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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차남 조현문, 상속재산 전액 '사회환원' 밝힌 속내는?

Numbers_ 2024. 7.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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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차남 조현문, 상속재산 전액 '사회환원' 밝힌 속내는?

'형제의 난'을 촉발하고 가족과 의절한 효성그룹 차남 조현문 동륭실업 이사가 최근 부친에게 물려받을 상속재산을 전액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공익재단 설립에 출연해 국가와 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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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차남인 조현문 동륭실업 이사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지원 기자


'형제의 난'을 촉발하고 가족과 의절한 효성그룹 차남 조현문 동륭실업 이사가 최근 부친에게 물려받을 상속재산을 전액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공익재단 설립에 출연해 국가와 사회의 쓰임을 받게 하는 선례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조 이사 측은 세금면제 목적에서 상속재산을 공익재단으로 승계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의견에 대해 "안타까운 오해"라고 해명했다.

 

상속재산 1000억…"제 것이 아니다" 

 

조 이사는 "공익법인 설립의 재원은 상속재산"이라며 "상속재산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환원하기로 선언한 이상 더는 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 이사 몫의 상속재산은 △효성티앤씨 지분 3.37% △효성중공업 지분 1.50% △효성화학 지분 1.26% 등으로 추산된다. 이를 최근 4개월 평균 평가액으로 환산하면 885억원 규모다. 주식 외의 비상장사 지분, 현금,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하면 상속재산 규모는 1000억원을 웃돌게 된다.

다만 조 이사는 "상속재산을 공익재단에 출연하면 상속세가 감면되는 제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상속 규모를 1000억원으로 가정하면 조 이사가 내야 할 상속세는 400억∼500억원이 된다. 만약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을 비롯한 공동상속인들이 재단 설립에 동의한다면 조 이사는 상속세가 면제돼 상속액 1000억원을 고스란히 공익재단에 출연할 수 있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피상속인이 자선·학술 관련 사업 등 공익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업을 하는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에는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다.

공동상속인들이 조 이사의 공익재단 설립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조 이사는 500억원의 상속세를 전부 납부하고 나머지 500억원만 재단 설립에 사용할 수 있다. 형제들의 동의가 없다면 상속세를 전부 내야 하므로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기금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김재호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일부에서는 마치 조 이사가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공익재단 설립이라는 꼼수를 부리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상속세를 감면받으려 하는 것은 공익재단에 출연할 기금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일 뿐 조현문 씨의 개인적인 이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조현문 동륭실업 이사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셔 열린 기자 간담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최지원 기자


더욱이 우리나라는 공익재단이 재벌가의 상속세와 증여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돼 있다. 공익재단이 본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는 언제든 이를 국고로 귀속시킬 수도 있다. 김 변호사는 "전액 사회환원을 발표한 이상 조 이사 개인이 가져가는 상속재산은 아예 없다"며 "공익재단을 설립할 때 가족의 동의가 있다면 상속세를 감면해주겠다는 법적 이점을 노린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상속세 선납' 조건 풍문…부친 의도는 오리무중

 

조 이사로서는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법률신문에 따르면 조석래 명예회장은 유언장에서 조 이사의 '상속세 선납'을 상속조건으로 내걸었다. 일반적 절차를 따른다면 조 이사가 상속을 받는 동시에 상속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재단을 설립하면 된다. 하지만 상속세를 먼저 납부하지 않으면 조 이사는 상속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조 명예회장이 내건 상속세 선납 조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상속받을 재산이 있고 난 뒤 이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는 게 본래 절차"라며 "상속세를 우선 완납해야 상속재산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굉장히 특이하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재벌가라고 해도 개인이 수백~수천억원의 상속세를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재벌가 상속인들은 상속세를 5년 동안 나눠 내는 연부연납 방식을 활용한다. 연부연납을 택하면 상속인들은 신고 시점에 상속세의 6분의1을 납부하고, 이후 5년간 세액을 분할납부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비롯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유족은 지난 2021년 4월부터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7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보유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이어가고 있다.

조 이사가 가진 효성그룹 관련 지분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는 오로지 현금으로 1000억원 규모의 세금을 미리 납부한 뒤 상속재산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조현문 동륭실업 이사가 지난 3월 부친 고(故)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변호사는 "자세한 내막은 들여다봐야겠지만 조 명예회장이 내건 상속조건은 조 이사가 상속을 포기하거나 주식을 물려받으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부담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공익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부친이 특이한 상속조건을 걸어놓은 이상 (공익재단 설립은) 여기서 그나마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도덕한 재벌가 vs 사회환원을 발표한 의절한 차남'의 프레임을 짜면 실리와 도덕적 명분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조 명예회장의 유언장에는 조 이사가 이 같은 조건을 위반할 경우에 대비한 내용도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상속세 등에 가산세가 부과된다면 조 이사에게 가산세를 전액 부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 이사 측 변호인은 "유언장의 입수, 형식, 내용 등 여러 측면에서 불분명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조 이사는 2014년 7월 효성그룹 일가의 장남이자 형인 조 회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조 명예회장이 올해 3월29일 별세한 만큼 조 회장을 비롯한 상속인들의 상속세 신고는 6개월 후인 9월30일까지 마무리 지어야 한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