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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객관성 신뢰성 담보안된 정말 이상한 재판
노관장 ‘이혼대박’, 상속받을 때보다 많고 세금안내
SK 미래 예측 불가, 최씨家 지배는 마지막 될수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재벌 후계자와 대통령의 딸이 만난 ‘세기의 결혼’으로 시작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재산분할이라는 ‘세기의 이혼’으로 결혼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듯합니다.
그런데 가사소송 전문변호사들은 인생에서 제일 하지 말아야 할 게 바로 이혼 소송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사생활이 낱낱이 폭로되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혼 재판은 사생활을 근거로 판결을 하는 만큼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야말로 ‘원님 재판’이 된다는 것입니다. ‘원님 재판’은 원님 마음대로 판결하기 때문에 재판의 근원적 전제인 공정성 객관성 신뢰성 같은 게 담보되지 않습니다.
이런 우려는 이번 SK 가문의 이혼 재판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습니다. 법원 전산망을 통한 판결문 열람을 자제해달라는 최태원 회장 측의 요구를 재판부는 거부했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판결문이 통째로 돌아다니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재판이 ‘세기의 원님 재판’이 됨으로써 재계 서열 2위인 SK그룹이 2003년 ‘소버린 사태’ 때처럼 경영권 분쟁을 겪거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2심 이혼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 가사 2부는 최 회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노 관장 소송비용의 70%를 최 회장이 부담하라고도 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두 사람의 공동재산 4조115억원에 대해 최 회장 65, 노 관장 35의 비율로 나누도록 했습니다. 노소영 관장의 선친인 고 노태우 대통령의 후광 덕분에 SK그룹이 성장했다며 노 관장의 기여도를 대단히 폭넓게 인정했습니다. 그 결과 1심에서는 이른바 ‘특유재산’(特有財産)으로 인정돼 분할 대상에서 빠졌던 SK그룹의 지주회사 SK㈜의 최 회장 지분 17.7%까지 포함됐습니다.
2심 판결이 ‘원님 재판’이라고 지적받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이 공동으로 창업해 오늘날의 SK그룹을 일군 게 아닌데도 가사와 양육을 전담한 배우자에게 무슨 근거로 무려 35%의 기여도를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노소영 관장이 이혼하지 않고 최태원 회장 사후 아내로서 상속받는다고 가정하면 자식이 셋이기 때문에 노 관장이 받는 상속 비율은 1.5/4.5, 즉 33%가 됩니다.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과 백년해로하지 않고 이혼을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더 큰 실익을 챙기게 됐습니다.
더욱이 상속을 받을 경우 상속세가 60% 정도 되는 데 반해 이번처럼 재산분할 및 위자료를 현금으로 받으면 세금 한 푼 내지 않습니다. 노소영 관장은 그야말로 ‘이혼 대박’이 난 것입니다. 앞으로 재벌가라면 전략적으로 상속보다 ‘절세 이혼’을 택하는 것도 고민해 볼 만합니다.
‘세기의 이혼’ 원조는 아마존 창업자 겸 CEO인 제프 베이조스 부부입니다. 아내가 창업부터 함께 했고 최 회장처럼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지만 제프 베이조스는 아내 매켄지 스콧에게 자신이 가진 아마존 지분 16.3% 중 25%인 4%를 넘겨주고 의결권은 자신이 갖는 것으로 합의합니다. 이에 비춰봐도 공동창업자도 아니고 사업 파트너도 아닌 노소영 관장에게 35%의 재산을 주라는 판결은 이해가 안 됩니다.
SK㈜ 지분 등 특유재산이 분할 대상에 포함되고 두 사람 공동재산의 35%를 노 관장에게 주라고 2심 재판부가 판결한 데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유입돼 ‘종잣돈’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태평양증권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 SK그룹의 사업확장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호막이 됐다고 판단한 것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들은 근거가 부족하고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SK그룹으로의 300억원 유입은 노 관장 모친의 메모와 어음만 있을 뿐 수사로 입증된 게 아닙니다. 설령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이 SK에 유입됐다고 인정해도 불법 자금이라면 재산분할 대상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게 상식입니다.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 아니라 군사정권 청산을 외친 김영삼 정부 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삼성 현대차 LG그룹 등 한국 대표 그룹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SK그룹 역시 그룹 총수의 재산은 넓게 보면 가문과 집안 형제자매들의 공동재산입니다. SK그룹은 1998년 최종현 회장이 갑자기 작고하자 경영권 분쟁을 막기 위해 가족회의를 열어 경영 능력이 탁월한 최태원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었고, 그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SK 지배구조가 형성됐습니다.
최태원 회장도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집안 가족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2018년 1조원 상당의 SK㈜ 지분을 23명의 친족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재판부는 가족들에게 나눠준 1조원에 대해서도 노 관장에게 35%를 배분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런 ‘원님 재판’이 또 있을까요?
이번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으로 SK그룹이 흔들리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2심 판결대로라면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 노관장 소송 비용의 70%를 지급해야 합니다. 여기에다 수백억원에 이를 본인 소송비용까지 포함하면 1조5000억원에 가까운 현금이 필요합니다.
최 회장 수중에 현금이 있다면 문제 될 게 없지만 그는 SK㈜ 지분을 담보로 이미 400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상 빈털터리 신세입니다. 최 회장이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뒤 SK그룹은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했지만 최태원 회장 개인은 ‘가난한 오너’로 유명합니다. 승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최종현 회장이 급작스럽게 타개했기 때문에 배당이든 급여든 번 돈을 전부 지배구조 강화에 투입해야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1조5000억원을 마련해야 할까요? 현금이 없기 때문에 최 회장은 보유 주식을 팔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알려진 대로 최 회장이 가진 주식은 2조원 상당의 그룹 지주사 SK㈜ 지분 17.7%와 6000억~8000억원으로 추산되는 비상장사 SK실트론 지분 29%가 전부입니다. 나머지 지분들은 미미합니다.
주식을 팔아서 현금을 마련한다고 가정하면 현행 주식 양도소득세법에 따라 대주주의 경우 양도차익이 3억원을 넘으면 양도세 27.5%를 물어야 합니다. 따라서 최 회장이 주식을 팔아 1조50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하려면 대략 2조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결국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 등 1조5000억원을 마련하려면 17.7%의 SK㈜ 지분을 전부 팔거나 아니면 29%의 비상장 SK실트론 지분 전부와 SK㈜ 지분 17.7% 중 절반 이상을 팔아야 합니다.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지분 구성은 최태원 회장 지분과 특수관계인 지분이 총 25%에 불과해 경영권 방어에 매우 취약합니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SK그룹의 주인이 최씨에서 노씨로 바뀐다, 제2의 소버린 사태가 발생한다, 국내 대형 사모펀드가 SK그룹을 인수한다, 모그룹이 SK하이닉스를 인수한다는 등 온갖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취약한 SK그룹의 지배구조가 근본 원인입니다.
‘세기의 원님 재판’이 SK그룹과 한국경제 전체에 몰고 올 파장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노소영 관장의 완승을 선언한 2심 재판부가 과연 이런 문제까지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인 최태원과 자연인 노소영의 이혼은 단지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계 서열 2위인 SK그룹 전체의 문제이며 나아가 한국경제의 현안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최 회장이나 SK그룹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지켜야 하기에 지분매각은 최소화하면서 이런저런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우선 엄청난 이자 부담을 감수하고 SK㈜ 지분이나 SK실트론 주식을 담보로 최대한 대출을 받아 버티는 방안이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소버린 사태 당시처럼 SK㈜가 보유한 자사주 25%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사주를 외부에 매각하거나 주식 교환으로 의결권을 부활시켜 백기사로 활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노 관장에게 1조4000억원에 가까운 재산분할금과 위자료를 주고 나서 경영권을 방어한다 해도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최씨 가문의 SK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급속하게 약화될 것입니다. 앞으로 SK그룹은 어떻게 될까요? SK그룹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태원 회장을 마지막으로 최씨 가문의 SK그룹 지배는 끝나는 걸까요?
주역에 입우감담(入于坎窞)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덩이에 빠지고 또 빠진다는 뜻입니다. 꺼내줄 사람도 없고 헤치고 나올 수도 없습니다. 발버둥 칠수록 더 빠집니다. 주역에서는 이럴 때는 참고 기다리면서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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