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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는 올해 SK텔레콤에 인수된 지 11년째를 맞는다. 주인이 없었던 하이닉스반도체 시절과 견줘 SK그룹의 일원이 된 후 회사 안살림을 책임지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인사에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현대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 출신이 아닌 SK의 다양한 계열사에서 전략기획과 재무 등을 경험한 인물이 CFO에 올랐다.
인수 초창기에는 SK의 기업문화와 사업 체계를 회사에 이식할 수 있도록 경영지원을 총괄하는 인사가 CFO를 맡았다. 회사의 약점인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이 필요한 시점에는 미래 전략을 그릴 수 있는 젊은 인재에게 CFO 임무를 부여했다. 곳간을 잠가야 하는 메모리반도체 불황기에는 재무 전문가 CFO에 오르는 기조도 눈에 띈다.
검사 출신 김준호, 최장기 CFO 'SK식 경영' 이식
하이닉스반도체는 2012년 SK텔레콤에 인수되면서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바꾸고 2001년부터 이어온 '주인 없는' 경영 체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SK텔레콤에 인수되기 전에도 SK하이닉스는 CFO를 중시하는 기업이였다. 현대전자 시절인 2000년경 CFO의 담당 업무를 단순 회계관리를 넘어 사업 기획과 중장기 의사결정까지로 확장했다. 2009년부터 SK 산하에 들어가기 직전인 2011년 말까지 CFO를 맡았던 김민철 재경실장 부사장은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가하며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권오철 사장과 함께 회사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SK텔레콤 인수 이후인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약 5년간 SK하이닉스의 CFO를 지낸 김준호 사장은 회사에 SK의 기업문화와 경영체계를 이식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구매와 지원 업무를 거치며 반도체 기업의 재무 관련 경험을 쌓은 전임 김민철 부사장과 달리 김준호 사장은 2004년 SK 윤리경영실장 부사장으로 넘어오기 전 약 20년간 검사로 일했다.
김 사장이 SK에 합류하던 당시 최태원 SK 회장이 지배력을 키우기 위한 내부 부당거래와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난 지 약 1년이 지난 시점이다. SK는 총수 구속이후 전사적 윤리경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회사에 윤리경영실을 신설했다. 이때 조직을 이끌 수장으로 최 회장이 직접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동문인 김 사장을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경영실은 법무 지원과 내부 감사 업무를 담당하며 SK의 실세 조직 중 하나로 부상했다.
김 사장은 윤리경영실장을 지내며 다양한 계열사의 운영방식과 사업 지원 감각을 익혔다. SK하이닉스에 부임하기까지 경력도 재무보다는 지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김 사장은 SK에너지에서 코퍼레이트매니지먼트서비스(CMS), SK텔레콤에서 글로벌매니지먼트서비스(GMS)에 몸담았는데 두 곳 모두 경영지원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SK에너지에서는 윤리경영과 경영지원을, SK텔레콤에서는 해외 전략조정과 인사·회계, 대외협력 등 회사 경영 전반을 살폈다.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코퍼레이트센터를 신설하고 산하에 기업문화와 미래전략, 대외협력, 재무, 공급망관리(SCM) 등 관련 조직을 이동시켰다. 재경실장이던 전임자보다 CFO의 권한과 담당 업무가 크게 확장된 셈이다. 코퍼레이트센터장인 김 사장에게 CFO 직함을 줬다. 코퍼레이트센터는 SK텔레콤이 전사 전략을 조정하기 위해 운영하는 조직으로 자회사인 SK하이닉스에도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2015년 코퍼레이트센터가 경영지원부문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김 사장도 경영지원부문장으로서 CFO 업무를 이어갔다.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제조업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반도체 장비와 소재, 부품을 매입하는 구매 부문을 재무와 연계시키기 위해 이러한 경영지원 체제를 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사장은 반도체 전문가 출신 CEO와 합을 맞추며 SK하이닉스를 키워 나갔다. 반도체 사업 경험이 많은 CEO가 회사를 지휘하고 김 사장이 CFO로 경영지원을 총괄하는 그림이다. 김 사장은 2013년부터 이사회에 참가하며 권오철 사장, 박성욱 부회장 등 CEO와 의사결정을 함께 했다.
김 사장이 CFO를 지낸 5년여간 실질적인 회사 재무를 총괄한 인물은 이명영 부사장이다. 그는 2012년 재경실장 상무, 2014년 재무본부장 전무를 거치며 김 사장을 보좌했다. 2017년 김 사장이 SK하이닉스의 자회사로 출범한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의 초대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자 이 부사장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 부사장은 재무 분야에서 전문성이 높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김 사장과 차이점이 뚜렷하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SK에너지에 입사해 SK가스에서 경영지원을, SK네트웍스에서 글로벌회계담당을 지냈다.
김 사장이 SK하이닉스의 인수 초기 SK식 경영을 이식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부사장은 반도체 호황기 회사의 곳간을 효율적으로 여는 데 역량을 쏟았다. SK하이닉스는 이 부사장이 CFO에 부임한 직후인 2017년 9월 일본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해 베인캐피털과 애플, 시게이트 등 한국과 일본, 미국 기업과 연합해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SK하이닉스가 투입한 금액은 약 4조원이다. 이듬해 하반기에는 설비투자에 8조원을 투입하는 등 공격적인 사업 확대를 지원했다.
다만 이 부사장은 전임인 김 사장만큼 폭넓은 권한을 갖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 시절 경영지원부문 산하에 있던 일부 조직이 독립했고 이사회에 참가했던 김 사장과 달리 이 부사장은 SK하이닉스 사내이사로 활동하지 못했다.
이는 재무 영역으로 전문성이 한정된 CFO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이다. 이 부사장이 2019년 SK이노베이션 재무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 CFO가 된 차진석 부사장 역시 이사회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7년 말 조직개편에서 경영지원이 사라지고 CEO 직속으로 재무와 기업문화, 대외협력 등 지원 부서가 나란히 존재하는 구도로 바뀌면서 차 부사장은 경영지원이 아닌 재무담당으로 CFO를 맡았다.
'전략통' 노종원, 김준호 이은 경영지원 CFO
'재무통' CFO 시기를 지나 사업전략 구상에 전문성을 갖춘 CFO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노종원 사장이다.
노 사장은 여러모로 눈에 띄는 인물이다. 1975년 11월생으로 전임자들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나이에 2020년 당시 부사장으로 CFO에 올랐다. 검사 출신이었던 김 사장을 제외하고, 상경계열 학과 출신인 이 부사장, 차 부사장과 달리 노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를 나왔다. SK텔레콤에 입사해 2014년 SK C&C 사업개발본부장, 2016년 SK텔레콤 유니콘랩스장, 2018년 SK하이닉스 미래전략 담당을 지낸 '전략통'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노 사장은 SK하이닉스의 역대 CFO와 비교해 M&A로 성장한 SK의 DNA를 가장 많이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사장이 SK가 추진한 굵직한 M&A에 실무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어서다.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 과정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바메모리 전략 투자,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두 수조원이 오가는 대규모 투자다.
노 사장이 경영지원 담당으로 CFO를 맡으면서 조직구성에도 일부 변화가 생겼다. 경영지원 아래 재무와 구매가 놓이는 형태다. 노 사장이 과거 김 사장처럼 회사 경영 전반을 살피는 동안 장혁준 재무담당 부사장이 노 사장을 보좌하며 회사 곳간을 관리했다.
노 사장은 2022년 사업총괄 사장에 오르며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 박 부회장과 함께 사내이사로 이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노 사장이 인수를 성사한 솔리다임(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전략 기획과 재무 역량을 바탕으로 반도체 전문가인 데이비드 딕슨 솔리다임 대표이사와 함께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회사를 이끌었다.
현재 SK하이닉스의 CFO인 김우현 부사장은 재무통으로 반도체 침체로 실적 부진에 처한 회사의 곳간을 잠그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노 사장이 사업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CFO의 업무 범위는 재무전략을 짜는 영역으로 조정됐다. 노 사장과 달리 김 부사장은 경영지원이 아닌 재무 담당이라는 직함으로 CFO 맡았다. 김 부사장은 삼보컴퓨터를 거쳐 SK C&C 재무본부장, SK텔레콤 경영기획실장, SK브로드밴드에서 코퍼레이트센터장 등을 지낸 후 SK하이닉스에 합류했다.
김 부사장은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는 업황 하락 국면에 회사의 CFO에 올라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며 허리띠를 조이고 있다. 올해 초 열린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부터 김 부사장이 CFO로서 직접 참석해 불황기 SK하이닉스의 대응전략에 대해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김 부사장이 직면한 주요 과제는 SK하이닉스의 유동성 개선이다. 반도체 침체 여파로 SK하이닉스는 주력 사업인 D램에서도 영업손실을 보는 등 현금창출력이 떨어졌다. 회사는 감산과 투자 조정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필수 투자를 위해 차입금이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전략통에 이어 다시금 재무통 CFO를 선임한 SK하이닉스의 재무 전략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이진솔 기자 jinso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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