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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류가 만나면 난류가 된다."
지난 2000년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삼남 고 구자학 선대 회장이 세운 아워홈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남매의 난'은 인화의 상징이자 장자 승계를 고수한 LG의 가풍과 유능한 딸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한 삼성가의 가풍이 섞인 아워홈의 '독특한 태생'에 기인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경영권 매각과 방어를 둘러싼 네 남매의 속내가 다르고 각자의 이익에 따른 사모펀드 개입설에 힘이 실리면서 아워홈은 창립 25년 만에 외부 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도 기업의 뿌리인 LG의 품을 떠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셈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차녀 이숙희 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둔 구 선대 회장은 장남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에게 40%의 지분을 물려주고, 세 자매에게는 나머지를 공평히 분배하는 승계 절차를 일찍이 마쳤다. 하지만 정작 경영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고 두각을 드러낸 자식은 장남이 아닌 삼녀 구지은 부회장이었다.
분쟁의 중심에 선 세 남매의 각기 다른 접근법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워홈 최대주주는 지분 38.56%를 쥔 장남 구 전 부회장이다. 이어 삼녀인 구 부회장이 20.67%를 보유한 2대주주다. 장녀 구미현 씨가 19.28%, 차녀 구명진 전 캘리스코 대표가 19.60%를 각각 가졌다. 이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완성된 구조로 애당초 구 전 부회장과 구 부회장이 물려받은 지분은 40%, 20.01%였으나 2013년 한 차례 조정을 거쳐 현재의 지분율을 갖췄다.
이 중에서도 경영권 분쟁의 전면에 나선 세 남매의 ‘진짜’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경영권 매각과 방어, 사모펀드 활용법 등에 대한 접근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먼저 구 전 부회장의 경우 미현 씨와 지분 공동 매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막상 경영권을 확보하면 매각이 아닌 방어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자승계를 염두에 둬야 하는 입장이라서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그가 아들 구재모 씨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제안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재모 씨는 앞서 2020년 말 사내이사로 활동하다 지난해 말 물러났다. 다만 해당 안건은 이번 주총에 상정되지 않았다.
구 전 부회장과 손잡은 미현 씨는 ‘돈’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의도가 있다는 평가다. 배당액 확대를 요구하고,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화를 시도하는 등 그간의 행보를 봤을 때 미현 씨는 이번 분쟁에서도 ‘돈’을 마련하는 게 최우선 가치라는 것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한 구 전 부회장과 미현 씨가 만약 계획대로 사모펀드 등에 지분을 공동 매각한다면, 아워홈의 소유권은 LG 품을 떠날 것으로 전망된다. 둘의 지분 합계가 57.84%에 달하기 때문이다. 앞서 구 전 부회장과 미현 씨는 2022년 경영권을 포함한 합산지분 매각 작업을 벌인 바 있다.
구 부회장은 이 사태를 막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모펀드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지분 매각 의사가 강한 미현 씨를 다시 한 번 설득해 구 부회장의 우호 세력에 지분을 넘기게 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다. 다만 미현 씨(19.28%) 지분만으로는 사모펀드 등이 분쟁에 참전할 매력도가 떨어지는 만큼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구 부회장은 오빠인 구 전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남아 있는 이상 경영권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입장이다. 구 부회장은 남매 중 유일하게 2004년부터 아워홈에서 역량을 입증했던 터라 경영권을 유지해 가업을 키워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워홈 직원들도 구 부회장을 지지하고 있다. 전날 아워홈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경영에 무지한 구미현, 이영렬 부부는 이사직 수용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며 현 구 부회장 경영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자 승계' LG와 '능력주의' 삼성의 가풍이 충돌한 양상
아워홈은 태생적 특성이 있다. 장자승계 원칙으로 계열분리 전통을 계승한 LG가의 방계기업이지만 삼성가의 가풍도 섞여 있다. 구 선대 회장과 이 여사가 1957년 결혼해 LG와 삼성은 사돈이 됐다. 아워홈 오너2세들은 LG가와 삼성가가 섞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셈이다.
LG는 장자승계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왔다. 이 때문에 경영권 승계에서 가족 간의 갈등도 비교적 적었다. 계열 분리가 활발한 것 역시 장자 외의 자식들이 본업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독립 경영을 이어가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LS그룹, LIG그룹, LX그룹 등 숱한 방계기업이 탄생했다. 아워홈 역시 구 창업주의 삼남인 구 선대 회장이 LG유통(현 GS리테일)에서 분사해 설립한 기업이다.
남성 중심의 경영 기조가 뚜렷했던 친가 LG와 달리 외가인 삼성가는 사뭇 문화가 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은 삼남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은 막내딸이다. 그다음 대에서는 이미경 CJ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등 능력만 있다면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딸들이 많았다.
구 부회장의 경영 참여가 일찍부터 활발했던 데도 이모와 사촌언니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16년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해온 구 부회장을 밀어내고 구 전 부회장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아워홈 오너2세의 경영권 분쟁은 친가(LG)와 외가(삼성) 두 가풍의 충돌 양상"이라고 말했다.
박재형 기자 jhpark@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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