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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이 '꿈의 소재'라 불리는 탄소나노튜브(CNT) 생산을 지금 보다 4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또 에폭시 수지의 주원료인 에피클로로히드린(ECH)의 안정적 수급을 확보하기 위한 플랜트 건설도 조만간 마무리된다. 회사가 자사주 절반은 남겨두겠다고 한 이유도 이처럼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실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천의 얼굴과 같다. 일각에선 오너일가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잘못 쓰인다는 지적도 있으나, 영리하게 활용하면 투자 재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수익원 발굴을 통해 회사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는 것 역시 장기적 관점의 주주환원과 맞먹는 효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CNT·ECH 신사업 저변 확대
금호석유화학은 오는 22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안건별 주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현재 시장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자사주 소각에 대한 설명을 참고자료에 녹였다.
회사는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앞으로 3년간 총 262만4417주의 자사주를 소각할 예정이다. 이는 현재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안건이 통과되면 당장 연내 87만5000주를 소각할 방침이다.
소각하지 않는 자사주는 19일 종가 기준으로 약 3700억원 규모로, 작년 한해 금호석유화학의 유형자산 취득액이 310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전량 소각하라는 차파트너스와 박철완 전 상무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다. 자사주 활용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량 소각하기에는 자사주 규모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회사는 소각하지 않는 자사주의 사용처에 대한 힌트를 참고 자료에 심어뒀다. 올해도 석유화학 시장에 찬바람이 불 것으로 판단, '재무적 유동성 확보'를 위한 선택지 중 하나로 자사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 회사 측은 "침체기가 길어짐에 따라 회사의 재무 건전성 약화에 대비가 필요한 동시에, M&A를 통한 사업의 확장 또는 새로운 기회의 모색을 위해 재무적 유동성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자사주를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면 우선 쓰일 곳으로 CNT 사업이 꼽힌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이 연 500톤까지 생산량을 키울 생각이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아산 공장의 연간 CNT 생산능력은 120톤으로, 미미하지만, 작년 화학 업종 둔화 속 판매량이 18% 증가해 꽤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
CNT는 철의 100배에 달하는 인장강도와 구리의 1000배 정도의 전기전도성을 가져 '꿈의 소재'로 불린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쓰여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수지, 합성고무에 이어 CNT까지 소재 사업의 저변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화학사 가운데 주요 CNT 생산 회사는 LG화학이다. LG화학은 CNT를 생산해 배터리 회사에 양극 도전재 용도로 공급하고 있다. LG화학의 CNT 연간 생산 능력은 2900톤이며, 2025년 4공장이 완공되면 지금 보다 생산 능력이 2배로 늘어난다. 금호석유화학은 증설 투자를 통해 LG화학과 격차를 좁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OCI의 자회사 OCIM과 자회사 금호피앤비화학이 공동 설립한 말레이시아 ECH 플랜트 투자도 올 상반기 마무리된다. 총 2000억원의 투자비가 소요된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10만톤의 ECH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ECH는 풍력발전용 에폭시의 경량화 소재로 쓰인다. 지난 2022년 발표한 중장기 비전을 보면, 금호석유화학은 2026년까지 친환경 사업 비중을 16%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ECH는 이같은 친환경 사업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또, 의료용 장갑의 주원료로 쓰이는 NB 라텍스는 금호석유화학의 캐시카우로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의료용 장갑 수요가 늘면서 NB 라텍스 시장에 중국 신생 업체들이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해당 제품에 대한 R&D 투자와 추가 증설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길어진 불황 터널…자사주 자금 조달책으로 부상
금호석유화학이 지난해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은 4341억원에 그쳤다. 슈퍼 사이클이 왔던 지난 2021년 1조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한 것을 감안하면, 영업창출력이 크게 저하됐다. 석유화학 업종의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손에 쥐는 현금까지 줄어든다는 것은 투자 재원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ECH 플랜트 투자의 경우 공장을 짓는 도중에 투자비 재산정이 이뤄졌다. 추가로 자본금을 납입한 이후에야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 이처럼 얼마든지 예상치 못하게 유동성이 필요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회사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지 않기로 했다.
주로 타 회사와 주식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는데, 자사주를 매개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의 교환사채(EB) 발행 사례가 꼽힌다. 2018년 LG화학은 교환사채 발행으로 총 6500억원을 조달했다. 당시 채권 투자자에 LG화학은 당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제로 금리'에 조달한 LG화학은 자사주를 처분하면서 비용까지 절감해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적지 않은 규모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어 EB 발행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이 주가 부양에 긍정적이란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석유화학 산업이 장치 산업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설비 투자 등으로 자사주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단 점을 볼 때 자사주 전량 소각이 꼭 옳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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