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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의 ‘곤’(困)

Numbers_ 2024. 7. 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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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의 ‘곤’(困)

고전 ‘주역’의 64괘 중 47번째는 ‘택수 곤(困)’입니다. 곤은 문자 그대로 곤궁하다는 뜻입니다. 연못의 물이 다 빠져나가 고갈된 상황을 가리킵니다. 택수 곤 괘 바로 앞이 ‘지풍 승(升)’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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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주역’의 64괘 중 47번째는 ‘택수 곤(困)’입니다. 곤은 문자 그대로 곤궁하다는 뜻입니다. 연못의 물이 다 빠져나가 고갈된 상황을 가리킵니다. 택수 곤 괘 바로 앞이 ‘지풍 승(升)’ 괘인데 주역에서는 끊임없이 올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곤궁한 상황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공자 등 옛 성현들은 곤괘에 대해 이렇게 해석합니다. “인생에 큰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어려움이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를 모르고 더 많이 얻으려 하고,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음으로써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의지할 집으로 돌아 가지만 아내는 이미 떠나 버리고 집은 텅 비어 있다. 흉하다.”

이런 곤괘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깊은 반성이 우선 필요합니다. 또 군자는 침묵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자기의 곤란함을 말로 떠벌리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군자는 자기의 생명을 내던져서라도 위기 극복에 나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군자는 더 성장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역의 곤괘가 가르쳐주는 지혜입니다.

요즘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이 처한 상황을 보면서 주역의 곤괘를 떠올립니다. 현재의 위기에서 탈출할 방안과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곤괘에서 배웁니다.

지금 SK와 최태원 회장의 위기는 그야말로 복합적이고 총체적입니다. 

우선 최 회장 개인적으로는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 소송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항소심 재판부 판결대로 상고심에서 최종 확정되면 그룹의 지배구조가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최태원 회장 말대로 최악의 경우 적대적 합병 시도 같은 상황이 닥쳐도 막을 역량은 있겠지만 최 회장 개인의 지배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에서는 ‘베스트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재산분할을 해 주려면 29%의 SK실트론 지분 전액 매각은 물론 지주사인 SK㈜ 지분17% 중 일부도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비상장에다 여러 문제가 걸려 있는 실트론 지분은 매각 자체가 간단치 않습니다. 

최 회장의 SK㈜ 주식담보 대출을 기존 5000억원 수준에서 1조원 정도로 늘려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 이상은 이자 부담이 커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 경우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은 한 자릿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외적으로 오너로서 그룹을 지배할 명분이 약화됩니다. 게다가 SK그룹은 LG처럼 최씨 가문 전체의 지분이 많거나 지배력이 강하지도 않습니다. 정치 사회적 변수까지 작용하면 최 회장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SK가 항소심 판결 이후 그룹 차원에서 최 회장의 이혼 소송에 대응하는 것에 비판이 많지만 최태원 회장의 이혼은 이제 더 이상 오너 개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룹의 사활이 달려 있고 최 회장의 진퇴가 걸린 문제입니다. 상황이 절박합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SK㈜ 모태인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계산 실수를 했고, 재판부도 이를 인정한 만큼 이제 어떻게 해서든 상고심에서 파기환송을 끌어내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SK의 위기는 오너의 이혼 소송만이 아닙니다. 그룹 전체를 구조조정 해야 할 만큼 계열사들의 상황이 어렵습니다. 물이 다 빠져나가 연못이 고갈된 것처럼 돈줄이 말랐습니다. 특히 그룹의 핵심 중 하나인 배터리 사업체 SK온이 문제입니다. 하루가 멀다고 구조조정 방안들이 쏟아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M&A 등으로 몸집을 크게 키웠습니다. 공정위 공시 대상 기업집단 기준으로 2018년 101개였던 계열사가 올해까지 219개로 늘었습니다. 삼성(63개)과 현대차(70개)에 비해서도 너무 많습니다. 

‘주역’의 가르침처럼 끊임없이 올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위기는 SK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0월 수펙스 CEO 세미나에서 ‘서든데스’(Sudden Death) 발언을 통해 위기를 공식화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그동안 그룹을 이끌었던 조대식 장동현 김준 박정호 등 4인의 최고 경영자를 물러나게 하고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앉혔습니다. 

최 회장의 ‘복심’으로 알려진 최창원 의장은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계열사들’을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줄이고, 내실 위주의 질적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계열사를 흡수합병하고 중복사업에 대해서는 통폐합을 추진하며, 계열사 매각 및 투자 지분 정리에도 나섭니다. 당연히 계열사 CEO 교체도 단행합니다.

이른바 ‘리밸런싱’ 방안으로 최근 보도된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SK온과 SK엔무브 합병, SK온과 SK E&S 합병, 베트남 마산그룹과 빈그룹 지분 매각, SK아이이테크놀로지 매각 검토, SK렌터카 지분 매각 등이 모두 이런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주역’ 곤(困)괘에는 ‘유언(有言), 불신(不信)’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군자는 곤란한 상황에 몰렸을 때 말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곤란을 극복한다. 자기의 곤란을 말로 떠벌리는 사람은 믿음이 없고 신통력도 없다. 사람들이 믿어주지도 않는다. 환란의 시기에 떠들어대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이처럼 말없이 조용히 전격적으로 추진돼야 합니다. 그런데 SK의 리밸런싱은 너무 시끄럽습니다. 설익은 방안들이 쏟아집니다. 

단적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의 경우 실현되더라도 실익이 없습니다. SK가 이노베이션과 E&S 합병을 검토하는 것은 위기에 처한 SK온 배터리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글로벌 사모펀드 KKR로부터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으로 조달한 3조원이 걸림돌입니다. 

이노베이션과 E&S를 합병하면 배당 등을 합쳐 3조4000억원 정도를 KKR에 현금으로 갚아야 합니다. 아니면 SK E&S의 핵심인 도시가스 사업을 내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두 회사를 합병해도 SK온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근본적으로 이노베이션과 E&S가 합병해 수천억원의 E&S 배당금이 SK온으로 흘러 들어가도 조 단위로 투자가 필요한 현실을 감안하면 SK온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회의적입니다.

그동안 SK E&S가 지주사 SK㈜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한 푼이 아쉬운 최태원 회장의 돈 줄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노베이션과 E&S의 합병은 최 회장에게도 부담입니다.

SK의 리밸런싱 작업이 내실 있게 추진되지 않고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은 칼자루를 쥔 최창원 의장의 옛 SK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1차 정리 대상인 CEO들은 물론 구성원 전체가 동요하는 분위기입니다.

‘카르마’라는 불교 용어가 있습니다. 업(業)이라는 뜻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세상사 모두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이 겪는 곤궁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보이고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직시하고 두려움에 맞서며 최대한 오래 버티고 견딘다면 ‘주역’에서 말하듯이 ‘더 성장하고 하느님까지 만나는’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SK그룹은 지난 주말 그룹 수뇌부가 총집결해 경영전략회의를 열어 2026년까지 80조원을 마련해 인공지능(AI)과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22조원의 세전이익을 내고 3년 내 30조원의 잉여현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계획들이 차질없이 진행돼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의 연못이 가득 차기를 기원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