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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판결]① 검찰은 왜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을까?

Numbers_ 2024. 5. 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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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그래픽=박선우 기자. 자료=게티이미지뱅크·뉴스1·블로터DB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시 재판정에 선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오는 27일 오후 3시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한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부정거래, 시세조종 등에 관여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1심 법원은 이 회장에게 적용된 19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임원 등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피고인 13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이 기소된 지 3년 5개월 만이었으며, 106회에 걸친 재판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검찰 수사 기록 약 19만장, 증인신문은 8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 분량만 약 1600쪽이다.

 

이처럼 방대한 기록은 재판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라는 한 문장의 주문으로 정리됐을까. 다시 말하면, 이 회장은 왜 무죄를 선고받았을까.

 

1심 판결문을 토대로 검찰 공소사실부터 짚어봤다.

 

검찰 "1994년부터 승계 작업...지배력 확보 위해 합병 추진"

 

검찰은 이 회장의 범행 동기와 배경을 지난 1994년부터 이뤄진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찾았다. 이번 '불법 승계 의혹' 사건이 1990년대 중·후반에 걸친 승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이 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에게 증여받은 약 61억 4000만원으로 상장 직전의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 등을 매수한 뒤, 해당 계열사가 상장되면 그 주식을 매각해 차익을 얻어 자금을 확보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지난 1996년 이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사채)를 인수했다. 당시 에버랜드는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그런데 기존 특수관계인 주주들이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자, 이 회장이 해당 실권분을 1주당 7700원에 사들여 전부 주식으로 전환했다. 이 회장은 약 48억 3090만원으로 에버랜드 주식 31.37%를 취득해 에버랜드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이후 에버랜드는 삼성전자 주식 7% 이상을 매입,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을 1주당 9000원에 사들여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됐다. 결과적으로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가 형성됐다. 검찰은 이렇게 이 회장이 그룹 승계 기반을 마련했다고 판단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또한 삼성의 신수종 사업(미래 산업을 이끌 유망한 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사업을 에버랜드에 밀어주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에버랜드의 자회사로 두는 결정도 이뤄졌다고 했다. 

 

검찰은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그룹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확보가 핵심이라고 봤다. 그러기 위해선 삼성전자 주식 7.21%를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 4.06%를 갖고 있는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회장 등이 논의한 방안이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 합병'이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위와 같이 지배구조가 바뀐다고 판단했다. /그래픽=박선우 기자

 

이때 등장하는 문건이 '프로젝트-G(Governance)'다. 검찰은 미전실에서 이 회장의 승계계획안인 '프로젝트-G'를 수립해 합병을 실행했다고 봤다.

 

합병까지의 흐름은 이렇다. 이 회장이 최대주주인 에버랜드에 유리한 합병이 되도록 에버랜드는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인수했다. 이후 회사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다. 지난 2014년 12월 상장된 제일모직은 이듬해 삼성물산과 1:0.35 비율로 합병했다. 이는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약 3주와 바꾼다는 의미다.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합병의 효과에 대해 "당초 계획한 이 사건 합병 목적대로, 이 회장은 전혀 지분이 없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이에 따라 삼성물산을 통하여 삼성전자 주식 4.06%를 직접적으로 지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에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 적용

 

검찰은 지난 2020년 9월 이 회장, 미전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 등 13명과 삼정회계법인을 기소했다.

 

검찰 공소사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만 19개로,  다른 피고인들의 혐의까지 더하면 총 23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승계계획안을 마련했으며, 일방적으로 합병을 추진했다고 봤다. 

 

판결문에는 "마치 이 사건 합병은 이 회장의 승계와 무관하고 미전실의 관여가 없으며, 삼성물산의 경영진이 2015년 4월 하순경 제일모직의 경영진으로부터 합병 제안을 받아 면밀한 검토 및 제일모직과 협상을 거쳐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처럼 가장하기로 계획했다"는 검찰 측 주장이 기재돼 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았다. 검찰은 보도자료(2020.9.1)에서 "2015년 5월 당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에 비해 매출액 5.5배, 영업이익 및 총자산이 3배에 이르는 규모였다"며 "(그럼에도) 주가는 오히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보다 2.6배 높아서 '주가 기준의 합병비율'은 이 회장 등 제일모직 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삼성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했는 바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합병 목적과 배경, 효과 등에 대한 허위 공표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합병 효과에 대해 검찰은 "(합병TF가 제시한) 2020년도 합병법인 예상 매출액 60조원 중 합병 시너지로서 창출되는 액수가 얼마인지에 대해 전혀 특정되지 못했고 사업부문별 예상 매출 증가액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또한 검찰은 인위적 주가 관리, 삼성바이오로직스(제일모직 자회사)와 관련된 분식회계 등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의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기소 당시 검찰은 "이재용 등 삼성그룹 관계자, 외부 자문사, 주주 투자자, 관련 전문가 등 약 300명에 대해 860회 상당 조사 및 면담 진행, 서버 PC 등에서 2270만건(23.7TB) 상당의 디지털 자료를 선별해 압수 분석했다"며 "증거인멸 수사과정에서 압수수색으로 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 등에 은닉된 다량의 서버와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