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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유상증자 이중 플레이 의심
고가 자사주 매입 저가 유상증자, 이상한 자본관리
이사 충실의무 주주이익 포함등 상법개정 서둘러야
MBK·영풍과 최윤범·베인케피탈의 고려아연 경영권 전쟁이 10월30일 고려아연 유상증자 발표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는 장악했지만 낮은 지분율이 경영의 걸림돌이었다. MBK와 지분경쟁에서 자사주 매입자금으로 차입한 2조7000억원의 자금부담도 결국 지분율이 낮아 덤으로 추가된 고민거리다.
지분증대가 절박한 상황임에도 공개매수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고려아연의 전략을 시장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밀어붙일 때만해도 MBK의 지분확보를 최소화하고 베인캐피탈 등 우호지분을 늘리려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전략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준비된 계획이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자사주 공개매수가 한창이던 10월14일부터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유상증자 실사를 진행한 것으로 금융당국은 의심한다. 고려아연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사주 공개매수에 이어 유상증자를 동시에 추진해 적대주주의 지분희석과 우호지분 확대를 노렸다는 것이다.
법과 절차를 준수하며 자사주를 매수해 소각하고 다시 유상증자로 자본을 확충하는 민간회사의 경영판단을 나무랄 수는 없다. 자사주 공매매수 공시에 유상증자 계획을 미리 밝힐 필요는 없다. 투자판단에 혼란이 없도록 적절한 정보제공이 됐다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향후 지배구조나 재무적 변동 등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있다’는 공시로 혼선을 주었다.
그동안 MBK의 선제공격으로 불리한 여건에서도 고려아연이 나름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여론전’에서 상대적으로 우세했던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오로지 돈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사모펀드가 국가 기간산업인 비철금속 글로벌 1위 우량기업을 헐값으로 탈취해 중국 등 외국자본에 넘기려 한다는 정서적 ‘방어 프레임’이 작동했다. 정치권과 지역사회 등을 동원해 여론전을 펼친 고려아연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파됐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며 내세운 이유가 주주가치를 높이고 회사를 기업사냥꾼으로부터 지킨다는 것이었다. 10월28일 자사주 공개매수 완료 후 시장은 법적 공방과 주총 세대결 등으로 경영권 다툼의 장기화를 예상했다. 하지만 지분율 열세 극복과 단기차입금 상환전략으로 고려아연이 선택한 ‘묘수’는 주주가치를 희석시키는 대규모 유상증자였다. 10월30일 고려아연 이사회는 ‘의결권 있는 주식’(1866만3253주)의 20%(373만2750주)를 늘리는 신주발행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지분경쟁으로 급등한 구주를 89만원에 매입해 소각하고 시가보다 30% 낮은 67만원(예정공모가격)에 신주를 발행한다는 것이다. 상당한 자본 낭비로 판단된다. 회사입장에서 주가가 높을 때 비싸게 주식을 팔고 주가가 낮을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자기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상식인데 고려아연은 반대로 행동했다. 향후 일반공모 청약일(12월3일)을 기준으로 산출될 확정공모가격은 예정공모가격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대금 2조5000억원의 92%를 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시설자금 1350억원, 타법인 출자 658억원 등을 제외하면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한 자사주 공개매수 관련 차입금 상환에 증자대금 대부분이 쓰일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앞둔 10월2일 기업어음 4000억원, 사모사채 1조원, 금융기관차입(한도대출) 1조3000억원 등 총 2조7000억원의 단기자금을 조달했었다.
고려아연이 차입금 부담 완화와 지분율 열세를 보완할 ‘신의 한수’로 선택한 유상증자가 ’묘수’ 아닌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적대적 M&A로 내몰린 곤궁한 처지를 감안해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 과정은 시장의 용인가능 범주를 넘어선 것 같다. 대주주간 감정 섞인 재산 다툼에 시장과 소액주주들이 놀아난 모양새다. 넉넉한 자문료로 유능한 법률전문가를 동원해 치명적인 법 위반은 저지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규제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그동안 사모펀드와 대주주 다툼에 중립을 지켜온 금융당국이 10월31일 개입을 선언했다. 금감원 담당부원장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관련 공시내용(10월11일)을 들춰내 공시 위반 가능성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이 신고한 유상증자 실사기간이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과 겹치는 점도 문제라는 시각이다. 진행중인 공개매수를 주간하는 증권사의 같은 팀에게 유상증자 실사를 맡기고 공개매수 완료보고 직후 곧바로 증자계획을 발표했다. 만일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유상증자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면 투자자를 기망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위법한지는 확인이 더 필요해 보인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결정과정은 올 해 밸류업 열풍을 촉발시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논란중인 상법의 ‘이사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 3) 조항에 ‘회사의 이익’ 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도 포함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회사이익이 주주이익과 일치한다는 가정으로 법령과 정관에 따라 ‘이사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는 논리는 매우 허구적이다. 모든 주주가 아닌 소수 대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이사회가 전락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이 다수 소액주주의 분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또 고려아연은 자본시장법(제166조의 7)에서 정한 우리사주 배정물량 20%를 제외한 80% 일반공모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1인 청약한도를 3% 이내로 제한했다. 유통 주식수를 늘려 상장폐지 위험을 줄이고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회사의 주식을 분산해 ‘국민주’로 만든다는 논리보다 적대 주주의 지분확대 위험을 원천봉쇄하는 방비책이라는 주장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유상증자로 최윤범 회장의 우호지분은 증대되고 적대주주의 지분율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MBK·영풍은 자사주 소각 후 지분율이 42.67%에서 유상증자 후에는 36.06%로 6.61%포인트 하락한다. 물론 최윤범 회장측 역시 39.45%에서 33.37%로 6.07%포인트 떨어진다. 하지만 신주 20% 우선배정으로 지분율 3.33%을 확보한 우리사주조합의 지원을 받으면 고려아연 우호지분(36.7%)이 MBK 영풍을 소폭 앞서게 된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주주가치보다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는데 시장과 주주를 이용했다는 지탄을 받으며 역풍을 맞고 있다. 금융당국이 공시위반 등을 들어 유상증자 일정을 지연시키면 12월18일 신규 상장일정을 맞추지 못한다. 올해 말까지 우호지분 확대에 실패하면 내년 주총에서 최윤범 회장은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결국 고려아연 지배구조 향배는 금융당국이 키를 쥐게 됐다. 민간기업의 경영에 매번 금융당국이 해결사로 나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의 혼란이 최소화되도록 법령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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