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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깅노트] 빅브라더? 하이브 방시혁

Numbers 2024. 6. 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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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깅노트] 빅브라더? 하이브 방시혁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49년 집필한 고전 소설 에서 전체주의 정부의 선전과 검열이 지배하는 통제 사회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모든 대중은 24시간 텔레스크린으로 감시당한다. 사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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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49년 집필한 고전 소설 <1984>에서 전체주의 정부의 선전과 검열이 지배하는 통제 사회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모든 대중은 24시간 텔레스크린으로 감시당한다. 사생활은 없다. 자유와 개인 사상은 철저히 금지된다. 오로지 당의 지도자 ‘빅브라더’에 대한 절대 복종만 존재한다. 빅브라더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을 안다. 

통제에 맞선 주인공은 사상 경찰의 모진 고문으로 정권에 완전히 복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과거의 기억도 조작당한다. 고문을 당한 후 ‘나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는 주인공의 진심 어린 독백은 통제가 가진 파괴적인 힘을 암시한다. 

<1984> 출간 이후 빅브라더는 개인의 자유가 말살되고 통제가 고조되는 시기에 절대 권력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국내에서도 개인의 사상 검증과 사생활 감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빅브라더가 소환됐다. 이른바 ‘민간인 사찰’이다. 

카카오톡(이하 카톡)에 대한 사이버 민간 사찰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10년 전인 2014년이다. 검찰이 무려 2360명에 달하는 민간인의 카톡 대화 내용을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보관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수사나 공소제기와는 무관한, 저항 세력을 추려내고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집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이후 수사 기관의 카톡 압수수색을 둘러싸고 혼란기가 이어졌다. 사찰 당한 민간인들은 수사 기관을 상대로 위법한 카톡 증거 사용에 항의하며 소를 제기했다. 카톡 대화 내용 등 사생활 정보가 포함된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2021년과 2022년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가이드라인이 확립됐다. 대법원은 카톡 대화 내용이 담긴 서버나 저장매체를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요건을 강화하고 대상 범위를 좁혔다. 또 압수 절차에서 대상자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수사 기관은 △범죄 혐의 사실과 관련이 있는 내용에 한해 시기를 특정해 압수할 수 있고 △피의자가 아닌 제3자의 정보를 취득할 때에는 구체적·개별적인 연관성이 있어야 하며 △압수 대상을 수사 중인 범죄와 관련된 부분에 한정해야 한다. 수사 기관이 카톡창을 열었다고 모든 대화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만약 △혐의와 무관한 내용을 취득하거나 △압수 대상이 아닌 정보를 취득하면 위법 증거 수집에 해당된다. △디지털 포렌식에 의해 관련 정보를 획득할 경우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수사 기관 관계자 따르면 카톡 관련 압수 대상은 계정 명의자에 대한 정보 획득에 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화 내용에 대한 압수는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사생활이 포함된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지고 있어서다. 

사법부가 카톡 대화 열람을 이토록 제한하는 이유는 뭘까? ‘개인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는 헌법 제 17조가 부여한 절대적 권리다.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기본권으로 나이·성별·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단 한 번 이라도 침해되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침해를 ‘인격 살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특히 국가의 수사권은 사생활 비밀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헌법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마지막 수단에 국한되도록 했다. 오로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경우에 한해 사생활을 제한할 수 있다. 전시·사변에 따른 비상계엄령 선포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인격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보장하는 게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입법 추세다. 

IT(정보기술)의 발달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공권력에 의한 개인 사찰도 진화했다. 개인이 카톡 대화 내용을 함부로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확인받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잠재적 침해 주체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이번엔 공권력이 아닌 자본력으로 중무장한 빅브라더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최대 이슈인 하이브 사태의 중심에 있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하이브 사태는 대기업이 개인의 카톡 내용을 탐색·복원·출력하고, 이를 대중에게 유출·공개한 사실상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공개된 내용에는 하이브 소속이 아닌 제3의 인물의 대화 내용도 포함됐다. 대화 자료의 시기나 범위가 특정되지 않은 ‘포괄적 수집·공개’로 모두 위법 증거 수집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감사권과 국가의 수사권은 엄연히 다르다. 기업이 개인을 감사할 수 있다고 해서 수사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사기업 구성원에 대한 정보 수집 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임직원 개인 정보를 열람하면 자칫 정보통신법 위반, 이를 통해 수집한 개인 정보를 보관·누설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그렇다고 임직원의 비위 또는 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적법 절차를 지켜면 된다. 우선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지 못하면 법원을 통해 증거 제출을 명령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법원은 △제한된 목적에서 △기간을 한정해 조사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 당사자의 동의나 법원의 증거 제출 명령을 받더라도 기업은 해당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의를 얻었다고 대화 내용을 공개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하이브가 공개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카톡 내용을 보면 방 의장이 그저 두고 볼 수 없었던 속내도 십분 이해는 간다. 민 대표가 임원 및 지인들과 경영권을 지배하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으니 속에선 천불이 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오로지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공개한 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여론 재판을 방불케 하는 지나친 처사다. 

수사 기관이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면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될 수 있다. 우리는 공권력이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알릴 경우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 여론 재판은 확정 판결보다 무섭다. 그 누구도 버틸 장사가 없다.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도 자극적인 단어로 프레임을 짜고 가두면 대중이 알아서 끊임없이 돌을 던진다. 

이렇게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 총수, 유명인들이 내상을 입고 명예가 실추됐다. 종종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하이브는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통신의 자유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공권력을 넘어서는 초법적 권한에 해당될 수 있다. 

방 의장이 ‘배임에 이르지 않은 배신 행위’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임직원에 대한 개인정보 내용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하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배임에 이르지 않은 배신 행위’를 막는 것이 개인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표해 인격을 훼손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지키는 행위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즉 방 의장이 지키고자 했던 '가능성이 낮지만 경영권 침해 가능성을 낮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침해되는 개인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다. 

하이브 사태는 좁게는 하이브와 자회사의 알력 다툼, 이사진 구성, 그리고 하이브 주주가치와 국내 엔터테인먼트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넓게는 거대 민간 기업이 개인을 어떻게 감시하고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지, 그리고 개인이 이러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공권력으로부터 우리의 대화를 감시받지 않을 절차적 권리를 얻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우리 사회는 하이브 사태를 계기로 자본력의 개인 정보 침해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침해된 권리를 구제 받기가 이전 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자각해야 한다.

빅브라더는 더 이상 강압적이고 권위적이며 절대적인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성공을 알리고 대중과 소통하며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대중은 동경하고 환호하며 때로는 함께 분노하고 울고 웃는다. 여론은 하이브 사태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해 상대 지지 측을 겨냥하면서 치열한 사이버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자본력으로 대체된 감시 권력은 부지불식간에 또 다른 누군가를 잠재 범죄자로 규정하고 대중에게 공개할 지 모를 일이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