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분석

'10년 제자리' 태광산업, '투자 만지작' 아른 거리는 이호진의 그림자

Numbers_ 2024. 5. 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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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제자리' 태광산업, '투자 만지작' 아른 거리는 이호진의 그림자

태광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극도로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보여왔다. 2년 전 조 단위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태광산업에 대한 투자는 지지부진하다.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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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태광산업


태광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극도로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보여왔다. 2년 전 조 단위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태광산업에 대한 투자는 지지부진하다.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의 경영복귀가 본격화되며 멈췄던 투자가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지만 이마저도 주춤한 상태다.


'경쟁사들 미래 보는데…' 제한적 포트폴리오

 

이 전 회장이 지난 2011년 회사 자금 배임 및 횡령 혐의로 법정 구속되면서 태광그룹의 투자 시계는 10년 넘게 멈춰 있었다. 2021년 LG화학과 합작법인인 티엘케미칼을 설립하고 2022년 아라미드 공장 생산라인 증설에 1450억원을 투입한 게 고작이다. 의사결정의 구심점인 총수의 부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규 투자 대신 전통적인 본업에만 집중해온 것이다.

그 결과 태광산업의 포트폴리오는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아크릴로니트릴(AN), 프로필렌 등 기초소재에 머물러 있다. PTA는 석유화학의 중간제품으로 페트병의 원료가 되고, AN은 아크릴섬유와 ABS합성수지 등의 원료로 쓰인다. 프로필렌은 석유화학 기초유분 중 하나다. 이 제품들은 태광산업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생산능력(캐파)은 △PTA 102만톤 △프로필렌 30만톤 △AN 29만톤 등이다.

문제는 태광산업의 캐시카우가 글로벌 경기 및 수급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경기순환형 산업이라는 점이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한 변동성이 훨씬 크다. 태광산업은 2017년부터 매년 8%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내왔다.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증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금리 인상 △위드 코로나 이후의 경기 회복 지연 등이 겹치면서 영업이익률은 2022년 -4.0%, 2023년 –4.4%로 곤두박질쳤다.

석유화학 사업에만 집중해온 태광산업의 행보는 글로벌 수요 부진 및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업황 부진이 계속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돌파구를 찾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들 기업은 업황 변동성이 큰 석유화학 사업 대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첨단소재 등 미래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우수한 재무건전성? 투자 없어 가능했다

 

태광산업이 폐쇄적인 경영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현금흐름 덕이다. 태광산업은 사실상 무차입 경영이 가능하다. 지난해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7088억원, 자본총계는 4조295억원으로 부채비율은 17.6%에 불과하다. 순차입금 역시 마이너스다.

현금도 넉넉하다. 태광산업의 현금성자산은 1조2656억원으로 전체 자산(4조7383억원) 대비 26.7%에 달한다. LG화학(11.8%), 롯데케미칼(11.7%), 금호석유화학(12.4%), 효성화학(1.7%) 등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과 비교하면 자산 대비 현금이 많다. 그동안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투자하지 않고 계속 쌓기만 했다는 의미다.

태광그룹은 2022년 석유화학·섬유 등 제조 부문에 앞으로 10년간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전방위적 구상이다. 총투자금 10조원 중 6조원은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배정했다. 단순 계산하면 연평균 6000억원가량을 투입해야 한다. 재무적으로 우수한 수준을 넘어 부채와 차입금을 최대한 피하면서 현금을 적립해돈 태광산업은 실탄이 넉넉하다.

 

또다시 발목잡는 오너 리스크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이 전 회장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사법 리스크와 맞닥뜨렸다. 태광산업의 조 단위 투자계획도 다시 안갯속이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최근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그룹 계열사들을 통해 20억원이 넘는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고 태광컨트리클럽(CC)을 통해 계열사에 공사비 8억6000만원을 부당 지원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번 의혹은 과거 이 전 회장이 실형을 받았던 5년 전과 유사하다. 당시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실적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40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이 전 회장의 사법처리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초 이 전 회장은 연내를 목표로 경영 복귀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 부재 기간에 그룹 실세로 떠올랐던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을 해임하고 불공정·비위 행위에 대한 세부 징계 기준을 정한 '징계양정규정 표준안'을 마련한 것도 복귀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

이에 일부에서는 오너 리스크가 재연돼 태광산업의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광산업 측은 "이 전 회장이 받는 혐의는 대부분 그룹 경영을 총괄했던 김 전 의장이 저지른 일"이라고 항변했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