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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LG가문의 '청지기' 구광모

Numbers_ 2024. 3. 1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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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LG가문의 '청지기' 구광모

現行 상속세법상 경영권 지키려면 지분 몰아주기 불가피구회장 지분 15.9% 개인재산이라기 보다 가문 공동재산내달초 비공개 변론준비기일 예정…年內 1심선고 나올듯‘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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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行 상속세법상 경영권 지키려면 지분 몰아주기 불가피
구회장 지분 15.9% 개인재산이라기 보다 가문 공동재산
내달초 비공개 변론준비기일 예정…年內 1심선고 나올듯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일꾼을 가리킵니다. 1년 넘게 유산상속 분쟁중인 LG그룹에도 청지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룹 총수인 구광모 회장입니다. 그전에는 타계한 화담(和談) 구본무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이 청지기 역할을 했습니다.

76년 역사의 LG그룹은 구씨와 허씨 두 집안의 공동 창업이다 보니 출범부터 주주가 많았고 자손까지 번창했습니다. 주인이 많으면 그만큼 다툼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장자 승계’와 ‘형제 분리’의 경영원칙입니다. 그룹 경영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영재산’은 가급적 장자에게 몰아주고 총수로 앉히는 것입니다. 형제 분리 원칙은 장조카가 그룹 총수에 취임하면 숙부들은 그룹을 떠나 분가하는 것입니다. LG 하면 떠오르는 ‘인화’(人和)는 이런 원칙들을 지켰기에 가능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화담은 구광모 회장의 생부(生父)가 아닙니다. 구광모 회장의 생부는 화담의 아래 동생 희성그룹 구본능 회장입니다. 화담은 1995년 지천명의 나이로 회장에 취임하기 전 장남을 잃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04년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입니다. 그때 구광모 회장 나이가 26세였습니다. 구광모 회장은 2년 뒤 LG전자 대리로 입사합니다. 구광모 회장이 그룹 총수가 되기까지는 아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큰아버지 구본무 회장의 장자로 입적되고 총수 자리에 오른 것은 구본무 회장의 뜻만은 아닙니다. 그룹 어른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고 장자 승계의 원칙을 통해 LG그룹을 지키기 위한 방책입니다. 2018년 5월 구본무 회장이 갑자기 타계한 이후 그룹 전통에 따라 구본무 회장이 남긴 2조원의 유산 중 이른바 ‘경영재산’인 ㈜LG 지분은 상당 부분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됐습니다. 앞서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구본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넘길 때도 장자인 구본무 60%, 나머지 세 아들 32%, 두 딸에 8%를 상속했습니다.

구본무 회장은 타계하기 1년 전 2017년 4월 서울대 병원에서 큰 수술을 앞두고 그룹 재무관리팀장을 불러 자신의 유고시 양자이자 장자인 구광모 당시 상무에게 자신의 경영권 재산을 전부 넘기라는 ‘유지(遺旨) 메모’를 남기고 서명합니다.

현행 상속세법에 따르면 유족간 상속 비율은 부인 1.5, 나머지 아들딸들은 1대 1의 비율로 동일합니다. 경영권을 지켜야 하는 기업의 경우에도 총수 사후 재산 상속에 대한 별도 유언이나 가족간 합의가 없다면 이 같은 법정 비율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경우 그룹의 지주사격인 삼성물산 주식에 대해서는 이재용 회장에게 몰아줌으로써 경영권을 강화했습니다. 어느 기업이든 경영권과 관련된 주식에 대해서는 1인 상속을 하거나 특정인에게 몰아주는 게 불가피합니다.

장자 상속 또는 1인 상속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현행 상속세법과 세율을 감안하면 대안이 없습니다. 현행 상속세율은 대주주 할증을 포함 최대 60%이고, 일부 공제 혜택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50% 정도를 상속세로 내야 합니다. 상속세를 주식으로 물납한다고 가정하면 100%의 지분을 자식 1명에게만 물려준다고 해도 2대로 내려오면 50%로 줄고 3대에서는 25%로 떨어집니다. 50%의 지분으로 시작하고 자식이 2명이라고 가정하면 3대만 내려와도 후손 1인의 지분은 3%대로 급락합니다. 대한민국의 상속세법 체계에서 대를 이어 경영권을 지키는 게 이처럼 어렵습니다. 자식들에게 상속세법에 따라 공정하게 지분을 나눌수록 경영권 방어는 더 어려워집니다. LG 가문이 양자를 들이면서까지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려는 것은 낡고 고루해서가 아니라 상속세법 체계에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일 뿐입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지적처럼 우리는 살면서 약간의 냉소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고 있는 어둡고 이기적인 면을 인식하는 그런 능력 말입니다. 장자 승계라는 집안 전통에다 화담 회장의 유지·승계 메모까지 있었지만 가족간 상속 합의는 쉽지 않았습니다. 2018년 5월 화담 타계 후 유족 간 6개월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드디어 11월 2일 합의서에 서명합니다. 최종 합의 결과 화담 회장의 ㈜LG 지분 11.3%중 구광모 회장은 8.8%만 갖고 나머지 지분은 두 딸에게 상속됐습니다. 한남동 자택과 미술품 등은 미망인과 딸들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2조원의 재산을 상속받은 유족들은 절반인 99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했는데 이 가운데 구광모 회장 몫이 7200억원 정도 됩니다. 구광모 회장은 급여와 상여금에다 ㈜LG 배당금을 포함 연간 800억원 정도 버는 데 매년 소득세를 내고 남은 400억원을 한 푼도 안쓴다고 가정할 경우 18년간 모은 돈을 전액 세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이게 LG그룹의 청지기로 호출당한 구광모 회장의 현실입니다.

화담 타계 후 6개월 만에 어렵게 유족 간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상속 합의 후 4년 3개월이 흘러 법적으로 인정받는 3년의 ‘제척기간’이 지났음에도 지난 2023년 2월 미망인과 여동생들이 ‘상속재산 효력회복 소송’을 하고 나섰습니다. 기존 합의문을 뒤집고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하자고 했습니다. 선대 회장의 유지와 무관하게 ‘리셋’(Reset)을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두 번의 증인신문이 있었고 올 들어서는 처음으로 내달 2일 비공개로 변론준비기일이 예정돼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차 증인신문에서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간 조정을 제안했지만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청지기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룹의 지배구조를 굳건히 지키는 것입니다. 구광모 회장이 소유한 ㈜LG 지분 15.95%는 개인 재산이 아니라 가문의 공동재산입니다. 15%의 지분은 선대 회장도 지켰던 마지노선입니다. 함부로 누굴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됩니다. 그는 위탁관리자일 뿐입니다. 화담 회장이 스스로를 그룹 재산을 지키는 청지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양자를 들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경영재산인 ㈜LG 지분을 모두 구광모 상무에게 물려주라고 당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전략적으로 무례하고 악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두운 면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생은 착하게 산다고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때론 부끄럽고 힘든 날이 되겠지만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버텨내길 바랍니다. 1심 선고가 연내에는 나오겠지요.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