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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신고서 불성실 기재, 정정요구 빌미
고려아연 ‘승자의 저주’ 이미 시작된 듯
고객보호 시장질서유지 증권사 역할 중요
금감원의 개입으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11월6일 금감원은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의 정정(자본시장법 제122조)을 고려아연에 요구했다. 증권신고서 기재내용이 미흡해 시장과 투자자의 합리적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민간회사의 유상증자 타당성을 판단할 권한과 의무는 없다. 다만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거래질서 유지를 위해 회사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모든 정보가 반영돼 충실히 잘 기재됐는지 판단할 뿐이다. 유상증자 발행회사와 주관 증권사는 증권신고서 기재내용의 적정성과 투자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해 알려야 한다.
금감원의 요구사항은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유상증자를 추진한 경위와 의사결정 과정을 명확히 기재하라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증자배경으로 차입금 상환을 공시했지만 금융당국과 시장은 적대주주의 지분 희석을 더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 것 같다. 두번째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1인 청약한도를 3%로 제한하고 공모방식도 주주배정이 아닌 일반공모로 진행한 이유도 소명하라는 것이다. 다수의 소액주주로 분산시켜 ‘국민기업’을 만든다는 명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자사주 공개매수신고서와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의 공시내용이 서로 상충되는 이유를 밝히라는 것이다. 공개매수신고서에 상장폐지 위험이 없다고 공시했지만 유상증자 신고서에는 상장폐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또 재무구조 변동을 일으키는 장래계획이 없다고 공개매수신고서에서 밝혔지만 곧이어 유상증자를 발표해 투자자와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공개매수와 유상증자의 병행 사실을 증권사가 미리 인지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전에 알고도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거나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실사를 담당한 주관사도 불법공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하면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지배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승자의 저주’로 일컬어지는 기업가치 훼손이 이미 진행중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사주 고가 매입으로 늘어난 차입금 상환을 위해 보유자산을 헐값으로 매각했다는 지적이다. 11월7일 고려아연은 주식 맞교환으로 보유중이던 ㈜한화 지분 7.25%를 한화에너지로 넘겼다. 지분 매각대금 1519억원은 2년전 자사주 맞교환 당시(2022년11월28일) 시장가치 1539억원보다 적다.
미국대선 후 바뀐 글로벌경제 환경과 국내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경영여건이 녹녹치 않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고려아연도 경제위기 극복과 미래 먹거리 창출 등 산적한 경영난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 회사 내부자원이 총동원돼 기업의 본질가치 증진을 위한 경영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승자의 저주가 재무적 숫자로 나타나 확인되는 시점은 이미 때늦을 수 있다.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로 고려아연 뿐 아니라 주관 증권사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금감원은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모집주선을 대행한 주관 증권사의 직무수행 적정성을 현장검사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들여다보는 중이다. 금감원은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동시에 주관하며 기업실사를 진행한 미래에셋증권이 발행사의 위법성을 인지하고도 시정하거나 고객에게 알리지 않아 투자자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제125조, 시행령 제135조)은 증권신고서의 거짓 기재 등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신고인(발행자) 뿐 아니라 주관사와 투자설명서 교부자 모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증권사가 ‘상당한 주의의무’ 이행을 증명하지 못하면 투자설명서 교부 등 주관사로서 손해배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각이다.
금감원이 증권사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논란속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증권사가 금융당국을 대리해 공정한 시장관리자로서 역할을 잘 했는지 따지기 위해서다. 시장경제에서 수익극대화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지만 금융회사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 법적·사회적 책임이 무겁다. 고객사가 유가증권을 발행하거나 다시 거둬들이는 일을 도와주며 수수료 장사를 하는 증권사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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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에서 증권 발행자 뿐 아니라 투자자도 증권사의 고객이다. 증권의 중개업무는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동시에 상대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양면시장(Two Side Market) 특성을 가진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정보가 제공되면 플랫폼의 신뢰와 시장의 거래질서가 무너진다. 증권사는 일을 맡긴 발행사의 목적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증권사를 믿고 거래하는 또다른 고객의 이익도 충실히 보호할 책임이 있다.
금융투자회사 표준내부통제기준(제50조)은 모든 고객의 이익은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고객간 이해상충(제52조)이 우려되는 경우 증권사 임직원은 준법감시인 등 담당부서와 협의해 고객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일 이해상충 해소가 곤란할 경우는 고객에게 통지하고 필요시 업무수행 포기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고려아연이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주주가치 훼손이 예상되는 유상증자 추진계획을 증권사가 미리 인지했다면 공개매수 신고서에 반영해 시장과 투자고객에게 알려야 한다. 고려아연이 처음부터 이해상충 행위를 철저히 숨겨 증권사가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도 모든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유상증자 실사과정에서 위법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증권사의 과실과 무능력이 비난 대상이 될 것이다.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를 받은 11월6일을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정정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은 자동으로 철회된다. 금융기관이 고객을 진정으로 돕는 일은 당초 고객이 원하는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숨어있는 위험요인을 미리 발견해 조언하고 시정하는 것이 고객이익을 궁극적으로 지키는 길이다.
증권사의 중요한 거래고객인 고려아연이 정보공유를 꺼리고 위험요인 지적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증권사는 자본시장의 건전한 거래관행 정착을 위해 발행자를 설득하고 올바른 정보제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다. 특히 2025년 본격 시행을 앞둔 내부통제 제도의 개선과 운용강화 등 규제환경 변화에 맞춰 금융회사 스스로 일하는 관행과 문화를 전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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