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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기본자본 규제강화, 보험사 생존게임 ‘시험대’
‘양’에서 ‘질’ 중심으로 경영 패러다임 전환이익 못내면 백약이 무효, 요구자본 감축해야보험업계 지각변동으로 옥석 가리기 본격화지난 3월 금융당국이 ‘보험업권 자본규제 고도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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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에서 ‘질’ 중심으로 경영 패러다임 전환
이익 못내면 백약이 무효, 요구자본 감축해야
보험업계 지각변동으로 옥석 가리기 본격화
지난 3월 금융당국이 ‘보험업권 자본규제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2023년부터 시행된 IFRS17(감독회계)과 이를 토대로 도입한 K-ICS(건전성회계)는 보험업 경영환경을 크게 바꿔놓았다. 보험사 자산·부채 회계처리가 시가 기준으로 변경되고 리스크 측정대상과 관리방법도 더욱 확대되고 정교화됐다. 특히 K-ICS 도입으로 보험사 재무건전성 유지에 필요한 요구자본이 증가하고 규제비율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는 자본증권 발행을 크게 늘려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구제도(RBC)가 적용되던 2022년 말 보험사 요구자본은 67조 7000억 원이었으나 신제도(K-ICS)가 도입된 2024년 9월 말에는 118조 9000억 원으로 75.6% 증가했다. 감독기준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가 후순위채 등 자본증권 발행을 급속히 확대하며 가용자본을 확충하는 가운데 이자비용 부담도 함께 커졌다. 2024년 보험권 자본증권 발행액은 8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2% 증가했다.
K-ICS비율은 보험사의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가용자본은 손실흡수능력에 따라 기본자본(Tier1)과 보완자본(Tier2)으로 구분된다. 기본자본은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기타포괄손익(OCI)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기 발생 시 손실을 확실히 흡수할 수 있는 근원적 자본이다. 반면, 후순위채 등으로 구성된 보완자본은 손실 발생 시 충분한 흡수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자본으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보완자본이 포함된 ‘가용자본’을 기준으로 산출한 K-ICS비율을 적기시정조치 등 의무 규제기준으로 사용해왔다. 기본자본 K-ICS비율은 별도로 관리하긴 했지만 의무 규제기준이 아닌 경영실태평가(RAAS) 하위 항목으로만 활용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당국과 보험사 모두 실질적인 ‘자본의 질’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당국이 K-ICS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IFRS17 시행 이후 순이익이 급증하고 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가용자본을 확충했음에도 보험사 ‘K-ICS비율’과 ‘기본자본 K-ICS비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보험권 K-ICS비율은 2023년 3월 말 219.0%에서 2024년 9월 말 218.3%로 0.7%포인트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기본자본 K-ICS비율’은 145.1%에서 132.6%로 12.5%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번 개선방안의 핵심은 ‘기본자본 K-ICS비율’(기본자본/요구자본)의 규제 수준을 설정해 적기시정조치 요건으로 도입하고, 공시 등을 통해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의 ‘질’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려는 금융당국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후순위채 등 자본증권 발행으로 손쉽게 대응해온 보험사들은 새로운 차원의 전략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금융당국이 기본자본 K-ICS비율을 별도의 규제기준으로 도입하려는 이유는 바로 ‘자본의 질’ 때문이다. 과거 RBC제도 하에서 보험사들은 자본 규제비율을 맞추기 위해 후순위채 등 보완자본을 주로 활용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자본 확충을 유도하지 못하고 위기 대응에 취약한 구조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본자본 K-ICS비율의 규제기준이 도입되면 보험사 경영과 영업행태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보험사는 자본의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유럽이나 캐나다 등의 사례를 고려하면 기본자본 K-ICS비율은 최소 50% 이상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다수 보험사가 ‘기본자본 K-ICS비율’ 50% 이하이거나 그에 근접한 수준인 만큼 규제가 본격 시행되면 상당한 경영 압박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보험사가 단기간에 기본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수익 창출력이 떨어지는 보험사일수록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보험사가 기본자본을 늘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돈을 벌어 이익잉여금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을 확대하면 마진율이 낮아지고 요구자본도 증가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기본자본비율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둘째, 유상증자로 주주의 지원을 받거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투자자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다. 유상증자는 주식가치 희석으로 기존 주주의 반발이 심하고 신종자본증권은 기본자본 인정 조건(이자지급 제약, 자본전환·감액조항 등)과 인정비율 규제(요구자본의 10% 또는 15% 한도)로 인해 발행비용이 높고 요건도 까다롭다. 셋째, 자산부채관리 (ALM) 역량을 강화해 기타포괄손익(OCI) 변동성을 축소하는 방법이다. 기타포괄손익은 기본자본의 일부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이를 인위적으로 늘리기는 어렵고 변동성을 줄이는 관리가 중요하다.
가용자본 확충이 어렵다면 요구자본 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요구자본은 보험, 시장, 신용, 운영 등 다양한 리스크를 반영해 산출된다. 리스크 크기를 효과적으로 줄이고 리스크 요인 간 상관성을 고려한 자산·부채 포트폴리오 관리(ALM) 전략이 핵심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금리 1% 하락 시 K-ICS비율 민감도는 생명보험사가 0.25%포인트, 손해보험사가 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LM 전략을 통해 듀레이션 갭을 줄이고 현금흐름 매칭을 강화하여 금리 변동에 따른 자본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K-ICS에서는 자산과 부채를 모두 시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장기 부채의 시가 변동이 기타포괄손익과 기본자본에 큰 영향을 미친다. ALM 전략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시장금리(할인율) 하락에 따른 순자산(자본) 감소를 완화하려면 장기 보험부채에 대응해 장기채권 실물투자나 30년 만기 국채선물 투자 등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재보험이나 공동재보험을 활용해 보험위험뿐만 아니라 금리위험까지 재보험사로 이전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본 효율성이 낮은 상품군 축소 등 사업포트폴리오 재조정 전략 역시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2025년 상반기 중 ‘기본자본 K-ICS비율’ 규제방안을 마련해 2025년 말 결산부터 반영할 계획이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경과조치를 두어 연착륙을 유도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사의 기본자본 관리능력이 중요한 경쟁요소로 부각될 전망이다. ‘기본자본 K-ICS비율’ 규제는 보험업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구조조정을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자본력이 든든한 보험사는 사업기회를 확대하며 수익성과 성장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력이 부족하거나 수익창출력이 약한 보험사는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거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대폭 재조정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험사의 경쟁력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효율적인 자본관리와 리스크관리 역량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기본자본 K-ICS비율’이라는 까다로운 난제를 잘 해결해 보험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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