 잠재 부실이 드러나고 4월 총선이 끝나면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이 줄도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석유화학·금융업, 미매각 속출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중견건설사인 HL D&I에 이어 석유화학 기업인 여천NCC도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
HL D&I는 지난달 말 7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조달하기 위한 수요예측에서 전액 미매각됐다. 만기 1년물에 공모 희망금리를 최대 8.5%까지 제시했지만 투심을 녹이지 못했다. 다만 인수단과 미매각 물량에 대한 총액인수 계약을 맺어 회사채 발행은 문제없이 진행됐다.
이같은 현상은 금융업계에서도 나타났다. 롯데손해보험과 푸본현대생명 후순위채도 미매각에 처했다. 롯데손해보험은 10년 만기, 5년 콜옵션(조기 상환권) 조건으로 800억원 모집에 48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이후 추가 청약에서 회사채를 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푸본현대생명은 10년물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고작 1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았다. 이자율 범위 상단을 6.8%에서 6.9%로 높여 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신에프앤아이는 1.5년물 400억원 모집에 360억원의 주문이 들어오면서 40억원 규모의 미매각을 맞았다.
연초효과 끝나고 공사채 발행 늘고…타격감 큰 건설업
업계는 기관들이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는 연초 효과가 약화됐기 때문으로 본다. 올 초 우량채는 물론이고 일부 비우량 회사채들도 연초 효과에 힘입어 수요예측 흥행을 이어갔다. 기 자금 집행이 마무리되면서 업황과 신용도에 따라 자금 조달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최근 공사채 발행량이 증가한 것도 수급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공사채 발행량이 늘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공사채 발행량은 5조4100억원으로 지난 1월 대비 약 63.4% 증가했다. △한국도로공사(9200억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8300억원) △경기주택도시공사(7100억원)을 중심으로 발행량이 늘었다. 공사채 발행 물량은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전반적인 자금조달 경직 현상은 건설업계에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신규 자금 조달은 물론 차환 여건까지 악화돼 대출금 상환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달 기업들의 감사보고서가 공시되면 자금 조달 여건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신용평가사 고위 관계자는 “결산 자료를 통해 잠재 부실이 단계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올해도 이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며 “부동산 PF에 노출된 금융사들은 지난해 충당금을 적립하면서 수익성이 저하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부분도 추가적으로 공개되면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고 신용평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총선 앞두고 ‘4월 경계령’도…시장 개선 가능성도
업계는 오는 4월 총선이 끝나면 부동산발 신용위기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관측한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평년보다 커 건설사들이 줄도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당 측 관계자는 “총선 이후 정부의 부동산 PF 위기 연착륙을 위한 지원책이 어떻게 전개될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지원 정책이 다소 약화돼 부실 기업을 정리하는 수순에 돌입할 경우 부동산 PF 위기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PF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신속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PF 시장 저하로 금융기관의 PF 연체율이 상승하고 PF 사업장의 부실 우려가 확대된다”며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해 PF 사업장의 개별 평가 중요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부동산 PF는 약 134조원에 달한다. 금융권 PF 대출 연체율은 2022년 1.19%에서 지난해 3분기 2.42%로 증가했다. 저축은행 PF 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2.05%에서 5.56%로 늘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건설사 자금 조달에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과 같은 대기업 계열사는 오버부킹 현상이 나타나는 반면 지원 계열사가 없는 곳은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은 총선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수출이 좋아지고 국제 수지가 개선되면서 조달 환경이 나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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