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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무구조도’ 임원 처벌로 금융사고 근절 어려워
결과 못지않게 과정관리 중요성 환기 계기 돼야
흔히 은행업은 한 사람이 일하고 세 사람은 감시하는 비즈니스라고 한다. 돈 버는 조직(Profit Center) 보다 감사 준법감시 리스크 경영관리 등 중첩해서 감시 감독하는 조직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완전판매 문서위조 횡령 등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사가 점점 심해지는 사회적 불신을 더 확대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국회가 나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강화해 금융사 내부통제관리제도를 세밀하게 바꾸고 강화했다. 내달 3일부터 관련 법이 시행되면 금융지주 은행은 CEO를 포함한 임직원의 ‘책무기술서’ ‘책무체계도’ 등이 포함된 ‘책무구조도’를 만들어 금융당국에 제출하고 6개월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3일부터 본격 시행한다. 보험 금투 여전 저축은행 등 업권별 자산규모별로 차등해 1~3년 유예기간을 두고 점진적 확대를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금융사 책임성이 높아지고 신뢰회복을 통해 금융업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사 모든 임원이 내부통제를 자기업무로 확실히 인식하고 준법 소비자보호 건전성 관리 등 사고다발 영역이 잘 통제되길 바라는 것이다.
책무구조도는 영국의 내부통제제도를 참고한 것이다. 영국도 2012년 리보금리(LIBOR, 런던은행간금리) 조작 등 내부통제관리 실패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내부통제 관리책임이 있는 고위 경영진이 누구인지(Senior Management Function) 이들에게 배분돼야 할 책무는 무엇인지 규정하고 (Prescribed Overall Responsibilities) 각 고위경영진이 책임지는 영역을 세부적으로 기술한 ‘책무기술서(Statement of Responsibilities)’와 책무배분이 그려진 ‘책무체계도(Responsibilities Maps)’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 혁신방안 국회세미나(2024년3월) 자료에 의하면 2017년~2023년 7월까지 113명의 은행 임직원이 ‘횡령’한 규모만 1509억원이며 회수율은 7.6%에 불과하다. 2022년~2024년 100억원 이상 금융사고만 해도 BNK은행 3000억원 우리은행 800억원 KB국민은행 127억원 NH농협은행 109억원 등 적지 않은 규모로 심심치 않게 지속되고 있다. 그 외에도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 금융사고는 금액도 문제지만 사고 건수가 훨씬 많고 끊이지 않는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2020년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권 전체에 불신이 커지면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응조치를 반복적으로 강화해왔다. 불완전판매 대응 관련 2019년 고위험 금융상품투자자 보호를 강화했고 2020년에는 파생결합증권시장 건전화 방안도 도입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을 2021년 제정 시행했으며 연장선상에서 2023년 책무구조도 도입 등을 내용으로 금융사 지배구조법을 개정해 올해 7월부터 시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금융사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발생할 지 노심초사다. 특히 이번 책무구조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금융사고 발생시 임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관점이 바뀐 것이다. 그동안 사고 발생시 위법을 저지른 직원은 ‘행위자’이고 임원은 ‘관리×감독자’로 정의되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 새로 시행되는 ‘책무구조도’는 ‘책무가 있는 임원’이 금융사고 발생을 초래한 위법행위의 ‘관리×감독자’가 아니라 ‘고유의 자기책임’ 부담을 지는 ‘포지션’ 변화가 생겼다. 해당 임원은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법’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꼼꼼히 직접 챙기고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책무담당 임원은 ‘책무구조도’에 관심이 높다. 처벌을 목적으로 도입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제재 감경 요건인 ‘상당한 주의’ 노력에 대한 판단기준 등 업무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보완돼야 할 부분도 많다. 대표이사 책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임원의 자격 적정성을 따지는 것이다. 근무경력 등 명문화된 자격요건은 쉽게 맞출 수 있지만 품성 등 정성적인 부문은 객관화가 어렵다. 임원은 당장 부담이 커서 바뀌는 제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실행하는 직원들은 또다른 부하 괴롭히기 ‘갑질’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처지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커 조직내 체화에도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우리은행 금융사고에 대해 “직무규정에서 정한 범위내에서 본점에 엄정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또 “책무구조도가 면피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임원 CEO가 부담을 가지게 실질적 운영 책임을 지우겠다”고 했다. 책무구조도는 일종의 보상시스템이다. 다만 처벌 목적의 네거티브(Negative) 보상시스템이다. 보상시스템은 ‘당근과 채찍(Carrots & Sticks)’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효과적이다. 특히 채찍의 크기는 아주 신중히 정해야 한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벌주는 조직에 익숙한 사람들은 당근보다 채찍을 선호한다. 우선 채찍은 당근 보다 비용이 덜 든다. 이미 주고 있던 당근을 뺏거나 추가로 벌을 더 주면 되기 때문에 ‘채찍’ 운영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 아울러 ‘손실회피’ 성향이 있는 인간본성을 이용하므로 단기적 효과가 클 수 있다.
반면 회사 조직운용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 책무구조도에 명확히 정의된 자기 일 외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니즈가 줄어든다. 어느 조직이든 그레이 존(Gray Zone)은 있다. 당근보다 채찍이 강한 조직일수록 그레이 존이 넓어진다. 징계 변상 배상이 빈발하면 임원 기피현상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혹자는 그래도 임원 하려는 사람은 넘친다고 말할 것이다. 연봉이 더 오르고 임원 배상보험이 활성화되는 덤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매번 결심한다. 일이 터지면 뼈를 깎는 후회와 반성을 하지만 다음에도 똑같은 일은 자주 반복된다. 개인 뿐만 아니라 회사나 국가도 안타까운 선택과 비참한 결과를 반복 경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패의 원인이 개인의 의지나 조직의 준비부족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이성적이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규범을 만들고 따르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하는 법률적 강제는 ‘채찍’이다.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끌어주는 윤리적 경제적 유인은 ‘당근’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지나쳐서 공동체 존속에 장애가 되면 ‘채찍’으로 억제하고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차원에 미치지 못하면 ‘당근’을 써서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행동이 잘 발현되도록 보상시스템을 조화롭게 구조화(structuring)해야 제도가 성공한다. 성과는 없지만 좋은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에게도 보상을 해야 하는지, 나쁜 의사결정이지만 결과만 좋다면 보상을 해야 하는 지 등 보상시스템 운영철학이 정립돼야 한다.
사람들은 자유와 이익을 좋아한다. 하지만 강제와 손실을 더 싫어한다. 회사 성장과 사회적 가치증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동체 가치규범이 개인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자발적 ‘조직문화’로 승화되는 것은 ‘채찍’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복현 원장이 주문하는 ‘조직문화’는 ‘당근과 채찍’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문화로 정착되는 과정에 지난한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티벳 속담에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 없고 해결이 안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라는 말이 있다. 금융사 책무구조도는 걱정해도 소용없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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