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사건파일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컨소시엄의 ‘풋옵션(Put Option·투자한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 분쟁’이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그동안 이들은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와 국내 법원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지만 분쟁의 핵심인 ‘풋옵션 행사 가격’에 대해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신청한 ICC 2차 중재 결과는 이르면 내년에 나올 것으로 알려져 있어, 양측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될 예정이다.
풋옵션 분쟁의 배경은 무엇일까. 양측은 어떤 쟁점을 다투기에 긴 분쟁을 이어가고 있을까.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컨소시엄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 풋옵션 분쟁을 되짚어봤다. 분쟁과 관련된 판결문 등을 토대로 했다.
풋옵션 계약 맺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이하 어피니티)은 가디언홀딩스리미티드, 베어링PEA, IMM PE, 헤니르유한회사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 2012년 9월 어피니티 측은 대우인터내셔널이 갖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492만주)를 총 1조 2054억원(주당 24만 5000원)에 사들였다.
그러면서 어피니티 측은 교보생명의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당시 약 33.7% 지분 보유)과 ‘주주간 계약’(SHA·Shareholders’ Agreement)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교보생명이 2015년 9월 30일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으면 어피니티가 이번에 산 지분을 신 회장에게 되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풋옵션 조항이 포함됐다.
교보생명 주주가 된 어피니티가 신 회장의 의견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도 판결문을 보면 확인이 된다.(기타 확약사항)
신 회장 입장에서는 2대 주주가 된 어피니티 측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경영권을 방어하고, 대신 어피니티 측은 교보생명의 IPO로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할 수 있는 셈이었다.
IPO 불발, 어피니티의 풋옵션 행사
약속한 시점에 교보생명의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지난 2018년 10월 어피니티 측은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니티 측은 주주 간 계약에 따라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하 안진)을 선임해 풋옵션 주식에 대한 공정시장가격(FMV·Fair Market Value)을 산정했다. 계약 7.3조에는 풋옵션을 행사한 어피니티 측과 신 회장이 각각 공신력 있는 회계법인, 금융기관 등을 평가기관으로 선임해 FMV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어피니티가 “주식을 되사가라”며 풋옵션을 행사할 때, 신 회장이 1주당 얼마에 사들여야 하는지 정한다는 의미다.
양측이 산정한 FMV의 차이가 10% 이내면 두 가격의 평균을 계산한다. 10% 이상의 차이가 나면, 어피니티가 제안한 3곳의 평가기관 가운데 1곳을 신 회장이 선정해 그 기관이 제시한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만약 신 회장이 10일 이내에 추가 평가기관을 선정하지 않으면 어피니티 측이 선정할 권리를 갖게 된다.
일단 어피니티 측이 안진을 통해 산정한 FMV는 주당 40만 9912원이었다. 이는 어피니티 측이 교보생명 주식을 샀던 가격(주당 24만 5000원)의 약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이를 근거로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으로부터 지분을 되사오는 가격을 계산하면 2조 167억원에 달한다.
신 회장은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다며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 회장이 내놓은 FMV는 어땠을까.
신 회장은 FMV를 내놓지 않았다. 가압류 취소 등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FMV 가격 결정을 위해 필요한 최대주주 측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았다.
주주 간 계약에 이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이 규정돼 있지 않았다. 계약과 관련한 분쟁을 ‘대한민국 서울에서 진행되는 ICC 중재에 의해서만 해결된다’라고 정했을 뿐이다(12.2조). 어피니티 측으로선 신 회장에게 계약을 이행하라고 주장하고, 신 회장이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12월 교보생명이 이사회를 열고 2019년에 IPO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양측의 관계는 악화됐다.
지난 2019년 3월 어피니티 측이 신 회장을 상대로 ICC에 중재 신청을 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풋옵션 분쟁이 본격화됐다.
결과적으로 '허술'했다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당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 내용을 더 촘촘하게 짜 놓았다면 지금과 같은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신 회장대로, 어피니티는 어피니티대로 상대방을 너무 신뢰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분쟁 예방책을 만들어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례로 신 회장의 경우, 계약 당시 IPO가 불발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신 회장에게 IPO 불발은 거액을 들여 어피니티가 가진 지분을 되사와야 한다는 의미로, 큰 부담이 된다. 그런데도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나 FMV에 반대하는 경우 등을 계약을 통해 대비하지 않았다는 건 신 회장이 IPO를 낙관적으로 바라봤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설령 IPO가 불발되더라도, 어피니티가 제시할 FMV가 신 회장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이런 탓에 신 회장은 어피니티 측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할 안전장치를 계약서에 만들어 놓지 않았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식으로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어피니티의 경우, 자신들의 풋옵션 행사를 신 회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대응책을 계약에 명시하지 않았다. 사전에 이러한 규정을 합의하지 않았으니 어피니티로선 끊임없이 신 회장에게 계약을 이행하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다. 어피니티 측이 신 회장을 상대로 신청한 ‘계약 이행 가처분’ 사건 결정문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확인됐다.
이 결정문에는 “채무자(신 회장)는 채권자들(어피니티 측)의 수차례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채권자들의 풋옵션 행사 통지일로부터 30일이 도과하도록 주주 간 계약 7.3조에서 정한 FMV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았고, 채권자들에게 FMV 평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기재돼 있다.
끝내 양측은 각각 법원에 판단을 구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허점 때문에 이들의 법정 공방은 ‘계약 이행’이라는 핵심을 빗겨나가고 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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