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역의 환경 보호에 '진심'인 기업이 있습니다. 지역 내 폐기물을 새 제품으로 생산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해 소비자들에게 환경을 위한 교육에도 나서는데요. 앞으로는 이런 기업이 투자하기에도 좋은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자연 자본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이하 TNFD)가 권고안을 통해이렇듯 기업이 지역 내 ‘자연 자본’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자본이 뭐기에 협의체까지 구성됐을까요?
TNFD에 앞서 구성됐던 '기후 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
(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이하 TCFD)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투자자들은 왜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01.자연 자본, 그게 뭔데?
자연 자본(Natural Asset)은 깨끗한 공기와 물, 음식, 온도, 날씨처럼 귀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연환경 요소를 말합니다. 사회와 기업이 본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숲, 강, 토양과 같은 세계의 자연 자산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생긴 개념입니다.
글로벌 협의체 TNFD가 내놓은 권고안도 자연 자본 보호와 관련이 깊습니다. TNFD는 '자연 자본의 손실은 곧 기업의 재무적 위험을 초래한다'는 문제 의식으로 2021년 6월 출범했고요. 기업이 사업에 대한 기후·자연관련 재무 리스크와 기회를 공개할 수 있도록 프레임워크를 짠 상태입니다.
TNFD엔 블랙록과 HSBC, 타타스틸, UBS그룹 등 총 20조달러(약 2경 6600조원) 이상 자산을 관리하는 기업들을 대표하는 40명의 위원이 속해 있습니다.
TNFD가 발표한 자연 관련 재무 공시에 대한 최종 권고안을 보면 자연 자본 관련 위험 및 기회와 재무적 영향, TNFD 공시 준비를 위한 기업의 내부 평가 방법, 그리고 기업의 세 가지 대응 방안 등이 담겼습니다.
구체적으로 △Locate(지역 식별) △Evaluate(의존도 및 영향 평가) △Assess(위험 및 기회 측정) △Prepare(공시 준비) 등의 기업의 내부 평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즉 자연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사회의 환경 보호를 위한 기업 활동이 평가 방법 중 하나가 된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정책 입안자와 규제 기관, 투자자, 자산운용사, 글로벌 기업들에 자연 관련 위험 관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자연 손실 해결 및 솔루션 확대를 위해 민간 부문 참여 및 금융 동원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02. 기후변화 늦춘다던 약속은 그럼 뭐야?
TNFD의 이런 활동은 앞서 출범한 TCFD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TCFD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탄소중립을 이끌어낸 기업의 실제 사례를 다뤘죠. 이 내용은 이 콘텐츠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번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6)에서도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논의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2015년 196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약’을 보완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파리 기후협약은 지구 온난화를 산업혁명 이전 시기와 비교해 섭씨 2도보다 훨씬 더 낮게, 되도록 섭씨 1.5도 상승으로 제한해 2050년까지 기후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협약입니다.
당사국 총회에 모인 100여개국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 행동계획을 세웁니다. 2030년까지 대규모 경작이나 가축 사육 등을 위한 삼림 훼손을 중단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등의 내용이 채택되죠.
투자업계의 참여도 있었습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Schroders)를 포함한 30개 이상의 기업들이 삼림이 훼손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당시 피터 해리슨(Peter Harrison) 슈로더 최고경영자는 “기업은 자신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탈탄소 경제를 향해 나아갈 근본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업계에선 투자자들이 주주 행동주의(Active Ownership)에 기반해 자연과 연관된 기업 내부 이슈나 리스크를 파악하길 원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나아가 수익 창출을 넘어 자연과 지역사회에 긍정적 가치를 창출하는 관점에서 환경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자산운용사를 수탁자로 삼는다고 하죠.
03. 향후 10년 내 최대 리스크 요인 5개 중 4개가 ‘환경 이슈’
전세계 정부, 기업이 나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뭘까요? 바로 인간에 의한 자연 훼손이 곧 경제적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자연을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각종 조사를 통해서 수치화된 상태입니다.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월 발표한 ‘2023 자연계 리스크 증가’ 보고서를 살펴보면요.
향후 10년 내 가장 빠르게 악화하는 위험 상위 5개 항목 중 4개가 환경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경제 규모 관점에서 전세계 GDP의 52%에 달하는 44조 달러(약 5경9000조원)가 건설, 농업, 식품 등 자연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는데,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WEF의 분석입니다.
보고서는 “다음 10년 동안, 기후와 환경 위험은 글로벌 위험 인식의 핵심에 있으며, 우리가 가장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는 위험”이라며 “자연의 손실과 기후 변화는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으며 한 분야에서의 실패는 다른 분야로 연쇄될 것”이라 지적합니다.
세계은행 또한 생태계 붕괴가 주는 피해를 수치적으로 경고합니다. 오는 2030년 세계 GDP의 2.3%, 약 2조7000억 달러(약 3600조원)의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자연의 대학살’이 경제적 실패와 직결된다는 건 오늘날 상식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자연 자본이 위험에 처할수록 기업의 환경 관련 활동에 대한 정보 요구는 더 늘어날 겁니다. 예컨대 특정 기업이 탄소 배출은 얼마나 줄이고 있고, 또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을 알려는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죠.
04. 투자자 48% “임팩트 투자, 지속 가능성 위해 선호한다”
환경을 보전하는 자산운용사의 활동도 주목할 법합니다. 앞서 언급한 슈로더의 경우 자연 자본 보호를 목적으로 한 3억 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폐쇄형 민간 펀드와 개방형 순환 경제 민관 투자 전략을 계획했습니다.
또 기업의 삼림 벌채 리스크에 대한 노출도와 관리를 위한 ‘삼림 벌채 성적표’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기 위해 생태계를 보존, 복원 또는 개선하는 데 필요한 삼림 관련 정확한 측정치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죠.
지속 가능 투자의 개념은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로도 이어집니다. 2007년 미국 록펠러 재단의 컨퍼런스에서 유래된 단어인 임팩트 투자는 투자자에 재무 수익을 제공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단체·펀드 등에 행하는 투자를 뜻합니다.
슈로더 기관 투자자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임팩트 투자는 지속가능한 투자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실제로 투자자 중 48%는 임팩트 투자를 지속 가능성 구현을 위해 선호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2020년(34%)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2019년 슈로더그룹이 스위스 기업 ‘블루오차드(BlueOrchard)’를 인수한 것도 이와 결을 함께 합니다. 블루오차드는 사모펀드를 포함해 지속가능한 인프라 분야 등 임팩트 투자에 대한 투자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받죠. 또 싱가포르 최초 자연자본 전문 임팩트 투자 운용사 ‘아카리아 내츄럴 캐피탈’(Akaria Natural Capital)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앤디 하워드 슈로더 지속가능 투자 글로벌 책임자는 “점점 더 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영향력을 측정하고 관리하며 전달하기를 원한다”며 “투자 경험에 기반한 사려 깊은 접근 방식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 밝혔습니다.
05. 800년만에 소환된 ‘마그나 카르타’…찰스 3세가 직접 나선 이유
시계를 2021년 11월로 돌려봅니다. UNFCCC가 열리던 해입니다. 영국 황태자였던 찰스 3세(현 국왕)는 이 때 ‘환경판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를 추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구 헌장, 일명 ‘테라 카르타’(Terra Carta)로 명명됩니다. 13세기 국민 주권을 확립하면서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마그나 카르타처럼 ‘자연의 근본적 권리와 가치’를 재정립하는 시금석이 돼야 한다는 의미죠.
이 선언은 작금의 지구 상황을 방치하다간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인식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귀중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연의 힘’(the precious, irreplaceable power of Nature)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공공뿐 아니라 민간 영역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게 헌장의 주된 메시지입니다.
찰스 3세는 대헌장에서 특히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산업계와 금융계 리더들은 글로벌 경제를 변형시키는 데 필요한 혁신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기에, 이 프로젝트에 실질적인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도록 격려하려는 것”이라 말하죠.
금융계 리더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기업과 동행하는 마음으로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에게도 울림을 줍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을 지지하는 일은 곧 개인이 자연 자본 보호에 힘을 싣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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