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vernance/지배구조 분석

해성그룹, 지주회사 전환 마침표…다음 과제는 '3세 승계'

Numbers 2023. 11. 19. 22:39

(사진=해성산업)


해성그룹의 자동차 부품 계열사 계양전기가 해성산업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지주회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행위제한 의무를 해소하기 위한 절차다. 이로써 해성그룹은 3년간 장고를 거듭한 끝에 지주사 체제 전환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지주회사 체제 행위제한 요건이 모두 충족되면서 단재완 회장의 경영 승계에 시장의 관심이 옮겨간다. 오너 2세인 단 회장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물밑작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후계구도가 비교적 명확한 다른 기업집단과 달리 해성그룹을 이끌어갈 차기 오너가 누가 될 지 좀처럼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에선 형제간 계열분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경영권 승계 물밑작업' 지주사 전환 마무리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계양전기는 올 9일 보유하고 있던 해성산업 지분 전량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처분 주식은 보통주 4893주와 우선주 2만329주다.

이는 지주회사 체제 행위제한 의무를 해결하기 위한 포석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에선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라는 수직적 출자만 허용된다. 따라서 자회사는 손자회사 외의 다른 계열 지분을 가질 수 없고, 만약 보유 중일 경우 공정위가 결정하는 유예기간 안에 모두 정리해야 한다. 앞서 올해 2월에도 계양전기는 또 다른 계열사인 해성디에스 지분을 인적분할 후 해성산업에 합병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시장은 해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은 지주사 지분 확보만으로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성격상 통상 승계와 맞물려 일반 기업에서 종종 이뤄져 온 방식이다.

단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뿐만 아니라 한국제지를 세하에 흡수합병하는 작업도 올해 마쳤다. 한국제지는 1958년 설립된 그룹 모태격 회사다. 2020년 7월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해성산업에 흡수합병됐으나 같은 해 11월 물적분할을 통해 다시 등장했다. 이후 올해 8월 또 다른 상장 계열사인 세하에 흡수합병시키고, 존속법인인 세하의 사명을 한국제지로 바꾸면서 우회상장 효과를 누렸다.

단 회장으로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두 회사의 합병 신주가 발행되면서 오너가(家) 지배력이 확대돼 3세 승계작업이 용이해졌고 그룹 정체성이 녹아 있는 한국제지를 다시 증시에 입성시키며 역사적인 명분까지 되살렸다.


'현금왕' 단사천 선대회장 명맥 이어갈 차기 오너는 누구

 

단 회장은 1947년 3월생으로 올해 만 76세를 맞이했다. 연세대 철학과 출신으로 1978년 그룹 모태인 한국제지에 입사했다. 이후 자회사인 한국팩키지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1년 부친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그의 부친은 1950~1960년대 명동 사채업계를 주름잡으며 ‘현금왕’으로 불렸던 고(故) 단사천 선대회장이다.

단 회장은 단 선대회장의 슬하에 있던 9명의 자녀 가운데 유일한 아들이었던 만큼 순조롭게 경영 승계를 받을 수 있었다. 2세들 중 유일하게 한국제지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며 일찍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반면 3세 후계구도는 2세에 비해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단 회장은 장남 단우영 부회장과 차남 단우준 사장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1979년생과 1981년생으로 두 살 터울 형제인 두 사람은 나란히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모두 미국 유학을 다녀왔으며, 졸업 후 삼일PwC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형제 간 계열분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형제, 사촌 간 경영에서 계열분리 사례는 적지 않았다.

계열분리는 오너들 간의 거래로 진행된다. 주고 받을만한 게 있어야 분리가 가능한 것이다. 대표적인 계열분리로는 LG-LX그룹 사례가 꼽힌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현 구광모 회장 체제가 자리잡은 뒤 보유 중이었던 LG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지분 정리로 생긴 금액으로 LX홀딩스의 지분을 샀다. 대신 구광모 회장은 LX홀딩스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각자의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러운 계열분리를 이뤄낼 수 있었다.

해성그룹으로 돌아오면 단우영 부회장-단우준 사장 형제간도 주고 받을 유인이 있다. 먼저 이들은 지주회사인 해성산업의 지분을 12.19%, 12.06%씩 각각 보유하고 있다. 또 한국팩키지의 지분을 5.03%씩 갖고 있으며, 해성디에스 지분율도 1.09%로 똑같다. 계양전기 지분율은 1.89%·1.87%로 거의 차이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이 어떤 계열사를 가져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계열분리가 원활하게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박수현 기자 clapnow@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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