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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M&A]③ 이사회가 화물매각을 반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Numbers 2023. 10. 29. 22:48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개인적으로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전임 정부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결정'에 대해 한 말이다. 양사 합병 추진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심정을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추진하는 국책은행 수장의 속내가 이 정도인데, 세간에서 화물사업부 매각을 두고 '허위매각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매각은 법적으로 성립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묻지마 매각'이 추진되는 이면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가 아닌 산업은행의 '책임 회피' 목적이 자리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앞에선 '양사 합의' 뒤에선 '지원 취소'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선 통합 후 매각안’이 담긴 조건부 승인을 요청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는 화물사업부 매각 계약서에는 ‘EC에서 통합안이 승인되면 매각한다’는 내용이 명시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화물사업부 매각 주체다. 대한항공이 무슨 권한으로 남의 피같은 자산을 내다 팔 수 있냐는 얘기다. 

물건의 처분 권한은 소유자만 갖는다. 대한항공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은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이 되면 팔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대한항공이 자사의 사업부를 매각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매각을 불승인한다고 해서 화물사업 매각 계약이 무산되는 것도 아니다.

화물사업부가 매각되려면 ①화물사업부를 사겠다는 기업이 조건부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 ②대한항공이 EC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후 → ③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매각을 승인한 다음 ④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부를 매각하는 계약을 이행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이사회는 오는 30일 무슨 결정을 하는 걸까? 이사회는 ‘화물사업부 매각안이 담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시정 조치안을 대한항공이 EC에 제출하는 것을 동의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 산업은행이 양사합의에 따라 시정조치안 내용을 결정하도록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시정조치안을 EC에 제출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꽤나 존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상은 거리가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은 전방위로 이사회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부 매각을 찬성해야 15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산업은행은 합병이 무산될 경우 추가 지원이 없다는 의견을 아시아나항공과 EC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사업부 매각 '무리수', '허위매각설' 점화 

 

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를 압박할 명분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사업부 매각이 항공산업 재편이라는 산업은행의 정책 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화물사업부 매각안을 제시하면 EU가 조건부 기업결합을 승인할 것’이라는 전제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화물사업부는 아무나 인수 할 수 없다. 운항증명(AOC)이라는 항공운송사업면허증을 가진 사업자만 살 수 있다. 만약 대기업이 인수에 참여하려면 조종사, 설비, 장비, 운항 유지보수 지원 시스템 등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대규모 자금이 든다. 

이미 관련 인프라를 갖춘 LCC가 아니라면 화물사업부만 따로 인수할 실익은 크지 않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이미 갖추고 있는 항공사를 인수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라는 평가다.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이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아닌 살림이 빠듯한 저비용항공사(LCC)들과 화물사업부 매각 논의를 진행하는 이유다. 

문제는 국내 LCC들의 규모와 경쟁력이다. EC는 인수를 희망한 LCC에 대해 적격성 심사를 진행한다. 화물사업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지 살펴본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LCC가 적격성 심사에 통과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화물사업부를 매각해도 EC가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LCC 입장에선 심사 통과가 어려운 계약을 체결할 이유가 없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EC 승인을 목표로 대한항공의 제시안에 찬성하기도 쉽지 않다. 가능성이 낮은 EC 승인을 기다리느라 또 다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어서다. 

이를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측한다. 일각에서 ‘허위 매각’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항공이 자사 화물사업부는 그대로 둔 채 둔 채, 절차가 복잡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매각을 추진하는 점도 허위매각설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산은, 아시아나항공 지원 중단 가능성 낮아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 자금 지원을 받으려고 조치안에 찬성하면 소액주주에 대한 배임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 하락과 함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부결시킨다고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금 지원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원 중단으로 파산 절차에 돌입해 ‘제2의 한진 사태’가 재현되면 산업은행의 책임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해운사로 지난 2017년 최종 파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화물 물동량이 줄고 운임이 폭락하면서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주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수십년간 쌓아온 영업정보와 물류 네트워크가 해외로 넘어가면서 국가 경쟁력이 타격을 입었다. 이후 업계에서는 한진해운 반성론이 일었고 그 중심에는 산업은행이 자리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지원을 중단하고 파산절차를 진행하면 3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 회수는 물론이고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항공 슬롯을 모두 잃을 수 있다”며 “산업은행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산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왜 산업은행은 EC의 승인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화물사업부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당장 기업결합 무산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C의 승인 여부는 산업은행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영향력 하에 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부결되면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합병안으로 3년이라는 기회비용을 부담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위기에 빠진 국적선사를 살리기 위해  해외 기업들이 국적선사의 자산을 압류하지 않도록 정부가 보증을 서 국적선사를 회생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며 "산업은행의 대응과 차이가 크다. 산업은행에게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는 관심 밖의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고 일침을 놨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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