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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풋옵션 분쟁]② 신창재도 어피니티도 모두가 잘못했다, 그리고 모두가 승소했다

Numbers 2023. 12. 1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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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니티컨소시엄(이하 어피니티)의 '풋옵션 분쟁' 대부분은 법정 공방이었다. 지난 2018년 10월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에 신 회장이 응하지 않으면서, 분쟁과 관련된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의 중재와 국내 재판이 줄줄이 이어졌다.

법정 공방에서 어느 한쪽의 완벽한 승리는 없었다. 일례로 ICC 중재 판정이 나오자 양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했다. 풋옵션 행사 가격을 부풀린 혐의로 기소된 어피니티 측이 무죄 확정을 받았으나 이는 신 회장을 풋옵션 논의 테이블에 앉힐 결정적 계기는 되지 못했다.

법정으로 옮겨 간 풋옵션 분쟁은 어땠을까. 법정에서 논의된 쟁점과 재판부 판단 등을 살펴봤다.


ICC 중재 판정, 양측 “내가 승자”

 

지난 2019년 3월, 어피니티 측은 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신 회장이 △40만 9912원에 어피니티 측이 보유한 풋옵션 주식을 사들이고 △’주주 간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하도록 중재해달라는 취지였다.

2년 6개월이 지나고 지난 2021년 9월 ICC 판정이 나왔다. 

(자료 출처 = 어피니티 측이 신 회장을 상대로 냈던 '계약이행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문 일부.


어피니티 승소라고 하기도, 신 회장의 승소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결과였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우선 ICC는 양측의 ‘주주 간 계약’에서 정한 풋옵션 조항이 유효하며, 어피니티 측이 풋옵션을 유효하게 행사했다고 봤다. 이는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를 인정하지 않은 신 회장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판단이었다. ‘신 회장이 풋옵션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등 합의된 계약 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어피니티 측에게도 유리한 결과였다.

그러면서 ICC는 신 회장이 ‘주주 간 계약’ 제7.3조(풋옵션 가격 결정에 대한 조항)에 따른 의무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만 보면 신 회장이 당장 어피니티 측이 요구한 풋옵션을 받아들여 교보생명 주식을 사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ICC 중재판정문에서는 신 회장이 40만 9912원에 풋옵션 주식을 사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앞서 어피니티 측이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을 선임해 산정한 공정시장가격(FMV·Fair Market Value)이 유효하게 결정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어피니티 측이 계약에 따라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풋옵션 가격을 40만 9912원으로 정한 건 잘못됐다는 취지였다. 

이는 당사자 한쪽(신 회장)이 회계법인 등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풋옵션 가격을 산정하는 방법이 ‘주주 간 계약’에 규정되지 않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당사자(어피니티 측) 의견대로 풋옵션 가격을 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계약 당사자가 아닌 ICC가 풋옵션 가격을 산정해 제시할 수도 없었다.

ICC는 ‘신 회장이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어피니티 측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ICC 중재 비용 등은 신 회장이 부담해야 한다며 어피니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신 회장과 어피니티 측의 의견은 엇갈렸다. 어피니티 측은 ICC가 신 회장의 계약 위반을 지적한 점을, 신 회장은 어피니티 측이 산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점 등을 들어 서로 승소를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양측은 국내 법원에서도 맞붙었다. 먼저 어피니티 측이 서울북부지법에 ‘신 회장 재산을 가압류 해달라’고 신청했다. 이를 법원이 받아들이자, 이번에는 신 회장이 가압류를 취소해달라고 신청했다.  어피니티 측은 법원에 ‘계약이행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교보생명 “어피니티·안진 회계사, 풋옵션 가격 부풀렸다”

 

법정 공방에는 어피니티 측 의뢰로 FMV 산정을 했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하 안진) 회계사들까지 얽혔다. 지난 2020년 4월, 교보생명은 안진 회계사들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회계사 3명이 어피니티 측의 부정한 청탁을 받고 FMV 가격을 부풀렸다는 입장이었다. 

교보생명의 고발로 회계사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회계사들이 어피니티 측의 부정한 청탁을 받고 FMV 가격을 부풀렸다고 판단했다. 또한 독립적인 위치에서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가치평가를 한 것처럼 FMV 등에 대해 허위보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공인회계사법 위반이었다.

공인회계사법에 따르면, 공인회계사는 직무를 행할 때 고의로 진실을 감추거나 허위보고를 해선 안 된다(제22조 제4항). 또한 공인회계사는 공인회계사법이 규정한 직무를 행할 때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하거나 약속해선 안 된다(제15조 제3항).

어피니티 측도 공범으로 함께 재판을 받았다.

쟁점은 회계사들이 교보생명의 기업가치 평가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는지, 어피니티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전상 이득을 얻었는지 여부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안진 회계사들과 어피니티 측이 주고 받은 이메일, 보고서 초안 등을 살폈다. 

여기에는 “(회계사들이) 1주당 추정가치를 보내주면 투자자들이 내부적으로 결정하겠다”, “소송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해 불리할 수 있는 방법론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언급된) 방법론 중 하나 또는 유리한 몇 개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능하고 유리한 모든 방법에 대한 의견으로 정리하시죠”라는 등 풋옵션 가격 산정에 대해 대화를 나눈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2월 재판부는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회계사들이 가치평가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어피니티 측 의견에 따라) 이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인회계사와 어피니티 측의 논의는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가치평가서비스 수행기준을 들어 “가치평가서비스를 수행할 때 평가자와 의뢰인의 상호 이해를 권장하고 있다”고 있다며 이 같이 판단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지난 2월 서울고법 형사1-1부(이승련·엄상필·심담 부장판사)는 회계사와 어피니티 측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지난 11월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에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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