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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보험사 밸류업 회계정보 신뢰회복부터

Numbers_ 2024. 6. 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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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보험사 밸류업 회계정보 신뢰회복부터

잦은 ‘게임의 룰’ 변경 ‘원칙중심’ IFRS17 회계철학 퇴색보험업권간 상반된 실적 추세… ‘룰’ 변경 효과도 한 몫보험사 경영을 평가하는 ‘게임의 규칙’으로 새로운 회계제도(IFRS17)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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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게임의 룰’ 변경 ‘원칙중심’ IFRS17 회계철학 퇴색
보험업권간 상반된 실적 추세… ‘룰’ 변경 효과도 한 몫

 

보험사 경영을 평가하는 ‘게임의 규칙’으로 새로운 회계제도(IFRS17)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바뀐 규칙은 ‘원칙’만 제시하고 구체적 방법론은 보험사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 운용이 특징이다. 게다가 국내 보험상품은 특약이 많고 보장이 다양할 뿐 아니라 만기도 길다. 예기치 못한 이슈들이 빈발할 것은 이미 시행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금융당국도 ‘중대 고의 분식’이 아닌 경우 금년은 한시적 계도기간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2017년 5월 제정돼 두차례 연기 등 진통 끝에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규칙’이 수시로 바뀌고 실적이 요동을 치는 불확실성이 잦아들 기미가 없는 것은 문제다.

회사의 경제적 실질은 그대로인데 ‘규칙’이 바뀌자 갑자기 이익이 급증했다. 회계정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고 규칙을 수시로 변경하며 대응하고 있다. ‘규정중심(Rule Base)’을 ‘원칙중심(Principle Base)’으로 전환한다는 IFRS17의 도입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불평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 보험산업 현실이 ‘원칙’과 ‘자율’ 정신을 근간으로 시장 신뢰를 얻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1분기 국내 53개 보험사 당기순이익은 4조8443억원이다. 같은 기간 은행권 순이익 5조3000억원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규모다. 그럼에도 보험사 순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11.1%(6052억원) 감소했다. 생보 실적감소가 주 원인이다. 손보는 2조9694억원으로 15.4%(3960억원) 증가했지만 생보가 1조8749억원으로 무려 34.8%(1조12억원) 감소했다.

시장금리 상승으로 금융자산 평가손실이 커져 투자손익이 줄어든 영향이 공통적으로 컸지만 보험업권간 상반된 실적추세 주요인으로 ‘규칙’ 변경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손보는 금리상승에 따른 투자손익 감소를 준비금 산출기준 변경 효과로 상쇄하며 ‘룰’ 변경 효과 덕을 톡톡히 봤지만 생보는 좋지 않은 업황 뿐 아니라 ‘룰’ 변경으로 오히려 이익이 축소됐다는 지적이다.

2023년 12월 감독당국이 책임준비금과 지급여력제도 관련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을 개정했다. IFRS17 시행 후속조치 일환으로 보험사간 비교 가능성을 높이고 재무 건전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책임준비금 손해진전계수(LDF, Loss Development Factor) 산출기준을 통일했다. IFRS17에서는 손해진전계수 산출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보험사고일을 ‘원인사고일(실제 사고발생일)’과 ‘지급사유일(최초 내원, 진단, 수술, 재해판정, 사망, 의료비청구 등)’ 중에서 그동안 보험사 자율로 선택해왔다. 손보는 사고발생시점, 생보는 지급요청시점 중심으로 주로 운영해 왔지만 감독당국이 보험사고일을 개별 보험약관상 보험금 지급의무 발생일(실제 사고발생일)로 원칙을 통일한 것이다.

특히 입원비 통원비 등 후속보험금은 약관상 지급조건을 고려해 최초 사고일자로 귀속시켰다. 손해진전계수는 보험사고로 보험사 지급의무가 발생했지만 아직 청구 안된 미보고발생손해액(IBNR, Incurred But Not Reported) 추정시 적용되며 IFRS17의 핵심인 최선추정부채(BEL, Best Estimate Liability) 산출시 사용된다. 이 룰 변경으로 손보는 부채가 감소하며 일회성 이익이 발생했지만 생보는 추가 부채 증가로 1분기 순이익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보험사 이익이 당국이 정하는 ‘게임의 룰’ 변경에 따라 수시로 크게 변동하고 있다.

새로운 ‘룰’이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Contract Service Margin) 확보를 최우선 덕목으로 두면서 보험사 성장전략도 영향을 받고 있다. 2023년 1월~2024년 2월 가입금액 기준으로 생보 신계약이 237조원 이루어졌지만 보유계약은 2367조5664억원으로 오히려 2.4% 감소했다. 신계약보다 보유계약 해지가 더 컸다는 뜻이다. 보험업 환경 악화 탓도 있지만 CSM에 도움 안되는 저축성 변액 퇴직연금 등이 크게 위축되어 보험권 1분기 수입보험료가 58조952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81억원 감소했다. 특히 생보 수입보험료는 보장성이 13.3%(1조5570억원) 늘었지만 퇴직연금 등 저축성이 2조5629억원 감소해 28조393억으로 전년동기 대비 1조59억원 줄었다.

반면 손보는 자동차와 퇴직연금이 3432억원 감소했지만 장기보험 등이 9278억원 증가해 수입보험료가 30조9128억원으로 생보 실적을 넘어섰다. 업권 전체 ROA ROE 역시 모두 하락했는데 손보는 개선된 반면 생보의 수익 악화가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보험영업 환경과 제도변경 효과가 동시에 반영되면서 모든 경영지표에서 손보가 생보를 압도하고 있다. 감독당국은 ‘보험개혁회의’ 운영을 통해 조만간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생보 단기납종신이나 손보 무해지 건강보험의 계리적 가정 등 ‘룰’ 변경을 다시 예고하고 있다. 또 보험사 경영지표들이 흔들릴 수 있다.

보험사들 스스로 신뢰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과 실력을 길러야 한다. 계리 회계 인력 확충을 통해 전문성을 기르고 보험업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장기적 관점의 경영원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게임의 룰’이 불합리하고 현실에 맞지 않으면 신속히 바꿔주는 것이 시장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하지만 그 빈도와 심도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내에 있어야 신뢰회복에 도움이 된다. 더 아쉬운 점은 제도시행 이전에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요인들이 제도시행 이후에 수시로 변경되면서 시장의 불신을 오히려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를 모르면 방법도 없다. 하지만 원인을 알면 대개는 치유 방법이 있다는 의미다.

1830년 출생한 영국 요크셔의 방적공장 엔지니어 조셉 재거(Joseph Jagger)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말로만 말고 숫자를 대봐, 토머스 대본포트/김진호 공저). 재거는 방적기계가 시간이 지나면 손상되어 평형이 깨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카지노 룰렛도 기계이므로 동일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휴가를 내고 1873년 모나코 테카를로로 향했다. 당대 유명한 ‘보자르 카지노(Beaux-Arts Casino)’ 룰렛 도박장이었다. 며칠동안 룰렛 휠 상태와 당첨 숫자 빈도 관찰을 통해 37분의 1 확률을 벗어나는 숫자를 확인하고 정확히 배팅해 단 며칠만에 200만 프랑(현재 가치로 약 1000만달러)을 따서 여생을 편히 보냈다는 실화였다.

알 수 없는 재거의 높은 승률에 대응하여 카지노 운영자가 룰렛의 프렛(Fret) 숫자를 매일 바꾸면서 재거의 행운은 끝났고 상황을 눈치챈 재거는 거금을 챙겨 나온 후 평생 카지노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통계이론과 물리학이론에 충실한 룰렛 휠 설계와 제작은 완벽했다. 하지만 현실은 보이지 않는 구멍(loophole)이 나 있다는 것을 현장 엔진니어 경험과 세심한 관찰로 검증한 결과를 무기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론에 충실한 룰렛 휠 설계 제작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구멍을 메워줄 지혜도 필요하다. 감독당국은 완벽한 ‘게임의 룰’을 만들지만 시장은 ‘조셉 재거’로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