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vernance/지배구조 분석

SK에 드리운 '최재원 역할론'…구원등판 승부수 통할까

Numbers_ 2024. 6. 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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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 드리운 '최재원 역할론'…구원등판 승부수 통할까

SK그룹이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최재원 역할론'이 일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일부 경영 활동에 발목이 잡히자 동생인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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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8월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3'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SK

 

SK그룹이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최재원 역할론'이 일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일부 경영 활동에 발목이 잡히자 동생인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최 수석부회장은 최 회장을 백업 지원하며 전반적인 그룹 구조 개혁을 도모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오너임에도 낮은 지배력은 여전한 한계다.

 

끈끈한 형제애…핵심 계열사 SK이노베이션에 번졌다


최 수석부회장은 최근 SK온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동하며 활동영역을 넓히게 됐다. 통상 임원인사가 연말에나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원포인트 인사는 이례적이다.  SK그룹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에 오너 경영인이 선임된 것도 최 회장 이후 처음이다. 

최 수석부회장의 SK이노베이션 선임은 최 회장의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 회장에게 최 수석부회장은 가장 믿을 수 있는 혈육이자 경영진이다. 실제로 두 형제의 우애는 각별하다. 최 수석부회장은 2013년 계열사의 펀드 출자금 465억원을 횡령해 선물옵션 투자에 사용한 혐의로 최 회장과 함께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재판에서 최 부회장은 "자신이 범행을 주도했고 사실은 내가 한 일이라고 형에게 고백했다"고 진술했고 최 회장은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러웠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문용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 회장과 최 수석부회장의 관계를 '보스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는 조직폭력배'로 비유하기도 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SK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이 지닌 리스크 중 하나는 오너 부재에 대한 플랜 B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최 회장에게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믿을만한 동생을 통해 경영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석유화학 등 주력 사업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최 수석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전반에 걸친 포트폴리오 재정비를 지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최 수석부회장이 등기이사 선임을 거쳐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로 선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촌보다는 친형제?…왜 최창원 아닌 최재원인가


SK그룹 내부적으로는 '최태원 회장-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이어지는 형제경영 체제가 한층 견고해졌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해 단행한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사촌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신규 의장으로 임명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그룹 22개 계열사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의사협의기구다. 이 때문에 사촌형제인 최창원 의장이 최 수석부회장을 제치고 'SK 2인자'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최 수석부회장의 입지는 여전히 견고하다.

이는 SK그룹 고유의 한 지붕 세 가족 체제 영향이다. 최 회장은 지주사인 SK㈜를 통해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최 회장의 SK㈜ 지분은 17.72%다. 최 회장은 SK㈜를 통해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 E&S 등을 지배하고 있다.

 

 
종가인 고(故) 최종건 창업주의 차남 최신원 회장과 삼남 최창원 의장은 각각 SK네트웍스, SK디스커버리의 독자적인 경영을 맡았다. 최 의장은 SK디스커버리를 중심으로 바이오, 화학, 액화석유가스(LPG) 등 제조업 기반 사업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이 때문에 계열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현재까지도 SK그룹 내 전략적 동거를 이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창원 의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는 SK라는 브랜드만 함께 쓸 뿐 사실상 독자경영을 구축하는 느슨한 연대를 갖췄다"며 "이같은 경영구조를 감안한다면 최 회장으로써는 최 수석부회장 쪽이 더 믿음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분율 0.14% 오너 경영진…왜?


최 수석부회장이 '지분 없는 오너'라는 점은 모순적이다. 이는 SK 특유의 지배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1998년 최종현 창업주가 갑작스레 작고하자 SK그룹은 경영권 분쟁을 막기 위한 가족회의를 열었다. 최 창업주의 자녀들을 포함한 최씨 일가는 한 자리에 모여 최종현 선대회장의 아들인 최태원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고 지분을 몰아 주기로 결정했다. 지분 구조가 취약했던 SK그룹 경영을 안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최 회장은 훗날 가족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21조원 상당의 SK㈜ 지분을 친족 23명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최 수석부회장은 2018년 11월 최 회장으로부터 166만주, 2019년 7월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29만6668주를 각각 증여받았다. 하지만 최 수석부회장은 2019년 8월부터 올해 3월에 이르기까지 총 24번에 걸쳐 SK㈜ 주식 185만주를 약 4295억원에 처분했다. 이로써 최 부회장의 SK㈜ 보유 지분은 2.76%에서 0.14%로 쪼그라들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그룹 내부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최 수석부회장이 증여세 예상 비용을 넘어선 지분 매각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간다"며 "1998년 최 회장에게 경영권을 몰아줬을 당시 최씨 일가에서 어느정도 합의가 된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