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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반대하면 주총 통과 못한다" 이젠 옛말...주주 표심과 반대 결정 잇따라

Numbers_ 2024. 4. 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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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반대하면 주총 통과 못한다" 이젠 옛말...주주 표심과 반대 결정 잇따라

3월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기업과 투자자들의 시선은 국민연금에 쏠린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국내 기업 수만 800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해도 안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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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연금공단)

 

3월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기업과 투자자들의 시선은 국민연금에 쏠린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국내 기업 수만 800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해도 안건이 무리 없이 통과되고 있다. 이에 주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낸 안건이 득표 과반을 넘기며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했다. 

형제 측이 제안한 5명의 이사 선임 안건은 모두 통과된 반면,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낸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약 7%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모녀 측에 손을 들어줄 때까지만 해도 승기는 국민연금이 편을 든 모녀 측으로 기우는 듯했다. 국민연금은 형제 측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며 "이사회 안이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결과는 형제 측의 승리로 끝났다. 형제 측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임성기 회장의 조카들을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소액주주들도 형제 측에 손을 들어줬다. 소액주주들은 주총 전부터 그룹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민연금이 반대했음에도 통과한 사례는 한미약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달 국민연금은 효성그룹을 이끄는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조현준 회장에 대해서는 '기업가치 훼손 등 이력'을 이유로 반대했고, 조현상 부회장에 대해서는 '감시의무 소홀 및 과도한 겸임'을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하지만 주총에서는 무리 없이 안건이 통과되며 선임됐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대표이사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도 반대했다.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의무 소홀'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주주들은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어 조 회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의 변재상 전 미래에셋생명 대표에 대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변 전 대표 선임 반대 이유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엄정한 검증과 이에 대한 해소 절차를 거친 결과 법상 결격이나 윤리적 결격이 없었다"며 "(국민연금의 반대 이유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과징금과 시정조치 등인데, 후보자 본인이 직접 제재받은 바 없고 과징금 규모도 미미하다"고 밝혔다. 결국 변 전 대표는 네이버 사외이사에 무리 없이 선임됐다.

이처럼 국내 증시 '큰손'인 국민연금의 결정이 주총 결과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배당 등 단기적인 관점이 아닌 기업의 장기적인 운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주주와 반대되는 결정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주주의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결정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행동주의펀드가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보수적인 결정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도 동떨어진 모습이다. 국민연금은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에 압도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하고 있다.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주주가치 제고에 힘쓸 수 있도록 2018년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에 나섰다. 금융위는 '기관투자자는 투자자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높일 수 있도록 투자대상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다만 국민연금은 밸류업 방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이석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략부문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향후 밸류업 방안이 구체화된 후 투자 계획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한새 sae@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