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vernance/주주행동주의

[금호석화 경영권 분쟁] 소멸돼 가는 '박철완의 난' 종합정리

Numbers_ 2024. 4. 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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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화 경영권 분쟁] 소멸돼 가는 '박철완의 난' 종합정리

'주가 부양'을 내건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의 세 번째 주주제안이 주주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주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제안이 번번이 주총 벽을 넘지 못하자 시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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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선우 기자. 금호석유화학 홈페이지·유튜브 채널 '금호석유화학 휴그린'·박철완 주주제안 홈페이지·게티이미지뱅크


'주가 부양'을 내건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의 세 번째 주주제안이 주주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주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제안이 번번이 주총 벽을 넘지 못하자 시장의 시선은 냉정하게 변해간다. 박 전 상무의 행보를 원점에서 재평가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로터>는 시장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박 전 상무가 재벌 황태자에서 주주활동가로 변신한 지난 20여년의 인생 굴곡을 요약 정리했다. 그가 주주활동가로 지속 활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트러블메이커로 이름을 남길지 예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01. 비운의 황태자


박 전 상무가 일반적인 주주활동가들과 다른 점은 재벌 가문 소속 일원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에게 금호석유화학의 1대 주주 지위를 갖게 한 원천동력이었으나 주주활동가에게 필수 덕목인 소액주주들과의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데는 정서적 약점이 됐다.

그의 인생은 재벌의 인생이었다.

박 전 상무의 부친은 탁월한 인맥과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던 고(故) 박정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다. 박정구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양대 국적 항공사로 키워냈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용을 한때 10대그룹 규모로 키운 경영자다.

박 전 상무가 20대 중반이던 지난 2002년 폐암으로 작고했는데, 박 전 상무의 재벌 구성원으로서 고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구 전 회장 작고 후 동생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형제간 순번을 나누어 경영하기로 한 약속대로였다.

하지만 그 이후 박정구 가문은 다시 그룹 경영권이나 계열사 경영권을 차지하는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한마디로 가문 내에서 과거에 누리던 특권과 지위를 모두 잃게 됐다.

박 전 상무는 2000년대 중반 즈음 부친이 애정을 갖고 경영했던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하게 된다. 그룹 계열사 첫 데뷔였으나 주목받지는 못한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다. 차장으로 입사했고 수년 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장이던 박세창 상무(박삼구 전 회장의 아들) 휘하로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시아나항공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 본부 등에서 어떤 권한도 갖지 못했고 재벌 황태자들에게 흔하게 붙는 수식어인 '경영수업'이라는 꼬리표조차도 붙지 않았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해도 박 전 상무가 지금처럼 숙부와 각을 세우면서 표대결을 벌이는 주주활동가가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02. 그룹 해체


박 전 상무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은 또 있다. 숙부들간 경영권 다툼, 그리고 그룹의 채권단 관리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박 전 상무의 진로 뿐 아니라 금호가문 일원 모두의 진로를 180도 바꾸게 한다.

2009년 6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측과 박찬구 현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측간 소위 '형제의 난'이 발발했다. 그 해 6월 15일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기일에 박찬구 회장의 기습적인 선언이 있었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주식을 장내매도하고 금호석화 주식을 매입하여 지분율을 올려서 1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면서 금호석유화학의 금호아시아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곧바로 박삼구 당시 회장은 박찬구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며 반격했고 더불어 박세창 사장 및 박 전 상무는 여러 계열사들과 공익재단을 통한 자금을 동원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 지분경쟁을 벌인 사건이다.

박찬구 회장의 독립 시도는 형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형제간 공동합의 원칙을 파기하고 아들 박세창 사장으로의 승계가 이미 당연시 된 시점에서 대우건설의 부실이 더 이상 금호석유화학에 전가되지 않도록 한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실제 2005년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세창 사장으로의 경영 승계를 기정사실화하며 형제공동경영 원칙을 부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박 전 상무 입장에서는 부친이 작고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드라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박 전 상무는 숙부들간 경영권 다툼 속에서 박삼구 전 회장 편에 섰다. 당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이 박삼구 전 회장이었고 '경영권자'의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말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워크아웃 및 자율협약의 형식으로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직후 그룹의 공중분해 위기가 찾아왔다.

채권단(산업은행)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소위 '삼분지계' 계획을 세웠고 실행했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가계에,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가계에,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맡는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때 2010년 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반대매매 상황을 맞닥뜨린 박 전 상무는 박삼구 전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이에 격분한 박 전 상무가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을 본인 일가가 경영하겠다고 나섰다.

박 전 상무가 처음으로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대한 미련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채권단은 일언지하에 이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몸을 의탁하고 있던 박삼구 전 회장도 추후 아시아나항공을 다시 가져와 경영할 생각이 있어 박 전 상무의 이런 개인적 계획을 지지해주지 않았다. 이 후 박 전 상무는 박삼구 전 회장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됐다.

박 전 상무가 갈 곳은 마땅치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 당시 고 박정구 전 회장의 미망인이자 박 전 상무의 모친인 김형일 여사가 직접 박찬구 회장에게 연락해와 박삼구 회장에게 팽을 당해 갈곳이 없으니 받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박찬구 회장이 이를 수락하면서 숙부와 조카의 동거가 금호석유화학에서 시작하게 된다.

박찬구 회장이 박 전 상무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서는 몇가지 해석이 있다. 박찬구 회장이 고 박정구 회장을 형제 중 가장 존경했고 너무 빨리 고인이 된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는데 그 형제의 정이 박 전 상무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바탕이 됐다는 설이다. 박삼구 회장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당시는 박삼구 전 회장측의 고소로 박찬구 회장에게 사법리스크가 드리웠던 때였기 때문이다.

역시 이 때도 약 10년 후 박 전 상무가 숙부(박찬구 회장)와 경영권 분쟁을 벌일 것으로 예측하는 전망은 전혀 없었다.

 

03. 조카의 난


'조카의 난'은 그로부터 10년 가량이 지난 후다.

박 전 상무 가계에 대한 급여 및 처우 문제가 발단이었다.

박 전 상무 가계는 지속적으로 처우나 급여 수준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당시 박 전 상무 가계가 받는 처우는 박찬구 회장 못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 전 상무의 모친인 김형일 여사는 금호석유화학에서 '고문' 대우를 받으며 집무실, 기사, 비서 등의 편의를 누리고 있었다. 급여 및 처우에 대한 불만을 지속 제기하던 중 급기야 2019년 주총에서 박 전 상무는 박찬구 회장의 대표이사 재선임 안건에 찬성하지 않겠다며 박 회장 측을 압박했다. 사실상 삼촌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측은 사실상 이때 '조카의 난'이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후 2020년, 인사 문제가 벌어졌다. 2020년 임원인사에서 박찬구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사장(당시 상무)이 승진자 명단에 오른 것이다. 박준경 사장과 박 전 상무는 78년생 동갑이다. 박 전 상무는 승진하지 못했다. 2019년 주총에서 분쟁의 조짐을 내비치자 금호석유화학측이 이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박준경 당시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킨 것이다.

한 관계자는 "김형일 고문에 대한 급여나 집무실 기사 비서 제공 등 과도한 처우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는 등 최고의 대우를 하였으나 과거 그룹 회장일가로서의 지위를 누려 봤던 박철완 일가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해주기도 했다.

외부에서는 박준경 당시 상무를 홀로 전무로 승진시켜 박철완 전 상무를 자극하게 된 것이 '조카의 난' 발발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2021년, 2022년, 2023년 3년째 박 전 상무는 3차례에 걸친 주주제안을 하는 등 '조카의 난'이 발발했다.

지금 되돌아 분석해보면 사실상 '조카의 난' 발단은 급여 및 처우 등 금전적 문제에서 시작된 셈이다.

22일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금호석유화학 주주총회에 주주가 입장하고 있다.(사진=김수정 기자)


04. 박철완의 목표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 국면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선 소액주주의 표심은 서서히 냉정해지고 있다. 지난 3년간 박 전 상무가 주총에서 획득한 찬성비율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박 전 상무의 '엑시트' 가능성을 주시한다.

2022년의 경우 IS동서가 엑시트 상대로 거론됐다. 시장의 추측은 '박 전 상무가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주가를 부양한 뒤 평소 친분이 있던 IS동서에게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넘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모 언론사가 이를 폭로하면서 계획은 틀어졌다. 다만 실제 지분 매각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젝트 자이언트'라는 프로젝트 명도 등장한다. 박 전 상무의 엑시트 플랜을 명명한 이름이다. 주당 21만원의 엑시트 가격도 일각에서 회자됐다. 근거는 없었다. 박 전 상무의 주주제안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

얼마전 있었던 2024년 주총에서는 차파트너스가 등장했다. 자사주 소각을 이슈로 던지고 주주제안을 했으나, 차파트너스를 향해서는 추후 박 전 상무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인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엑시트가 아니라면 긴 싸움이 전망된다. 별다른 임팩트가 없는 지루한 싸움이다. 석유화학 경기는 본격 다운싸이클에 진입했고 업종 전문가들은 업황과 주가가 한동안 올라갈 모멘텀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계속된 주주제안의 피로감, 그 끝이 무엇일 지는 박 전 상무만이 알고 있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