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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ELS 배상비율과 ‘책무구조도’

Numbers_ 2024. 3. 1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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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ELS 배상비율과 ‘책무구조도’

배상비율은 당국이 인정한 가치사슬의 책무구조도금융상품 시장리스크를 운용리스크로 전가하는 결정자기책임원칙 벗어난 배상으로 법무리스크 증대 우려투자상품 시장리스크를 KPI에만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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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비율은 당국이 인정한 가치사슬의 책무구조도
금융상품 시장리스크를 운용리스크로 전가하는 결정
자기책임원칙 벗어난 배상으로 법무리스크 증대 우려
투자상품 시장리스크를 KPI에만 책임 전가하면 안돼

 

3월 11일 ‘배상비율’을 포함한 금융감독원의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안’이 발표됐다. 금융권과 ELS 투자자들이 숨죽여 지켜보던 ELS 손실에 대한 판매사와 투자자 부담 비중을 정한 것이 핵심이다. ELS 손실 책임을 배분한 일종의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금융사 임원의 담당 직책별 책임 배분 내역)가 ‘분쟁조정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2023년 1~2월 만기도래한 ELS 잔액 2조2000억원에서 발생한 손실액 1조2000억원을 포함 6월말까지 예상되는 총예상손실은 현재 H지수 기준으로 약 4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최근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오롯이 가계 혼자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규모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배상비율’은 ‘판매사 요인’에 따라 기본배상비율이 23%~50%로 설정되고 ‘투자자 고려요인’을 반영해 45%를 가감하도록 구성돼 있다. 투자자 개인별 처지가 다르고 불완전판매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지만 ELS 판매사들은 적어도 전체 손실액의 40% 이상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상반기 추정손실액 4조8000억원 기준으로 2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금융감독원은 자체 사례분석 결과 배상비율이 20~60% 범위에 대부분 분포할 것으로 예상했다. 20년 가까이 장기간에 걸쳐 ‘공모’로 판매돼 온 ELS상품의 특성 때문에 라임 등 사모펀드 배상비율보다 판매사 책임을 더 무겁게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다.

 

금융상품을 통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가치사슬(value chain)에는 상품의 제조 운영 판매 소비(투자) 그리고 전체 금융시스템을 설계 관리 조율하는 당국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이 각 단계마다 참여한다. 라임 등 사모펀드(DLF) 사태는 불량 상품을 기획한 제조사와 불법 운영사,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가 총체적으로 부각된 사례이다. 그러나 공모 상품인 ELS는 상품의 판매자 책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투자중개업자인 증권사에만 판매가 허용된 파생결합증권(ELS)을 은행이 집합투자업자 자격으로 펀드(ELF)로 재구성해 당국 승인을 받아 팔거나 신탁업자로서 투자상품(ELT)을 소싱(sourcing)하여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허용했다. 수수료 차이 펀드구성의 번거로움 등 여러 이유로 은행 판매 ELS의 97% 이상이 대부분 신탁 ELT로 판매됐다.

 

감독당국이 제시한 ‘배상비율’은 주가변동에 따른 시장리스크(market risk) 관리 실패로 발생한 ELS투자손실 책임을 규정한 일종의 ‘책무구조도’이다.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아 20여년 동안 ‘공모’ 형태로 판매해온 검증된 금융투자상품 가입고객 전체를 대상으로 시장리스크 책임을 누가 왜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 지를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장기간 판매를 허용해온 상품이라 불량 상품이 아닌 것이 확실하니 상품제조자 책임은 아니라고 봤다.

 

DLF처럼 펀드 돌려 막기 등 불법 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증권사 유동성 등 신용도가 걱정되는 부분은 있지만 큰 이슈 없이 넘어왔다. 결국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노력을 따지는 판매자 책임만이 남는다. 판매과정의 적정성 설명의무를 위반한 불완전판매와 불법판매 행위 등 고의 중과실에 의한 운영리스크(operating risk)는 당연히 판매시스템을 운영하는 판매사가 책임지고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운영리스크를 책임지는 것과 시장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감독당국은 금융회사들이 투자자가 부담하는 시장리스크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운영리스크를 키우는 쪽으로 경영관리를 했다고 질책하고 있다. 당국은 경영관리 핵심지표인 KPI가 운영리스크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운영됐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시장리스크 관리실패에 따른 ELS 손실 부담을 판매사의 운영리스크 관리책임으로 전가하고 이를 경영관리 수단인 KPI 운영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KPI가 강력한 경영관리 수단이고 수익성 목표가 반영되기 때문에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KPI가 ELS 손실의 시장리스크를 모두 짊어지게 하는 것은 과도한 일이다. 은행 KPI는 고객관리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 내부통제의 균형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고객관리 30% 성장성 30% 수익성 30% 건전성 10% 내부통제 가감항목 10%의 범주내에서 매년 전략방향을 감안해 세부항목을 구성하고 운영한다. ELS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KPI 목표를 달성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분명 있지만 수익성 배점 30%를 구성하는 항목의 90% 이상은 대출 이자이고 나머지 비이자이익의 일부에 ELS 수수료이익이 포함된다.

 

전체 가입자중 21.5%를 차지하는 65세 이상 노령층 등 취약계층과 최초 가입자 6.7%는 상품구조 특성 위험성 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불완전판매 위험에 노출됐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다수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등 위법행위가 전방위적으로 횡행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정상적인 판매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금융상품의 손실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는 점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복현 원장이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숙고’ 했다고 언급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금융상품의 구조 특성 위험 수수료 구조까지 고객이 충분히 이해하고 투자한다는 것을 전제로 금융기관의 상품설계 개발의 자율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그 결과 상품에 대한 고객의 이해를 구하는 모든 책임은 판매사의 몫이 된다. 또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모든 책임이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로 귀결되고 은행 영업점 직원 탓으로 돌려진다. 라임 등 명백한 불법이 아닌 경우 위험한 상품을 개발한 제조사가 손실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위험한 상품개발과 판매를 허용한 금융당국이 책임지는 경우도 없다.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사적화해’에 의한 자율배상을 금융사들이 신속히 실행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DLF처럼 문제 있는 상품을 판매한 것도 아니고 불완전판매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먼저 배상부터 하면 ‘배임’ 등 형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에서 회사의 위법행위 여부가 불명확한 경우에도 ‘사적화해’ 수단으로 손실 보상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증권투자의 자기책임 원칙’에 반하는 경우는 허용되지 않는다.

 

자기책임 원칙을 가늠할 수 있는 불완전판매 여부를 강조하고 따지는 이유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도 불완전판매가 명확한 경우에 한해 판매은행이 손실 배상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즘처럼 금융권 소송이 난무하고 ‘책무구조’에 따라 개인적인 송사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완전판매가 명백히 확인되기 전에 배상을 결정하기는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사적화해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내일 일은 알 수 없다. 지금 끝 모르게 상승중인 나스닥(NASDAQ)이나 S&P 500과 연계된 금융상품들이 언제 골치덩이로 둔갑할 지 모를 일이다. 예금은 만기에 원금과 수익을 미리 정한 수준으로 되돌려주기로 약속한 금융상품이다. 예금으로 돈을 맡긴 사람은 은행이 그 돈으로 어떤 위험한 일을 하는지 세세히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그 금융사가 어떤 곳인지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예금도 미래의 수익을 100% 보장하지는 못한다. 금융사가 망하면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다 돌려받을 수 없다. 금융사가 파산하는 최악의 경우 국가가 5000만원은 보장을 해 준다. 과거 외환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의 교훈으로 이제는 금리 조금 더 준다고 무조건 가진 돈을 전부 다 한곳에 맡기지는 않는다.

 

투자상품은 돌려받을 원금과 수익이 사전에 정해지지 않은 금융상품이다. ELS는 투자상품이다. 관찰대상 기초자산의 가격이나 지수가 일정기간 동안 미리 정한 범위내에 있으면 사전에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고 원금도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가격이나 지수가 미리 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원금의 상당부분 내지 전부를 잃게 된다. ELS는 상품의 구조와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예금보다 많이 낮설다. 하지만 상품이 복잡하게 생각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예측 가능하고 감당 가능한 범위내에서 투자하면 돈을 잃어도 덜 억울하다. 은행의 투자상품 판매에 대한 금융당국의 정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판단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정책결정이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고 금융이 우리 공동체의 건강한 이익을 증진시키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란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