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빨대, 종이컵 등 일회용품을 덜 쓰는 분위기가 익숙해졌습니다. 상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이 일회용품 줄이기에 나서니 소비자들도 탄소 중립 실천에 좀 더 자극을 받는 것 같습니다.
탄소 중립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중요한 개념입니다. 소비자가 평소처럼 사먹던 음식, 옷, 집 등을 살 수 있어야 기업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기업의 탄소 중립 활동을 강제하는 움직임이 자본시장 부문에서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일지,
그리고 탄소중립에 관심 있는 투자자는
어떤 기업에 투자하면 좋을지 알아봤습니다.
01. 기관투자자, ‘지구 온도’에 무슨 볼 일이?
탄소 중립은 지구에 남아있는 탄소는 줄이고, 남아있는 온실가스는 흡수·제거해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산불·홍수·가뭄 같은 기후변화가 예전보다 더 잦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업 활동에 적용하면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팔 때 생기는 탄소는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제거하는 활동이 곧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활동이 되겠죠.
탄소중립은 1992년 ‘기후변화협약’(UNFCCC)을 시작으로 전세계 의제가 됐습니다. 이후 각국은 1997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를 통해 구체적인 감축량을 제시했습니다. 2015년엔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맺고 지구 평균 온도를 2도(°C) 밑으로 낮추기로 했고요. 2019년엔 121개 국가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기후동맹’에 가입하며 탄소 중립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기관투자자도 탄소중립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구 온도 상승 등 기후 변화가 ‘운용 자산의 손실’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채텀하우스)가 발간한 ‘기후변화위험평가 2021’(Climate change risk assessment 2021) 보고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산불·홍수·가뭄 등 자연재해는 식량·에너지 안보와 수자원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소비·지출이 감소하면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나아가 자본시장에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산 매각·주가 하락·연기금 부족 등으로 금융 시장을 약화하고 실물 경제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요. 결과적으로 자유 시장 경제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무너뜨려 ‘거시 경제적 불연속성’(macro-economic discontinuities)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채텀하우스의 분석입니다.
쉽게 말해 식량 안보 명목으로 식품 수출입이 어려워지면 음식을 못 먹게 되고,
에너지 수입을 못해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전기도 못 씁니다.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리면 물도 못 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운용 자산에도 손실이 생기고,
생존을 고민해야 할 상황도 벌어질 수 있겠죠.
기관투자자들이 환경에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02. 200여 투자사, 투자기업과 탄소 중립 실천 선언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은 실질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2017년 등장한 ‘기후 행동 100+’(Climate Action 100+)은 200여 투자자가 피투자 기업에 탄소 배출 감소를 압박해 나가기로 합의한 세계 최대 투자기관 이니셔티브입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과 일본 공적연금(GPIF) 같은 연기금,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블랙록·핌코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고요. 운용자산 규모만 무려 9경원(68조 달러)에 달합니다.
이들은 투자대상 기업이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게끔 의결권을 행사하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을 ‘주요 탄소 배출 기업’(SICEs·Systemically Important Carbon Emitters)으로 지정해 적극적 주주 관여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자산운용사의 탄소 중립 이니셔티브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ZAMI)도 출범했습니다. 여기 속한 자산운용사들은 2050년까지 운용 자산의 탄소 배출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장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있죠. 2023년 상반기 기준 NZAMI에 가입한 자산운용사는 315곳, 총 자금 운용 규모는 약 7경8000조원(59조 달러) 이상이라고 합니다.
03. 기관투자자의 '탄소 중립' 압박 전략, 주주 행동주의
그리고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탈탄소화를 이끄는 방식으로 ‘주주 행동주의’(Active Ownership)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앞서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도 자신이 투자하는 회사의 의결권 행사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스튜어드십 코드’도 주목받았는데요. 전세계 자산운용사의 탄소 중립 이니셔티브인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ZAMI)의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2050년까지 운용 자산의 탄소 배출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중장기 전략을 짜고 있고요. 2023년 상반기 기준 NZAMI에 가입한 자산운용사는 315곳, 총 자금 운용 규모는 약 7경8000조원(59조 달러) 이상입니다.
NZAMI에 가입한 자산운용사들은 기업들에게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것을 기업들에게 요구합니다. 구체적으로 ① 직접 배출(스코프1)부터 ② 간접 배출(스코프 2), ③ 기타 간접배출(스코프 3)까지 모두 고려하고요. 또 피투자 기업에 기후 위험과 기회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죠.
기업은 경 단위의 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이런 주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선언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기업들에게 실질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금조달과 수익 창출 활동을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중 맨 앞에 있는 환경 요인에 맞춰 펼쳐나가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04. 기업 ‘탄소 중립’ 목표 두 배로 끌어올린 슈로더
그렇다면 자산운용사는 기업의 탄소 중립 실천을 위해 어떻게 주주 행동주의를 이용하고 있을까요? 스튜어드십 코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슈로더’(Schroders)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슈로더가 어떤 기관인지 설명하기 앞서 슈로더가 최초로 인증을 받은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cience-based Target Initiative, 이하 SBTi)를 먼저 언급하려고 합니다. 다수 글로벌 기업의 지속 가능성 공시인 SBTi는 기업·금융기관의 탄소 중립 목표와 수행 과정을 검증하고 모니터링·평가하는 협의체입니다. 전 세계 총 5919개 기관, 국내 4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요. 참여 기업은 온실가스 회계 처리 및 보고 기준(GHG Protocol)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과 성격을 스코프 1~3으로 나누고 그 수치를 SBTi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슈로더는 UN의 ‘넷제로 은행 연합’((Net Zero Banking Alliance)에 서명한 유럽은행 13곳이 대출, 투자에서 생기는 온실가스인 ‘금융배출량’(financed emmission), 기후 전환 계획 및 목표 등 33개 기준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체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승인된 과학 기반 목표를 가진 있는 운용사 중 운용자산 규모가 큰 곳으로 자리잡았죠.
슈로더는 기업이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중장기적으로 더 나은 재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기업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도록 꾸준한 경영 관여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기업이 부딪힐 수 있는 ‘재무·규제·평판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도록 목표 설정과 실행 등을 도와줍니다. 화석 연료를 대체하면서도 기업이 성장 가능한 영역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식입니다.
이렇게 기업에게 조언을 한 결과 2022년에 지구 온도를 2도 이상 낮추는 목표를 세우는 기업이 2021년보다 두 배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2022’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보고서를 보면 슈로더는 2022년 700여 피투자 기업에 탄소 중립 목표와 의견을 설명해 이런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슈로더는 투자 자산이 일으키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수치화한 ‘포트폴리오 온도 점수’도 발표합니다. 기업이 직접 탄소를 배출하는 스코프 1, 기업이 쓰는 전기나 스팀 등으로 대기에 방출되는 스코프 2를 동시에 고려하죠. 최초 해인 2019년 2.9도였던 슈로더의 포트폴리오 온도는 2022년 2.6도로 0.3도 줄었습니다.
슈로더는 2030년까지 이 온도를 2.2도로 낮추고, 2040년에는 기업의 가치사슬(Value-chain)에 포함되는 모든 간접적 탄소 배출인 스코프 3까지 포함해 모두 1.5도까지 낮출 계획입니다.
슈로더 측은 리포트에서 “관리 포트폴리오의 투자 전환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는 고객이 저탄소 배출 자산에 중점을 둔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라며 “탄소 중립으로 빠르게 전환하거나 기후 도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자산이 그 대상”이라 설명합니다.
05. 탄소 중립에 둔감한 이사회는 쫓아내기도
슈로더는 기후 변화 관련 주주 제안에 대한 의결권도 적극 행사합니다.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지만 탄소 배출 감소 약속을 하지 않은 회사에 의결권을 행사하기도 했죠. 2022년에는 총 1100개 경영 관여 활동을 벌였고요.
세계 737개 기업과 기후 변화 대응을 두고 협력했습니다. 또 같은 기간 투자기업에 대한 주주결의 가운데 기후 관련 결의가 25%에 이르렀고 기후 관련 주주 제안의 69%, 경영진의 '기후에 대한 의견 표명'(Say on Climate) 제안의 76%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기후에 대한 의견 표명은 기업의 기후 목표와 정책, 전환 계획을 승인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식으로 이뤄지는데요. 기후 변화에 무관심한 기업 이사회 구성원에게 반대 의결권도 행사한다고 하네요.
06. 자본시장에 부는 탄소 중립 바람
전세계 자본시장에도 탄소 중립 바람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이른바 ‘공식적 공시 의무’를 통해서 입니다. 지난 6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발표한 일반 공시 요구 사항(S1)과 기후 관련 공시(S2) 기준서가 대표적입니다.
이 기준서는 국제회계기준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에 따라 작성됐고요. S1은 기업이 장·단기에 걸쳐 마주하게 되는 지속 가능성 관련 위험을, S2는 기업이 노출된 기후 관련 재무 정보에 대한 특정한 요구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공식 적용 시기는 2024년 1월이고요. 2025년에는 이들 기준에 따른 첫 공시가 이뤄지게 됩니다.
국내 재계가 당장 이런 공시를 각 기업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시는 앞으로 더욱 자주 언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꾸준히 이 이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관투자자의 관심은 기업의 자금 조달과 이익 창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고요. 아마 앞에 언급한 SBTi 같은 성격의 단체가 새로 출범할 수도 있겠죠.
07. 기후 변화에 민감한 투자자라면?
이렇게 기관 투자자가 어떤 방식으로 기업의 탄소 중립을 장려하는지, 국제 사회는 어떻게 공조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지구 환경이 파괴되면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도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고, 투자 자산에도 손실이 생깁니다.
이에 슈로더 등 기관투자자는 SBTi의 인증을 받고, 탄소 중립에 관심이 없는 피투자 기업의 이사회 구성원에게 반대 의결권 행사를 하는 등 기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에 투자하면 좋을까요?
① SBTi 등 탄소 중립을 위한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기업 중 실질적인 성과가 있는 기업
② 탄소 중립 행보를 보여 온 기업 이사회 구성
③ 탄소 중립을 중시하는 기관에서 투자받는 기업
등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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