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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M&A]④ 산업은행은 어떻게 조원태의 조력자가 되었나?

Numbers 2023. 10. 30. 12:25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둘러싼 대립은 ‘차악’에 대한 견해차를 바탕으로 한다. 무엇이 국가 경제와 소비자 후생에 더 해로운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긋난 결과다. 

3년의 세월을 헛되이 할 수 없으니 더 늦기 전에 마지막 단추를 꿰자는 게 찬성 측의 주장이다. 반대 측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으니 이제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산업은행의 책임론이 더욱 불거지는 이유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확보에 있다. 고의가 있든 없든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은 기업 경영권에 개입해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산업은행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명분을 퇴색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12조 부채두고...찬성 측 '심각' VS 반대 측 '허수'


합병 찬성과 반대의 측의 시각차는 분명하다. 합병을 찬성하는 측은 합병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에 방점을 두고 있다. 향후 시나리오에 대한 ‘가정법’을 근거로 한다. 반대 측은 합병 목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과연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냐는 ‘본질론’에 가깝다. 

업계의 주장을 조금더 세밀하게 나누면 ①대한항공과의 합병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한 유일한 대안인지 ②그렇지 않다면 제3자 매각 가능성이 있는지 ③그것도 아니라면 되레 대한항공과의 합병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지연시키는 최악의 선택지인 지 등이다. 합병 찬성 측은 ①번, 반대 측은 ②번, 다소 강경한 입장은 ③번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찬성 측 주장의 핵심 요인은 ‘12조원’에 달하는 부채다. 이번 M&A가 무산된 후 재매각을 추진한다고 해도 대규모 부채를 인수할 기업이 나타날지 여부다. 또  재매각이 성공할 때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도 담겼다. 대한항공이 인수하지 않는다면 아시아나항공은 파산 수순을 밟을 것이란 주장이다. 

반대 측은 12조원이 허수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올 상반기 연결기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단기차입금은 2조5770억원이다. △산업은행 1조7930억원 △한국수출입은행 7630억원 △부산은행 210억원 등이다. 장기차입금은 129억원이다. 나머지는 항공기 사용에 따른 리스부채 4조원 등으로 이자비용이 나가지 않는 부채라는 설명이다. 즉 인수자가 12조원의 빚을 떠안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 근거로 아시아나항공의 제3자 매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반대 측 입장이다. 부채 규모가 크더라도 산업은행이 부채를 탕감해주면 제3자 매각이 더 수월할 수 있다는 제언도 합병 반대 측에서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는 다소 부풀려져 있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이 아니면 아시아나항공은 파산수순이라는 답을 내놓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가 더욱 어려워 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제대로된 주인을 찾도록 업계와 산업은행이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했다. 

 
산업은행, 선 매각 후 지원..."절차적 합리성 결여"   

 

양측이 대립하는 또 다른 지점은 산업은행의 역할론이다. 현행법에 의하면 산업은행은 산업을 잘 키우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고, 나아가 국민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찬성 측은 부실 기업을 정리하는 것이, 반대 측은 대한항공의 독과점을 막는 것이 국민경제에 이롭다고 맞서고 있다.

우선 찬성 측은 산업은행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산업은행은 두 항공사의 합병 필요성 근거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시적 항공 수요 감소와 △'1국가 1국적 항공사 체제'의 보편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국내 1·2위 항공사 통합으로 ‘글로벌 톱10’ 수준의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대 측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실익이 불분명하다며 산업은행의 논거를 반박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로펌 IB관계자는 “작금의 상황은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와도 거리가 멀지만, 대한항공도 재무적 부담이 커져 추진할 명백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절차적 합리성도 문제 삼는다. 산업은행의 합병 개입 방식이 적절했는가다. 부실 기업 매각은 통상 채권단이 대출 상환 기일 연기·대출 동결·출자 전환 등의 워크아웃을 통하거나 파산신청 두 가지를 통해 진행한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이같은 정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한항공과의 시너지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회계법인 소속의 IB업계 관계자는 “우선 워크아웃으로 정상화 시도를 한 후,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 파산 절차에 돌입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이 공개 입찰 등 통상적인 매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지난 6월 ‘무엇을 위한 양대항공사 합병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항공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양대 항공사의 합병이라는 중대한 결정에 대해 공개입찰이나 실사 등 어떤 주요 절차도 거치지 않고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불발된 뒤 2달 만에 전격적으로 (합병 계획이) 발표됐다”고 토로했다. 

 

한진칼 지분 확보를 통한 아시아나항공 지원 '의구심'

 

특히 반대 측은 산업은행의 무리한 인수합병 추진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보호라는 결과를 낳은 점에 주목한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이 아닌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인 한진칼을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은행은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보통주 의결권 기준 약 10.7%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보트 권한을 쥔데 이어 공통 투자합의서를 통해 한진칼의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도 확보했다. 

당시 조원태 회장의 비우호측인 3자연합의 지분율은 46.7%로 조원태 회장측 우호지분 41.4%를 앞서고 있었다. 산업은행에 대한 한진칼의 유상증자 후 조원태 회장 측 지분율은 47.3%로 늘어났고, 3자연합 지분율은 42.9%로 하락했다. 

반대로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자회사인 대한항공의 지분을 확보했다면 이같은 경영권 개입 여지는 낮아진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반드시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앞서 지난 2021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국회 토론회에서 항공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지분 보유 없이 바로 대한항공을 지원하면 되는데도 한진칼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오직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목적”이라며 “지분 확보가 아닌 지원 방식이 많았음에도 거꾸로 주식으로 지분을 확보한 것은 한진칼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 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에 개입할 경우 다른 기업의 경영권에 혹시 모를 영향을 끼치지 않을 지 충분히 점검하고 가능성을 줄여야 다”며 “산업은행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인수에 따른 리스크 대비, 충분했나? 

 

한진칼 이사회 이사장이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의 이른바 '밀실야합'은 산업은행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추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2020년 당시 이동걸 전 회장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석동 전 위원장과 양사의 합병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 차례 곤욕을 치뤘다. 이동걸 전 회장은 막역한 사이가 맞다면서도 이같은 내용의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조치를 예고하기도 했다. 

결국 산업은행은 절차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채 두 가지 리스크를 안고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했다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승인여부와 무관하게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이 더욱 약화될 가능성, 그리고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대형 항공사 탄생이라는 당초 기대감과도 거리가 있다. 대한항공이 양사 기업결합을 심사 중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매각과 일부 여객 노선 반납안을 제출하자, 아시아나항공이 사실상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은행 측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양사의 통합 과정을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통합 항공사의 건전 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대출보다 투자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한진칼을 경유해서 지원이 이뤄진 게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라는 업계 지적에 대해서는 “대한항공으로 직접 투자할 경우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은 20% 미만이 돼 지주회사 요건을 위반하게 된다”며 “한진칼은 항공자회사들을 보유하고 있어 항공산업 재편과정에서 콘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했을 뿐 오너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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