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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십 포커스] '경영권 방어' 총력 현정은, '지주사 전환' 가시화

Numbers 2024. 1. 4. 07:52

(그래픽=박진화 기자)

 
지난해 현대그룹은 어느 때보다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핵심 계열사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겨냥한 위협 강도가 더욱 거세진 탓이었다. 다국적 승강기 기업 ‘쉰들러홀딩아게(Schindler Holding AG, 이하 쉰들러)’에 더해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운용까지 공격에 가세하면서 이 같은 부담은 더욱 커졌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강력한 외부 공세에 맞서기 위해 각종 방어 수단을 갖추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H&Q파트너스’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또 인적분할도 단행해 현대홀딩스컴퍼니㈜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도 개편했다. 이를 두고 지주회사 전환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상판결’ 트리거, 숨가쁜 ‘2023 공방전’


현대그룹 그동안 2대주주인 쉰들러와 오랜 악연을 쌓았다. 당초 2003년 KCC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인수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을 당시만 해도 우호적 관계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같은 관계는 2010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듬해 쉰들러는 각종 소송을 제기하면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양측의 갈등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자회사인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파생상품 계약(TRS)을 체결하면서 또다시 불거졌다. 쉰들러는 해당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면서 2014년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3심에 걸친 재판은 지난해 3월 대법원이 쉰들러의 손을 들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은 경영권 다툼을 본격화하는 도화선이 됐다. 대법원은 현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의 손해배상을 지급하라고 했다. 현 회장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당장 현금이 부족한 현 회장과 현대홀딩스컴퍼니 등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977만5139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이를 통해 손해배상금을 완납했지만 담보로 잡은 주식 가치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인 쉰들러는 기회를 포착했다. 주식담보대출은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떨어져 반대매매가 진행된다. 쉰들러는 대법원 판결 3개월만인 6월부터 지분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에서는 2대주주가 떠난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주가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공세가 이어졌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를 보유하고 있던 KCGI운용은 8월 현 회장의 사내이사직 사임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현 회장과 현대그룹은 방어에 나섰다. 현 회장은 대규모 배상금 마련을 위해 차입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하지만 과거 현대상선을 방어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 정몽헌 전 회장의 유지가 담긴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버텼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5월 자사주 소각과 취득을 진행하며 주주가치 제고를 통한 부양에 나섰다. 또 11월에는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하며 잠재적 우군 확보에 나섰다.


‘H&Q’ 참전, 현대홀딩스컴퍼니㈜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

 

현대그룹은 경영권 위기에 대응하는 가운데 조금씩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구조적 변화도 진행했다. 특히 현대네트워크를 분리해 설립한 현대홀딩스컴퍼니㈜ 중심의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네트워크는 앞서 2020년 현대엘리베이터가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전환권을 행사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지배구조상 주요 계열사로 올라섰다.

이후 현대네트워크는 지난해 8월 인적분할을 단행해 투자 부문인 현대홀딩스컴퍼니㈜와 사업 부문 현대네트워크로 분할했다. 이후 존속회사인 현대홀딩스컴퍼니㈜가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사실상 지주사로서 역할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현대그룹도 일찌감치 현대홀딩스컴퍼니㈜ 관련 상표를 출원했다. 그동안 그룹의 캐시카우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지주사 역할을 수행했지만 지주사 전환에 나선다면 현대홀딩스컴퍼니㈜ 중심의 구조를 완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 회장은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91.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 회장은 지난해 7월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현대홀딩스컴퍼니㈜에 넘겼고 이후 12월에는 현대네트워크에 나머지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이를 통해 현대그룹은 현 회장→현대홀딩스컴퍼니㈜·현대네트워크→현대엘리베이터→현대무벡스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우군도 확보했다.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H&Q파트너스가 현대홀딩스컴퍼니㈜에 3100억원을 투자하면서 백기사로 나섰다. 양측은 지난해 10월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H&Q파트너스는 그동안 지적됐던 지배구조 개선에도 조력자로 나섰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달 임시주총을 열고 기타비상무이사에 임유철 사모펀드 H&Q파트너스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다만 KCGI자산운용은 현대그룹이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일반주주의 주총제안권을 원천 봉쇄했다고 비판했다.

윤필호 기자 nothin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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