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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상남 회장 탄생 100주년의 LG家 상속분쟁

Numbers_ 2025. 4. 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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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상남 회장 탄생 100주년의 LG家 상속분쟁

기술경영 투명경영 등 LG 경영철학의 ‘초심’無故승계·戒之在得의 道 실천한 ‘경영 聖者’상속 분쟁은 LG家 정신·철학 부정하는 행위“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가훈 되새겨야중국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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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경영 투명경영 등 LG 경영철학의 ‘초심’
無故승계·戒之在得의 道 실천한 ‘경영 聖者’
상속 분쟁은 LG家 정신·철학 부정하는 행위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가훈 되새겨야

중국 고전 ‘채근담’에는 “일이 막히고 세력이 줄어든 사람은 마땅히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初心)을 생각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모두 해당되는 말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움을 겪을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해법이 보입니다.

창업 회장과 그룹의 경영철학을 따라 인화하고 화해하기는커녕 3년째 지속되는 LG그룹 오너 유족 간 ‘상속 분쟁’을 지켜보면서 ‘채근담’의 이 구절이 떠오릅니다.

초심이 흔들릴 때 찾아봐야 할 사람

무엇이 LG그룹의 ‘초심’인가요? LG그룹의 ‘처음’은 어디인가요? LG그룹의 ‘초심’이자 ‘처음’은 화담(和談) 구본무 회장의 부친인 상남(上南) 구자경 회장입니다.

LG그룹의 출발은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이고, LG그룹의 창업자는 상남 회장의 부친인 연암(蓮庵) 구인회 회장이지만 오늘의 그룹 기반을 닦은 사람은 2대 회장인 상남입니다. 상남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부친을 도와 그룹을 일궜습니다. 기술과 인재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책임경영 투명경영 글로벌경영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오는 24일은 1925년생인 구자경 회장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상속 분쟁 중인 유족들은 물론 LG맨 모두가 ‘초심’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현장’에서 시작된 리더십의 뿌리

집안의 장남이었던 상남 회장은 진주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사로 근무하던 중 부친의 부름을 받고 1950년 본격적으로 기업인의 길을 걷습니다. 연암 회장이 LG의 모태인 락희화학을 설립한 지 3년 뒤이고, 상남의 나이 25세 때의 일입니다. 상남은 1970년 1월 부친의 유고로 45세의 나이로 2대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20년을 꼬박 현장에서 뛰었습니다. 10년 넘게 공장 생활을 해서 ‘공장 지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재계의 다른 그룹들과 달리 구본무 구광모 등 LG 가문의 회장들이 총수 자리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10~20년간 현장에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는 전통은 상남 회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상남은 45세에 회장 자리에 올라 70세가 되던 1995년 스스로 물러나기까지 25년간 총수로 재임하면서 LG그룹의 비약적 성장을 이끕니다. 단적으로 그의 재임 기간 중 매출은 고작 260억 원에서 30조 원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주력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 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LG그룹의 기반을 닦습니다.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LG그룹 구자경 회장의 업적과 성과는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군으로 LG를 성장시킨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상남 회장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대목은 그의 경영철학이고 경영자로서 처신입니다. 상남의 경영이념은 동시대 대한민국 재계를 이끈 이병철·정주영 회장을 능가합니다. 기술 중심의 경영, 투명경영, 특히 대한민국 대기업 역사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이른바 ‘무고승계’(無故承繼)가 바로 그것입니다. 기술경영 투명경영 무고승계의 큰 정신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납니다.

기술과 연구소가 답이다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나라는 작아도 기술로써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상남 회장이 늘 강조했던 경영철학입니다. 비단 LG그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체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상남 회장은 1976년 민간 기업 최초로 금성사에 중앙연구소를 만들었고,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 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습니다. 상남은 25년의 재임 기간 중 무려 70여 개 연구소를 설립했고, 1995년 2월 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이 그룹 소속 연구소들을 일일이 둘러본 것입니다.

상남 회장이 후계자인 화담에게 늘 강조했던 것은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와 합의 아래 일을 추진하고, 권위주의를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돼야 자율 경영의 기반 위에서 경영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사소할 수도 있지만 근검절약하고 사치를 배척했습니다. 모두 LG가 자랑하는 투명경영의 출발점입니다. 이 같은 상남의 경영철학들이 구체화되고 실행됐기 때문에 LG그룹은 78년 역사에서 오너가 구속되거나 사법 리스크를 떠안는 일도 없었고,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이 그룹을 나누면서도 분쟁 한번 없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LG맨들이 자랑스러워하고 그룹이 존속하는 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상남 회장의 투명경영 철학은 1970년 그룹 모체인 락희화학을 민간 기업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뒤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를 공개하는 것으로 구체화합니다. 투명경영은 주력 기업들의 국내 증시 상장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히타치와 후지전기, 미국 AT&T 등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으로 발전합니다.

노욕을 떨쳐버린 전무후무한 경영자

공자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이미 얻은 것을 놓지 않으려는 노욕입니다.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논어’에 나오는 ‘계지재득’(戒之在得, 이미 얻은 것을 경계함)의 도(道)를 실천한 오너 경영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상남 구자경 회장입니다.

상남은 일흔이던 1995년 2월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21세기 LG가 초우량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젊고 의욕적인 사람이 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며 전격 퇴임을 선언합니다. 당시 상남은 건강했고 얼마든지 경영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기업사에 ‘무고승계’(無故承繼)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새 역사를 썼습니다. 물론 상남 회장은 온전한 승계를 위해 후계인 구본무 회장을 20년 넘게 담금질했습니다.

상남은 스스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2019년 12월 94세의 나이로 임종할 때까지 천안 연암대학교 농장 등에서 외부 활동은 중단하고 자연인으로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절제와 겸손, 묵언과 소박함은 상남의 말년 삶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세인트’(Saint, 聖者)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문의 오랜 전통 뒤흔드는 해괴한 송사

상남은 슬하에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을 비롯, 본능·본준·본식 회장과 훤미·미정 씨 등 4남 2녀를 뒀습니다. 상남은 1995년 화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넘기면서 상속법에 따라 부인과 자녀들에게 부인 1.5대 자녀들 각 1의 비율로 지분을 나눠주지 않고, 가문의 전통인 ‘장자 상속’의 원칙에 따라 그룹을 끌어갈 화담 회장에게 지분의 60%를 몰아주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과 딸들에게 조금씩 나눠줬습니다. 이에 대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고, 토를 달지도 않았습니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가문의 오랜 전통은 화담 타계 후 4년 3개월이 흐른 뒤인 2023년 2월 미망인인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 등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하면서 크게 흔들립니다.

알려진 대로 화담 회장은 서거 1년 전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는 그룹 재무팀장을 불러 그동안의 그룹 전통과 관행에 따라 후계이자 장자인 구광모 회장에게 ‘경영재산’인 그룹 지주사 ㈜LG 지분 11.3% 전부를 넘기라는 ‘유지’(遺旨) 메모를 남깁니다. 하지만 화담 타계 후 6개월여에 걸친 밀고 당기기 끝에 화담이 남긴 재산 중 구광모 회장은 8.8%만 갖고 나머지 지분 2.5%는 구연경·연수 자매가, 한남동 자택과 미술품 등은 김 여사가 갖는 것으로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에 합의하고 서명합니다. 합의문에 김 여사는 ‘화담 회장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라고 직접 서명까지 합니다.


인륜 저버리는 소송도 불사한다

그러나 합의문 서명 후 김영식 여사 측은 법률에서 특정 권리에 대해 정해 놓은 행사 가능 기간인 ‘제척기간’ 3년을 크게 넘긴 후인 2023년 2월 기존 합의를 전면 부정하고 나옵니다. “구광모 회장 측이 없는 유언장을 있다고 속였다, 장자 승계라는 LG 가문의 전통은 불합리하다, 가문의 전통이 법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등의 주장을 폅니다.

시아버지인 상남 회장과 남편인 화담 회장은 생전에 한편에서는 아끼고, 또 한편에서는 여러 미안한 마음에 김영식 여사에게 구광모 회장과 구본식 회장 다음으로 많은 ㈜LG 지분 4.2%를 물려줍니다. 그럼에도 김 여사는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은 물론 구광모 회장과 집안 어른들을 상대로 인륜을 저버리고 가문을 부정하는 여러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김영식 여사와 두 자매의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은 오는 22일 올 들어 첫 변론준비 기일이 열리는 등 빠르면 연내 1심 선고가 예상됩니다. 유언장 및 유지 메모 존재 여부 논란과 무관하게 상속인들이 합의서에 직접 서명하고, 제척기간까지 지났음을 감안하면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미망인과 두 자매는 화담 회장이 남긴 ㈜LG 지분 11.3%에 대해 상속법에 따라 부인 1.5대 자녀들 각 1의 비율로 배분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화담 회장이 상남 회장에게 물려받은 11.3%도 전부 화담 회장 몫이 아니고, 대부분 본능·본식·본준 회장과 훤미·미정 씨 등 삼촌과 고모들 재산입니다.

이처럼 판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되지만 문제는 법원 판결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것은 연암 회장과 상남 회장이 닦고 화담 회장이 키운 LG의 ‘초심’과 ‘경영철학’이 흔들리고 도전받는 것입니다. 창업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인화(人和)는 물론 상남 회장이 강조한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와 합의, 무고승계 등의 매우 소중한 가치들이 위협받는 현실입니다.

기억해야 할 장소, 지켜야 할 유산

경남 진주시 승산리 구인회 창업 회장의 생가에는 창업 회장의 부친인 춘강(春崗) 공(公)을 추모하는 모춘당(慕春堂)이 있습니다. 상남 회장은 가문 자녀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진 모춘당을 새로 건립했습니다. 모춘당을 지은 후 집안에 새 며느리나 사위를 맞으면 최소 1년에 한 번 이곳을 방문해 가풍을 익히도록 했습니다. 미망인 김영식 여사나 연경·연수 자매, 구연경 씨의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 등은 모두 모춘당을 여러 번 방문하고 묵기도 했을 것입니다.

모춘당에는 상남 회장의 증조부인 만회(晩悔) 공(公)이 만든 가훈이 걸려 있습니다. 10가지 덕목 가운데 △형제간과 종족 사이에는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작은 분을 참지 못하면 마침내 어긋나게 된다 △선대 훈계를 삼가 이어서 바르게 할 뿐 변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새삼 말하지 않아도 김영식 여사는 물론 구연경·연수 자매, 윤관 대표 등이 잘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상속 분쟁을 일으켜 집안에서조차 따돌림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반드시 되새겨 봐야 할 가훈입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법원에 갈 게 아니라 모춘당에 걸려 있는 가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구광모 회장이나 구씨 가문 전체는 물론 LG그룹 차원에서도 명심할 게 있습니다. 상속 분쟁에서 지켜야 할 것은 ㈜LG 지분이 아닙니다. 지주사 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암·상남·화담 회장은 물론 만회 춘강 등 선대 어른들의 혼과 창업정신, LG의 경영철학입니다. 관용하고 자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