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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무구조도 작동 방식을 살피고 내부통제 강화 효과를 전망해 봅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고위경영진 및 인증제도(SM&CR)'를 도입한 지 8년여가 지났지만 영국 금융주체들 간에도 제도의 효용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초부터 시범운영 중인 책무구조도가 SM&CR을 '벤치마킹'한 상황에서 소극적인 제재로 인한 '책무구조도 무용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고예방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8일 <블로터> 취재를 종합하면 책무구조도를 처음 도입한 영국에서는 수년이 지났지만 당국의 제재가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최근까지 제기되고 있다.
FCA 산하 건전성감독청(PRA)에 따르면 제도가 적용된 지난 2016년부터 2022년 3월까지 고위경영자를 조사한 건수는 95건이다. 이 중 종결된 사건은 24건으로 전체의 75%가 계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마무리된 24건 중에서도 20건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론이 났다. 영국 학계에서 감독당국의 소극적인 제재로 제도의 효용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국내의 한 지배구조법 전문 법조인은 "제재 건수가 적다고 제도의 유효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로 영국 감독당국은 사전감독 체계에 중점을 둬 이미 많은 영역에서 변화가 감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반박했다.
핼리팩스은행(HBOS)의 '피터 커밍스 제재'건이 대표적이다. 2018년 HBOS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과도하게 늘리는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도산에 이르렀다. 이 사고 발생의 장본인으로 지목됐던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 커밍스는 50만파운드(약 9억원)의 벌금과 더불어 은행을 포함한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등 금융 업계 고위경영직 취업 금지 명령도 받았다. 같은 해 5월 바클레이스은행 CEO인 제임스 스털리도 부정행위자 징계 대신 내부고발자를 색출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재금 64만2430파운드(약 11억1824만원)가 부과됐다.
SM&CR 무용론을 반박하듯 FCA는 2019년 8월부터 3년 동안의 실태조사 결과 '금융사들은 개인 책무의 명확한 기술, 강화된 준법교육 같은 여러 요인의 조합으로 내부통제에 보다 큰 책임을 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120개 기업 중 약 95%는 SM&CR이 임직원의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고 동시에 감독관(PRA)의 70%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영국 학계는 고위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추궁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소극적인 경영으로 이어져 기업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리스크를 수반하는 전략적 결정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경영진이 '안정적인 결정'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의 비즈니스 행위가 경영상 판단인지, 책무위반에 해당하는지 판단 기준의 모호성에 기인한 문제로, 향후 국내 금융권에서도 책무구조도 적용 이후 금융권과 금융당국 및 사법부의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이와 관련해 SM&CR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경영진이 소관 영역에서 합리적인 내부통제 관리 조치를 이행했을 경우, 확실한 감면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감독당국은 제도를 집행할 때 금융사의 내부통제 관리 조치의 실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금융사 고위경영자는 금융사고에 대해 직원의 위법행위를 알 수 없었다며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자신의 책무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인센티브'를 갖기를 기대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내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금융사고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성수용 금융감독원 선임교수는 "영국을 포함해 호주, 유럽연합(EU), 싱가포르, 홍콩 등 어느 나라든지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금융사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없지 않나"라며 "책무구조도를 만들더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다만 제도 적용 이후에는 '대규모 금융사고 발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한테 책임이 있는지'를 묻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위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해 내부통제 조직문화가 확산되면서 모든 임직원에게 책임의식이 정착되고 사고예방에도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최주연 기자 prota@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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