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분석

[박종면칼럼] SK家 이혼 재판이 던지는 질문들

Numbers_ 2024. 6. 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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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SK家 이혼 재판이 던지는 질문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사상 최대인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과 사상 최대 2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은 이혼 소송이 애초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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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사상 최대인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과 사상 최대 2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은 이혼 소송이 애초 판사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는 ‘비송(非訟)사건’인 점을 감안해도 많은 논리적 비약이 있습니다. 

우선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300억원이 정상적인 돈이라고 해도 노소영 관장 돈이 아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돈입니다. 아버지의 돈이 기여한 몫을 자식이 모두 갖는 것은 모순이고 비약입니다. 더욱이 300억원이 불법 비자금이라면 그에 따른 과실은 노 관장이 가져갈 게 아니라 국고 환수하는 게 상식입니다. 

또 300억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 돈이 아니고 노소영 관장 돈이라고 해도 SK그룹에 유입된 뒤 어떻게 무려 1조3808억원으로 불어났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 외에는 달리 없습니다. 그냥 재판부의 ‘재량’이고 ‘생각’일 뿐입니다.

SK그룹이 지금처럼 재계 2위로 성장한 데는 2012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가 결정적입니다. 노 관장이 35%의 재산을 가져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최 회장을 제치고 SK그룹 지주사인 SK㈜의 1대 주주가 될 정도면 하이닉스 인수와 성장에도 기여한 바가 있어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이닉스 인수가 2012년인데 비해 최 회장과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재판부 판단에 따르면 2008년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즉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당시 이미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부부관계가 파탄난 상태였습니다.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사상 최대의 재산분할과 위자료 지급을 판결한 항소심 재판을 ‘징벌적 판결’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왜 최 회장에게 징벌적 판결을 내렸을까요? 최 회장은 왜 재판부에 찍혔을까요? 왜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듯한 판결을 내렸을까요? 재판장은 왜 보기에 따라서는 ‘젠더 편향’이라 할 만한 판결을 했을까요?

외교의 언어가 그렇듯 법원의 언어도 논리적 이성적일 뿐 아니라 우회적이고 점잖습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고 더 무게를 갖습니다. 이번 서울고법 가사2부의 판결문은 대단히 직설적이고 대단히 감정적이고 대단히 노골적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2013년 노 관장에게 보낸 옥중편지, 2015년 세계일보 공개편지를 통한 혼외자 고백, 2019년 이후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과의 공개 활동 등을 예로 들면서 조목조목 최태원 회장을 꾸짖고 질책합니다. 

“2011년 일방적으로 ‘가출’해 현재까지 십수년간 별거하면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 관장이 유방암 판정을 받은 것은 최 회장 외도에 따른 정신적 충격 때문이다.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희영 이사장과 재단을 설립하고 공개적 활동을 지속해 마치 ‘유사 배우자’ 지위에 있는 태도를 보였다. 헌법이 보호하는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노 관장에 대한 생활비 지원을 중단했다.”

재판부의 최 회장에 대한 질타는 끝이 없지만 요약하면 “최 회장은 헌법이 보호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인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를 무시했고, 혼인 생활의 파탄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이며 따라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틀린 말이 없습니다. 외도를 한 것은 최 회장이고 유책배우자도 최 회장이며, 현행 민법에 따르면 유책배우자는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도 없습니다. 

자연인 최태원과 자연인 노소영의 부부관계 파탄은 전적으로 최태원의 잘못일까요? 

법원 판결문, 세계일보에 보낸 편지 등을 근거로 추론해 보면 최태원과 노소영은 1988년 결혼하고 15년정도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한 후 파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태원은 2015년 세계일보에 보낸 편지에서 “저와 노소영 관장은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고 종교활동 등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도 해봤지만 더 이상의 동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됐다. 자랑스럽지 못한 개인사를 자진해서 밝히는 게 옳은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치부를 밝히고 결자해지하려 한다.”고 고백합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비슷한 시기 노소영도 이혼은 하지 않고 가정은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남편은 피해자고 내가 상대방의 감정을 읽지 못했고 상처를 입혔다”고 말합니다. 

종합해 보면 최태원과 노소영은 1988년 결혼해 지금까지 36년간 법적 부부관계를 유지하지만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15년 정도에 불과했고 10년 이상 불화를 겪다 최태원이 외도하고 혼외자를 갖게 되자 ‘가출’하고 ‘유사 배우자’와 동거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외견상으로는 외도하고 결혼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사 배우자와 동거한 최태원의 책임이 크지만 노소영 스스로 인정했듯이 최태원이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10년 이상 불화를 겪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더욱이 최태원이 일부일처제를 무시하고 유사 배우자와 동거한 데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현행 민법상의 ‘유책주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OECD 국가 중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유책배우자도 파탄이 났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파탄주의’를 채택합니다. 

유책주의는 가정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혼 청구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제도지만 지금처럼 이혼이 일상화된 현실에서는 과도하게 국가권력이 개인의 내밀한 곳까지 개입하는 것이어서 간통죄처럼이나 폐지해야 할 낡은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최태원의 죄라면 외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숨겨야 했는데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공개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겸 철학자, ‘시대의 현자’ ‘닥터 러브’로 통하는 알랭 드 보통은 ‘인생학교’ ‘영혼의 미술관’ ‘우리는 사랑일까’ ‘사유 식탁’ 등 여러 저서에서 사랑과 외도 결혼 생활에 대해 일관되게 말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욕구에 성적으로 감성적으로 평생 해결사가 돼야 하는 야만적인 지금의 결혼제도가 진짜 문제다. 탈선과 외도는 비밀스러운 모험을 통해 결혼 생활의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다. 부부가 외도의 충동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지 않는 것은 기적과도 같지만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한쪽이 실수했다면 상대방은 그냥 분노할 게 아니고 스스로 성찰해 봐야 한다. 배우자와 대화에 얼마나 인색했는지, 괜히 성질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매력적으로 가꾸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자연인 최태원과 자연인 노소영 이혼의 유책배우자는 누구일까요? 최태원만의 책임일까요 아니면 노소영한테도 책임이 있을까요? 야만적 결혼제도가 문제라면 개인의 잠자리까지 공권력이 개입하는 유책주의는 타당한가요? 아니면 비판받아야 하나요? 엄격한 도덕주의로 무장하고 젠더 편향성까지 보이는 재판부가 재량으로 사생활을 평가하고 단죄하는 데서 나아가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의 주인까지 바꿀 수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가정법원이니까 기업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태도는 양해가 될까요?

최태원 노소영의 이혼 재판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여러 질문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