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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60% 간병비 독박…사회적 부조 확대해야
보험상품 세제개편 등 민간금융 적극 활용 필요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기록적인 저출산율(0.72명)이 세계적인 화제거리로 등장했다. 일종의 사회적 자살 현상으로 공동체의 재생산 시스템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역대급으로 낮은 출산율은 무한경쟁 경제양극화 성불평등 등 급속한 양적 성장과정에서 가려져 있던 우리사회 어두운 단면들이 누적된 종합성적표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서 저출산 원인을 고용 주거 양육 부담 등 미래 삶에 대한 불안이라고 분석했다(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원인 영향 대책, 2023.11). 경제적 요인 뿐 아니라 성차별 워라벨 등 사회적 가치충돌을 겪으면서 과연 우리사회가 나의 2세를 낳아 힘들게 길러 유지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 묻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 30대 여성의 미혼율이 33.6% 수준이다.
초저출산의 맞은 편에는 초고령화가 있다. 1990년 5.1%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노령층 비중이 2025년 20.3%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 확실하고 2030년에는 25.3%로 높아져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노령 사회가 된다. 최근 한국은행과 KDI가 공동으로 개최한 세미나(노동시장 구조변화와 대응방안, 2024.3.5)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등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 매월 37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돌봄 간병서비스가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65세 이상 고령층의 2023년 가구 월평균소득이 224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개인 간병비가 65세 이상 고령가구 소득보다 1.65배 많다. 이들은 모자란 간병비 40% 이상을 다른 사람 도움으로 해결해야 한다. 2023년 40대 가구 월평균소득은 588만원이다. 부모 간병비가 자녀 월급의 63% 수준이다. 부모 소득으로 모자란 부분만 책임진다 해도 월급의 25%에 달한다. 40~50대 가장 월급 60% 이상을 부모 간병비로 지출해야 하니 자녀교육 주거비는 물론 당장 먹고 입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의 클래스 차이로 사람들은 돈의 위력을 실감한다. 요양병원의 노후 간병 돌봄 서비스를 가까이서 체험해 본 사람이면 항공기 클래스 차이보다 훨씬 강렬한 돈의 권위를 요양병원 서비스의 질적 차이로 확인하게 된다. ‘인간 존엄’이 시험받는 가장 극단적인 현장이 노인요양병원이다. 장기요양보험(1,2등급)이 적용되는 공적 돌봄 서비스 대상이 되는 행운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고령으로 치료와 돌봄이 동시에 필요한 요양병원에서 병원비와 간병비를 공적 부조 없이 개인이 감당할 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열악한 환경에 부모를 내맡겨야 하는 자괴감으로 대신해야 한다.
가사 육아도우미 비용이 264만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어서 자녀 양육비 주거비 식비 등 필수생활비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40~50대 보통의 가장들이 효자 노릇 하기는 이미 어려운 상황이다.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평범한 집안의 가장 월급으로는 부모님의 ‘인간 존엄’을 지켜 내기 어렵다. ‘간병살인’ ‘간병파산’이라는 우울한 말들이 앞으로 더 자주 들릴 것 같다.
국회 보고서(간병비 지옥은 해결될 수 있는가?, 국회입법조사처, 2024.2.29)에 따르면 환자 보호자들이 부담하는 간병비가 2018년 8조원 이상이고 2025년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요양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려면 매년 15조원 이상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건복지부 판단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재원 확충과 세제 지원 등 장기적인 계획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간병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인구 고령화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경험한 영국 미국 독일 등 주요국들의 사례가 좋은 참조가 될 것 같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간병 돌봄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영역과 개인이 자기책임으로 준비하는 민간영역으로 나누어 대응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영역은 국가 재정이 투입되어 수혜대상이 제한되고 질적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자기부담으로 노후 간병 돌봄 서비스를 준비하도록 국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민간의 역할과 비중을 높이자는 것이다. 노인 간병 돌봄 관련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고 관련된 산업을 활성화하여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영국의 종신연금보장보험(Immediate Care Plan) 미국의 장기요양연금(Long Term Care Annuity) 독일의 간병연금보험 등은 모두 정부의 세금혜택을 인센티브로 민간보험사들이 장기 간병 돌봄서비스를 위해 개발한 보험상품들이다.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월평균 신규계약액이 2020년 25조 478억원에서 2021년 23조6243억원, 2022년 22조2035억원으로 줄어들고 있다. 2023년 11월 기준 16조 9872억원으로 2020년 대비 32% 감소했다.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보험상품에 대한 정부의 세금 축소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1976년 12월 보험상품에 대한 소득공제 허용으로 보험상품에 대한 세금지원제도가 도입된 이후 매년 세제혜택이 축소되어 왔다. 인구구조를 비롯한 모든 주변여건이 완전히 바뀐 상황이라 지금까지의 세제지원 축소 일변도의 보험상품 세정기조를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노령연금의 실질소득대체율은 2020년 24.2%에 불과하고 2030년에는 23.2%으로 더 낮아질 전망이다. 사람은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며 출생 성장 결혼 육아 노후 등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다. 하지만 소득이 끊어진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만으로 모든 국민의 다양한 위험을 보장하기에는 재원 등 한계가 분명하다. 2022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부모 부양을 ‘개인’ 차원이 아니라 ‘가족 정부 사회’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62.1%로 나왔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후 간병 돌봄서비스를 장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 생명보험이 가진 특성을 잘 활용해 국가적 과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보험상품에 대한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 체계를 전향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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