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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매트릭스]⑤ '속도전' 내세운 강석훈 회장, '승자의 저주' 깊어지는 고민

Numbers 2023. 9. 28. 06:47

산업은행은 2016년 HMM(옛 현대상선)을 인수한 이후 많은 공을 들였다. 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기반을 다졌다. 이 같은 지원을 등에 업은 HMM은 해운업 호황기에 올라타면서 실적 개선이라는 성과를 도출했다. 지난해 정부는 자신감을 얻고 민영화를 공식화했다. 이에 산업은행도 지난 3월 매각관련 절차에 착수했고 7월에 주식매각 공고와 함께 본격적인 추진에 나섰다.

자신만만하게 민영화 깃발을 내걸었지만 실무에 나선 산업은행의 속내는 복잡하다. HMM의 적정한 몸값을 산정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매각 이후 지속 가능한 경영을 펼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하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어렵게 살린 국적선사가 또다시 위기에 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전이 ‘고래 없는 새우싸움’으로 흐르면서 KDB산업은행의 셈법도 복잡한 상황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딜클로징(거래 종결) 이후 HMM이 산은으로 되돌아오는 상황까지 염두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딜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대기업에 물밑 거래를 제안할 가능성까지도 보고 있다.

 

달라진 산업은행 정책 기조, '속도전' 강조

 

산업은행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배드뱅크(부실자산을 처리하는 은행)와 법정관리인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규모가 크고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높은 분야에서 해결사로 나섰다. 하지만 언제까지 부실기업을 인수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해야 하냐는 비판적 시각도 커졌다. HMM을 제외하고는 회복에 성공한 사례가 드문 점도 이 같은 지적에 힘을 실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사진=산업은행 제공)

 

이런 가운데 새정부 들어서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진행한 기업들도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책 기조의 변화는 지난해 수장으로 취임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 회장은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 △대주주의 책임이행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등 기존 구조조정 원칙에 더해 △신속 매각을 새롭게 추가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숨가쁜 속도전을 펼쳤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한화그룹에 쌍용차(현 KG모빌리티)는 KG그룹에 각각 매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영권 프리미엄도 붙이지 않아 ‘헐값 매각’ 논란이 나왔다. 여기에 KDB생명 매각 절차도 추진 중이다. 이번에 HMM까지 엑시트에 성공하면 새정부 출범 이후 내세웠던 공공기관 ‘슬림화’ 목표를 어느정도 달성하는 셈이다.

다만 HMM의 주인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금 여력을 확인하는 단계부터 우려가 나오는 형국이다. 초대형 원매자들이 몸을 사리는 대신 중견기업들이 인수전에 참전하면서 기대와 다른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숏리스트(적격인수후보)로 선정된 하림과 동원, LX가 각자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후보 기업들은 HMM에 지불할 자금 여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재 보유 자산을 매각하거나 재무적 투자자(FI)를 확보하면서 실탄 마련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려가 여전히 큰 상황이다. 산업은행 입장에서 FI 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일은 달갑지 않다.

 

잡음 부르는 '승자의 저주' 공포

 

산업은행에게 HMM 민영화는 공적자금 회수 이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국적선사로서 국내 수출입 물류를 담당하는 국적선사를 매각하기에 단순히 몸값만 회수한다고 끝나는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식은 강 회장이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발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한국 해운산업에 기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고 자본·경영 능력을 갖춘 업체가 인수기업이 되길 원한다”고 말하며 매각 조건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HMM을 인수하고도 운영을 감당하지 못하고 위기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 입장에서 회생에 성공한 HMM을 다시 떠맡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IB 업계를 중심으로 유찰 가능성을 비롯해 아시아나항공과 통매각 시나리오 등 잡음이 나오는 형편이다.

향후 HMM 주인이 산업은행에서 FI로 손바뀜하는 '세컨더리 거래'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이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이 보유한 기업 지분을 다른 운용사 등에 매각하는 방식의 거래를 말한다. 산업은행이 매각 명분으로 내세운 민영화 취지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인수자 측에서 HMM이 축적한 12조원의 현금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HMM은 산업은행 산하에서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고 실적 개선세를 가져갔다. 이를 통해 현금을 쌓았는데 올해 상반기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현금및현금성자산+기타유동금융자산+기타유동자산)은 12조4373억원을 기록했다. 인수자 입장에서 부족한 자금을 무리하게 끌어 모아 보충한 만큼 유용할 유인도 높다는 판단이다.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HMM의 막대한 영구채 물량도 장기적으로 이 같은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여기에 해운업계 경영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 해운업황은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경쟁구도 개편 등으로 하방 압력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간 실적 회복을 끝내고 다운사이클로 접어든다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제2의 SK하이닉스' 케이스 나올까

 

관련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과거 SK의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 사례를 기대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개매각 등에서 마땅한 인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하이닉스반도체를 SK그룹이 뒤늦게 뛰어들어 인수했다. SK와 STX, 현대중공업 등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 후반부에 뛰어들며 판도가 뒤집혔는데 직전까지 유일한 원매자는 효성이었다. 당시 효성도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현대자동차나 포스코 그룹 등 새로운 대기업 원매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MM 매각과 관련해선 올해 너무나도 많은 소문이 돌았고, 따라서 어떤 가설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그 어떤 시나리오도 일어날 지 모른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로 산은이 이 와중에도 현대차, 포스코와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일지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산업은행은 이 같은 우려에도 HMM 매각을 변동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HMM 매각과 관련해 중단 가능성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절차는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며 “상황에 따라 변동성은 있겠지만 11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하고 연내 주식매매 계약(SPA) 체결 계획을 일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필호 기자 nothing@bloter.net
박수현 기자 clapnow@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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