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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은 없다.'
SK하이닉스에서 최근 10여년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오른 인물을 표현하는 특징이다.
전신인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전자 출신 CFO는 SK 인수 이후 사라졌다. 조직 안에서 진득하게 성장한 인재보다 SK 계열사들을 거치며 다양한 사업 감각을 익혀야 CFO 후보군에 오른다. 검사나 경제관료를 하다 SK에 영입된 뒤 SK하이닉스에서 CFO를 지낸 사람도 있다.
<블로터>가 앞서 '한국의 CFO' 기획을 통해 조명한 삼성전자는 CFO에 해당하는 경영지원실장에 삼성전자에서 성장한 인물을 앉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신과 이력이 다양한 SK하이닉스의 CFO와 차이가 뚜렷하다.
CFO의 출신을 가리지 않는 SK하이닉스식 '순혈주의 타파'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SK하이닉스는 회사가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경제위기와 반도체 치킨게임을 겪으며 인수·합병(M&A)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오르내렸다. 현대 계열사로 시작해 LG반도체를 품고 나중에 SK에 편입됐다. 각기 다른 기업문화가 하나로 융합되며 성장한 만큼 순혈주의가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한국의 CFO' SK하이닉스 1편에서는 다양한 출신의 CFO가 탄생한 배경인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 역사'를 되짚어본다.
반도체 후발주자 '현대' 우산 속 성장
SK하이닉스의 모태는 1983년 문을 연 현대전자다. 당시 삼성전자와 LG반도체(옛 금성전자)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현대전자는 자체 기술력을 높이기보다 외부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추격 전략을 폈다. 미국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제품 상용화에 성공해 실적을 쌓았다. 1992년에는 삼성전자에 이어 64메가비트(Mb)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자체 기술력도 강화했다.
1990년대에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시장을 주도한 일본 반도체 업체가 수요 예측에 실패해 설비투자 시점을 놓친 공백을 파고들었다. 1992년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고 LG반도체는 8위, 현대전자는 9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키웠다. 현대전자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반도체 호황의 달콤함을 만끽하자마자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현대전자는 1990년대 후반 차세대 D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기를 범했다. 회사는 D램의 새로운 표준으로 '싱크링크' 방식을 선정하고 기술 개발 역량을 집중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밀고 있던 '더블데이터레이트(DDR)' 방식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싱크링크 D램은 끝내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고 사장됐다.
기술 흐름과 엇박자를 낸 상황에서 반도체 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아울러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도래하며 극심한 실적 악화에 직면했다. 1997년 현대전자는 매출 3조4909억원, 당기순손실 183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비슷한 이유로 LG반도체 역시 당기순손실 2897억원을 내며 부진에 빠졌다. 재무구조도 급속히 악화됐다. 당시 현대전자의 부채총계는 9조3982억원으로 부채비율이 935%로 치솟았다. 같은 시기 LG반도체 역시 부채가 6조4956억원까지 늘었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자 시장 재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중복 과잉 투자의 해소와 신규 투자 조정을 추진하며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을 압박했다. 현대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제외한 통신과 액정표시장치(LCD), 전장(자동차 전자부품) 부문을 정리하며 합병을 준비했다. 결국 1999년 현대전자가 LG반도체의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흡수 합병이 이뤄졌다.
현대와 LG가 주식 양수도 계약을 맺은 1999년 5월 당시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은 "통합회사에서 시너지 효과 창출 여부는 양사의 기존 경영시스템을 개선하는 차원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합병 이후 통합 효과의 모색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현대전자는 합병을 앞둔 6월 조직개편을 통해 CFO의 기능을 분리 강화했다. 기존에 회계관리에 한정됐던 CFO의 역할을 주요 사업을 기획하고 의사결정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와의 합병을 통해 외형 성장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1999년 10월 완전 합병이 이뤄지고 재무제표를 통합한 현대전자는 매출 6조119억원을 달성해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전년 22위에서 11위로 급상승한다.
하지만 통합과 동시에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양사 간 반도체 생산 공정의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또 중후장대 사업 영향으로 수직적 의사결정 색채가 강했던 현대전자와 자율성을 중시하는 LG 문화를 융합시키는 등 기업문화 측면에서도 간극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LG반도체를 품으며 떠안게 된 막대한 부채는 이후 반도체 불황기에 회사가 또 다시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하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1999년 현대전자 부채총계는 전년 대비 약 1조5000억원이 늘어난 11조8525억원에 달했다.
홀로서기 그리고 매각 위기
2000년대 들어 현대전자는 천문학적인 채권 만기에 더해 반도체 업황 침체기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2000년 말 현대전자는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 1000억원을 갚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했지만 산업은행이 대신 인수해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스코틀랜드 공장을 모토로라에 팔고 단말기사업부(현대큐리텔)를 분리하는 등 보유 자산이나 유가증권을 매각하며 자구 노력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국 현대는 현대전자를 2001년 상반기 안에 계열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전자는 2001년 3월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공식 변경했다. '고도의 전자기술을 가진 반도체 회사'라는 의미를 담았다. 회사는 현대전자가 갖고 있던 각종 사업을 매각하고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재출발을 결의하는 동시에 현대 우산에서 벗어나 채권단 관리체제 아래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반도체 전문회사로 출범하긴 했지만 하이닉스반도체의 앞날은 어두웠다. D램 가격이 추락을 거듭한 가운데 하이닉스반도체의 시장 퇴출이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채권단 역시 회사의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해 매각을 추진했다.
인수에 관심을 보인 업체는 미국 마이크론이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를 매각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던 정부는 불과 32억 달러 마이크론에 넘기겠다는 조건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공장 매각 대금을 현금이 아닌 마이크론의 주식으로 받는 조건이었다. 이어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반도체가 높은 경쟁력을 가진 메모리반도체 부문만을 가져가고 시스템반도체 부문에 대해서는 인수가 아닌 투자만 하겠다는 속셈을 내비치자 하이닉스반도체 내부와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매각 반대 여론에 불이 붙었다.
매각 협상과 무관하게 내부적으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하던 하이닉스반도체의 독자 생존 의지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2002년 4월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사회는 마이크론에 회사를 매각키로 한 양해각서를 부결시켰다.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메모리반도체 사업 매각이 하나의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나 반도체 시장의 여건 호전, 신기술 개발로 인한 사업경쟁력 향상 등을 고려하면 독자생존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미국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에 이은 중국 우시 현지공장 설립과 기존 200㎜ 반도체원판(웨이퍼)에 맞춰진 생산 공정을 차세대 300㎜로 전환하는 시도 등 적기에 이뤄진 생산 증대와 신규 공정 확보 등을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데 성공했다. 회사는 2005년 7월에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 성과를 냈다.
반도체 치킨게임 속 SK로 재도약
2000년대 중반은 메모리반도체 업계가 '치킨게임'을 벌이던 시점이다. 대만 메모리반도체 기업이 공격적으로 생산 물량을 확대한 결과 D램 가격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반도체를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은 감산에 나서지 않고 버텼다. 결국 2009년 독일 키몬다가 파산하면서 치킨게임이 종료됐다. 심각한 타격을 입은 대만 메모리반도체 기업은 합병을 통해 청산 위기를 피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며 세계 2위 D램 기업으로 확고한 지위를 확보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존속이 불투명했던 하이닉스반도체가 삼성전자와 더불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로 급부상하는 시점이다.
이후 하이닉스반도체는 승승장구했다. 2010년에 접어들며 등장한 스마트폰 시장은 막대한 신규 D램 수요를 일으켰다. 하이닉스반도체는 고부가가치 스마트폰용 D램 제품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며 2010년 매출 12조990억원과 당기순이익 2조656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01년 채권단 공동관리 이후 주인 없는 상태로 10년 가량 지내며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2위로 올라선 하이닉스반도체는 다시 인수 대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2010년 기록한 최고 실적을 바탕으로 재무 구조가 크게 개선되면서 새 출발을 위한 기반도 마련됐다. 다만 2009년부터 본격화된 회사 매각은 이미 두 차례 불발됐는데 메모리반도체 사업 변동성과 대규모 투자금이 원인이었다. 7조원에 달하는 차입금과 3조4000억원 규모의 인수 대금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공개 입찰 방식으로 진행된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과정에서 SK텔레콤이 최종 인수자로 결정됐다. 최태원 SK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도체 사업은 한다"며 인수 의지를 확고히 했다. SK로서는 1981년 해산된 선경반도체 이후 30년만에 나서는 두 번째 반도체 산업 진출이었다.
SK그룹의 일원이 되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꾼 하이닉스반도체는 약 40년간 현대와 LG, SK에 이르는 다양한 기업의 문화와 조직체계를 융합하며 성장했다. SK텔레콤은 인수 이후 본격적으로 SK의 색채를 SK하이닉스에 입히기 시작한다. 이는 최고경영자(CEO)보다는 CFO 인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역대 SK하이닉스의 주요 CFO에 대한 소개는 '한국의 CFO' SK하이닉스 2편에서 이어진다.
이진솔 기자 jinso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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