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vernance/지배구조 분석

[SK 이혼소송 2라운드] 법원 설득한 '비자금 카드'…오너 경영권까지 겨냥

Numbers 2024. 6. 3.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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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혼소송 2라운드] 법원 설득한 '비자금 카드'…오너 경영권까지 겨냥

최태원 SK 회장이 이혼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의 35%인 1조3800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자칫 SK의 지배구조까지 흔들 수 있는 천문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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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3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공판에 각각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지원 기자


최태원 SK 회장이 이혼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의 35%인 1조3800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자칫 SK의 지배구조까지 흔들 수 있는 천문학적 자금인 만큼 SK그룹 내부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최 회장 측에서 재판 과정과 결론이 편파적이라고 지적한 만큼 이혼소송은 3심인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 관장은 부친의 비자금과 혼인파탄의 부당함을 앞세워 반전을 꾀했다. 2심에서 승리한 노 관장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입장에서 최종전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위자료 등의 가집행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나오지만, 3심을 앞둔 상황에서 실제로 시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전 만든 비자금 카드…2심 판결 유지시 지분 매각 '현실화'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최 회장과 노 관장 부부의 공동재산 총액을 4조115억원으로 산정했다. 재산분할 비율은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각각 판단했다. 이에 노 관장이 기존에 보유한 200억원가량을 제외한 1조3808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과 다르게 항소심은 SK그룹 재산형성 과정에서 노 관장의 기여도를 인정했다. 특히 SK그룹이 지난 1992년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당시 300억원 규모의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썼다는 주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정치적 영향력’과 ‘내조 및 가사노동’이 SK 주식가치 증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세기의 이혼소송은 3심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 측은 판결 이후 입장문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듯 편향적이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고 반발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혼소송이 3심에서 크게 바뀌는 사례는 많지 않다. 다만 법조계는 분할재산의 규모와 주목도 등을 감안할 때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만약 3심에서 같은 판결을 유지한다면 최 회장과 SK그룹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조 단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며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SK그룹 지배구조는 ‘최 회장→SK㈜→사업 계열사’로 이뤄졌다. 최 회장은 지주사인 SK㈜ 지분 17.73%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SK케미칼 우선주(3.21%), SK디스커버리 우선주(3.11%), 비상장사 SK실트론 등의 일부 지분도 가졌다. 물론 법원이 최 회장의 SK㈜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노 관장도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경영권의 핵심인 SK㈜ 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과거 미국계 헤지펀드가 SK그룹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소버린 사태’도 거론된다. 소버린은 2003년 당시 SK㈜ 지분을 14.99%까지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라 최 회장의 퇴진을 압박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법조계 ’위자료 규모’ 충격…노소영, 가집행 나설까


법조계는 이번 이혼소송 항소심의 위자료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이혼 과정에서 위자료와 재산분할, 양육비 등이 ‘재산상 법률적 권리’로 고려된다. 2심에서 판결한 위자료 20억원은 앞서 1심에서 인정한 1억원에서 대폭 늘어난 금액이다. 그동안 부정행위를 저지른 배우자에게 1억원 이상 책정하지 않았던 관례에 비춰봤을 때 전향적인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한 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 가능 부분만 해도 219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며 “혼인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의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판결은 노 관장이 김 이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간녀 위자료 청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 관장이 2심 판결에 따라 위자료에 가집행을 신청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위자료는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 당사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성격으로 지급하는 돈이다. 2심 법원은 판결문에서 위자료 가집행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분할재산과 비교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3심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신청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윤필호 기자 nothin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