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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의 투자시계는 요란하지 않게 흘러간다. 모험을 즐기는 법이 없다. 금호석유화학이 불황의 파고를 넘는 방법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전략제품인 'NB라텍스'의 경쟁력을 강화할 때도 느리지만 안정을 택했다. '선택적 느림보' 전략으로 10여년간 단계적으로 NB라텍스 생산량을 확대했다. 코로나19로 NB라텍스가 들어간 의료용 장갑 수요가 폭발하면서 팬데믹 위기를 잘 넘겼다.
의료장갑용 합성고무 전환 '신의 한수'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NB라텍스 1-라인을 시험 가동해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울산석유화학단지 유휴 부지에 짓고 있는 NB라텍스 1-라인에서는 연간 23만6000톤의 NB라텍스를 생산할 수 있다. 기존 울산공장의 연간 NB라텍스 생산능력은 71만톤이다. NB라텍스 1-라인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올 하반기부터 연 94만6000톤의 생산체제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타이어용 합성고무(SBR)로 국내 시장을 압도한 금호석유화학의 넥스트 캐시카우가 바로 NB라텍스다. NB라텍스는 고무장갑의 핵심 원료다. 특히 의료용 장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코로나19 당시 NB라텍스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 2020년 적자를 낸 곳이 수두룩했지만 금호석유화학은 오히려 2020년 영업실적이 코로나19 발생 직전보다 좋았다. 2020년 자회사를 제외한 본업 실적만 따졌을 때 영업이익률은 약 15%에 달했다.
2021년 전 세계에서 NB라텍스 수요가 늘며 그해 합성고무 수출액은 전년 대비 두 배 늘어난 2조6805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 NB라텍스 수출 가격은 톤당 1000달러 수준이었지만 2021년 2000달러까지 치솟았다.
팬데믹이 끝나고 업체들의 가동률 상승으로 장갑 판매가격이 2022년부터 줄곧 내림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해는 V자 반등이 예상된다. 다만 원재료 값까지 따지면 팬데믹 당시의 성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NB라텍스의 2021년 가격은 1803달러(MT당), 원재료인 부타디엔은 1014달러(MT당)로 단순 계산하면 약 800달러 남는 장사였다. 반면 올해 예상 NB라텍스 가격은 829달러(MT당)로 부타디엔 가격 1317달러(MT당)를 감안하면 손해다.
미국 등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은 국가 중심으로 수출지역 다변화 등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증설 물량의 탄력적 가격 정책을 통해 판매 확대를 추진하고 적극적인 고객 협의와 기술 교류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투자 신중…안정적 재무구조 비결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시장을 주도하는 경쟁자들이 이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에 뛰어들 때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한 우물만 팠다. 경쟁사들이 미래 준비에 잰걸음을 보일 때 홀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변화에 유연하지 않지만 리스크는 적다. 이 때문에 금호석유화학의 진가는 석유화학 업황이 어려울 때 드러난다.
올 1분기 금호석유화학의 개별기준 부채비율은 41.8%, 차입금의존도는 13.8%로 집계됐다. 자본 지출 규모가 크지 않고 투자금이 소요되더라도 자체 현금으로 대부분 소화했다. 모회사의 보수적 재무기조를 닮아 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켐 등 자회사들도 부채비율이 40%를 넘지 않는다. 석유화학 불황기에 금호석유화학과 자회사의 재무비율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안정'을 최우선에 둔 재무전략은 NB라텍스 투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NB라텍스 생산능력을 일시에 제고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끌어올렸다. 종이코팅용 접착제로 쓰이는 SB라텍스만 생산하던 금호석유화학은 2013년 NB라텍스 연생산능력 16만8000톤을 이뤄냈다. 한동안 투자가 뜸하다 2016년 기존 타이어용 합성고무 설비를 NB라텍스용으로 전환해 연 40만톤 체제를 구축했다. 3년 만에 투자시계를 돌린 회사는 2019, 2020, 2021년 3년간 증설로 71만톤 체제를 완성했다.
총 2765억원이 투입된 NB라텍스 1-라인 투자 역시 2021년부터 올 2분기까지 4년간 나눠 투자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부담을 덜었다.
증설 투자 기간에도 자본적지출(CAPEX)이 영업활동현금흐름을 초과하지 않는 재무원칙을 고수했다. 개별 재무제표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21년 1조1450억원 △2022년 3748억원 △2023년 4361억원이었으며, 유형자산 취득액은 △2021년 1375억원 △2022년 2555억원 △2023년 3137억원으로 집계됐다. 철저한 재무원칙으로 진행돼 투자 속도는 느리지만 양호한 재무구조를 유지했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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