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사건파일
지난 2019년, 유동성 위기로 매각이 결정된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에 손을 내민 건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었다. 그해 12월 현산은 미래에셋증권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2조 5000억원에 아시아나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현산 측은 금호건설·아시아나와 맺은 주식매매계약 등에 따라 계약금 2500억원을 납입했다. 계약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현산 측의 자금 투입으로 아시아나의 재무 상황이 개선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9월 아시아나 측이 현산 측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어 아시아나 측은 계약금 확보를 위해 현산 측을 상대로 소송(질권소멸통지 등)을 제기했다. 현산 측에 계약 무산의 책임이 있으니, 아시아나 측이 계약금을 소유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현산 측은 아시아나 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지난 2022년 11월 아시아나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사건 인수계약은 피고(현산 측)들의 귀책 사유로 적법하게 해제됐다"며 "피고들이 지급한 계약금은 (계약에 따라) 원고들에게 귀속됐다"고 했다. 이후 현산 측 항소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현산 측이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심 법원이 판단한 현산 측의 귀책 사유가 무엇인지 소송의 쟁점을 통해 알아봤다.
아시아나 측, 계약 해제 통보..."2500억원 못 돌려줘" 소송
사실 양측의 인수합병(M&A)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들의 계약에 따르면, 현산 측은 2조 5000억원을 투입해 금호건설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6868만 8063주)을 3228억원에 사들이고, 2조 1771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구주+신주 인수 구조)
하지만 지난 2020년 4월 현산 측은 아시아나 측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상황 재점검 및 인수 조건 재협의를 요청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등 재무 상황이 계약 당시(2019년 12월)와 달라졌다고 주장하거나, 재실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양측이 협의를 이어갔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결국 지난 2020년 9월 아시아나 측은 현산 측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이후 아시아나 측은 '인수 무산 책임이 있는 현산 측에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 자료 요구·사전 동의 요청...1심 "확약 조항 협의 있었다"
재판의 주요 쟁점은 아시아나 측의 '계약 확약 조항' 위반 여부였다. 확약 조항에는 계약에 규정된 진술과 보장 등의 위반을 초래할 수 있는 사실이 발생하는 경우 계약 상대방에게 신속히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채발행과 자금조달 등을 하기 전에 현산 측과 협의해야 한다는 사항도 있다.
이에 따라 재판에서는 양측이 확약 조항을 협의했는지 여부를 다퉜다. 특히 아시아나 측이 지난 2020년 4월 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 7000억원을 지원받은 점 등을 놓고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재무 상황이 악화하자 위와 같이 운영자금을 지원받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전에도 경영정상화를 위해 산업은행 등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현산 측은 사전 동의 없이 자금을 추가 차입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는 계약상 확약 조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양측의 협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산 측은 인수 준비를 위해 꾸린 '미래혁신준비단'을 통해 아시아나 측에 인수준비위원회의 활동 계획과 인수 관련된 자료 제공을 요청하거나, 신주 발행을 위한 이사회 일정을 조율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아시아나 측에 월별 현금흐름표, 부채 상환 계획 등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시아나 측은 현산 측에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매출 감소, 계열사의 자본잠식 등 경영 상황을 보고하거나, 산업은행 등의 지원에 대해 알렸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2020년 4월 21일 1조 7000억원 규모의 신규 한도여신을 승인받고 같은 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이에 대해 결의한 후 공시할 예정"이라고 현산 측에 메시지를 보내거나, 산업은행의 지원과 관련해 아시아나항공의 이사회가 개최될 예정이라고 통지하며 이에 대한 사전 동의와 사전 협의를 요청하는 식이었다.
이에 현산 측은 '향후 아시아나항공이 이 사건 추가자금 차입과 관련되거나 이에 부수해 전환사채 발행, 정관변경 등 통상적인 사업 과정에 따라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행위를 추진하는 경우 현산 측과 협의 또는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하거나, 사전 동의 요청을 거절하는 등의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사정 등을 종합한 재판부는 "원고(아시아나 측)들은 이 사건 추가자금 차입결정 이전부터 피고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한국산업은행 등으로부터의 추가자금 차입에 대해 협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현산 측이 아시아나 측의 서면 동의 요청을 거부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현산 측은 아시아나항공과 그 계열사에 긴급히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경우, 운영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시아나 측의 동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또한 "아시아나 측은 현산 측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영구전환사채의 발행 금액과 발행 조건을 정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현산 측 주장과 같은 불리한 조건으로 영구전환사채를 발행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현산 측, 거래종결 위한 의무 이행 거절"
재판부는 현산 측이 거래종결을 위한 의무 이행을 거절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시아나 측 질의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점 등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아시아나 측과 한국산업은행은 (현산 측이 요청한) 인수상황의 재점검 및 인수조건 재협의의 구체적인 의미와 범의에 관해 현산 측에 확인을 구했으나 현산 측은 이에 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특히 현산 측은 추후 재실사 과정을 거쳐 입찰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가 감사보고서(2020년 3월 19일 공시)의 재무제표에서 명시된 것과 같이 더 나빠지는 경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것인지, 아니면 인수대금을 감액하는 정도에 그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재판부는 현산 측에 실사 기회가 충분했다고 보기도 했다.
재판부는 "아시아나 측은 현산 측에 예비입찰과 최종입찰을 통해 상당한 기간 동안 기업인수에 필요한 충분한 실사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인다"며 "현산 측은 합리적 투자자로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평가에 기초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결정했고, 전문적인 자문사를 선임해 그 자문사들의 독립적인 분석과 평가를 신뢰했음을 (계약서에서) 진술하고 보장했다"고 짚었다.
현산 측에 귀책 사유...계약금, 위약벌로서 아시아나 측에 귀속
이러한 쟁점들을 토대로 재판부는 양측이 주고 받은 계약금이 '위약벌'로서 아시아나 측에 귀속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약벌이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가 채권자에 벌금을 내는 것이다. 위약벌의 경우 법원이 재량으로 감액할 수 없다.
재판부는 위약벌과 관련된 판단을 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정상화함으로써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속한 인수 절차의 종료가 중요한 점 △계약금은 아시아나 측이 입은 손해의 입증곤란을 덜기 위한 목적보다 현산 측의 채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현산 측의 귀책 사유로 이 사건 인수계약 해제 시 아시아나 측에 귀속되는 계약금은 계약서 문언 그대로 '위약벌'로 봄이 타당하다"며 "현산 측의 귀책 사유로 이 사건 인수계약이 해제됐기 때문에 계약금은 위약벌로서 아시아나 측에 귀속됐다"고 했다.
아시아나 측이 현산 측에서 받은 계약금 2500억원을 돌려줄 의무(채무)가 없다는 의미였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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