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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談 회장과 명예회장 遺旨가 분쟁 해법
눈귀 가리는 사람들 떠나 가문과 화해해야
인생은 늘 역설입니다. 은혜가 해(害)를 낳습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사업이 실패하는 것도 가장 친한 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도 다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연인‧부부‧가족 간에 관계가 틀어졌을 때 벌어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면 압니다.
76년의 세월 동안 ‘아름다운 승계의 전통’과 ‘인화’(人和)를 자랑했던 LG그룹이 2년째 상속 분쟁 중입니다. 2018년 5월 화담(和談) 구본무 회장이 갑자기 타계한 이후 5년여 만에, 2019년 12월 구자경 명예회장이 작고한 지 4년여 만인 2023년 2월 화담 회장의 미망인인 김영식 여사와 LG복지재단 구연경 대표 등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효력 회복’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소송은 아직 1심조차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빠르면 내년 상반기 선고가 예상된다지만 하반기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고인 김영식 여사 측이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들어 비공개로 변론준비기일만 3차례 열렸고, 내달 한 차례 더 예정돼 있습니다.
그 사이 이번 소송을 제기한 김영식 여사 등 ‘한남동 측’과 구인회 창업 회장의 4남인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녀인 구훤미 여사 등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는 더 악화됩니다. 지난 5월 화담 회장의 6주기 제사를 따로 지내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김 여사 등이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통해 그룹과 집안을 망신시킨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야심차게 사업을 벌이든 창조적 예술 활동을 하든 고위 관직에 있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무관하게 인생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매혹적이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그렇고 그렇습니다. 근심과 고통은 모든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동반자입니다.
1952년생인 LG 가문의 큰 며느리 김영식 여사는 대학도 졸업하기 전인 20살의 나이에 화담 회장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과 두 딸을 낳았습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민화 작가로서 이름을 얻어 국산 와인 라벨에 본인 작품을 넣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김영식 여사의 일생은 매혹적이지 않았을뿐더러 많은 고통이 따랐습니다. 1975년생인 장남을 스무 살도 되기 전인 1994년에 잃었습니다. 장자 승계의 전통을 지키는 LG가 입장에서는 그룹을 끌어갈 후계자를 잃은 것입니다. 어떤 위로도 어떤 강인함도 자식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순 없습니다.
김영식 여사는 장남을 잃고 2년 뒤 44살의 나이에 둘째 딸을 얻지만 그룹을 끌어갈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004년 화담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 회장의 아들 구광모가 26살의 나이에 구본무 회장과 김영식 여사의 양자로 입적되고 화담 회장 타계 후 회장 자리에 오른 데는 이 같은 슬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2018년 화담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도 김영식 여사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남편인 화담 회장도 시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장자이자 그룹의 후계자를 잃은 김 여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여사가 구광모 회장(15.95%) 구본식 회장(4.48%)에 이어 LG그룹의 지주회사 ㈜LG 지분을 4.2%나 갖게 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경영권과 관련된 재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아들 중심으로 상속하던 전통을 깨고 화담 회장과 명예 회장은 김영식 여사에게만 예외적으로 많은 지분을 물려줬습니다. 현재 주가로 계산하면 5000억원에 이르는 거액입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김영식 여사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화담 회장을 일찍 떠나보내고 4년이 훨씬 지나 2023년 2월 시작한 상속재산 효력 회복 소송이 많은 관계들을 흐트러뜨렸습니다. 실리도 없을뿐더러 재판에서 이길 승산도 없습니다.
김 여사와 두 딸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벌이는 소송은 김 여사가 직접 서명했던 ‘합의문’을 뒤집는 것은 물론 화담 회장의 유지를 어기는 것입니다.
알려진 대로 화담 회장은 타계하기 1년 전 그룹재무팀장을 불러 자신의 유고시 양자이자 장자인 구광모 당시 상무에게 ‘경영 재산’인 ㈜LG지분 전부를 넘기라는 ‘유지(遺旨) 메모’를 남깁니다. 하지만 화담 타계 후 가족 간에 6개월간 밀고 당기기가 있었고 화담 회장의 유언 보다 김 여사 측에 유리하게 최종 합의에 이릅니다. 화담이 남긴 11.3%의 ㈜LG 지분 중 구광모 회장은 8.8%만 갖고 나머지 지분은 두 딸에게, 한남동 자택과 미술품 등은 김영식 여사가 갖는 것입니다. 이런 합의문에 김영식 여사가 ‘화담 회장님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 직접 서명까지 합니다.
한남동 측에서는 줄곧 “구광모 회장 측이 유언장이 있다며 자신들을 속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언장이 없더라”는 논리를 펴고, 여기에 세 모녀가 억울하게 당한다는 젠더 편향적 동정 여론도 일부 있지만 승소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화담 회장의 ‘유지 메모’에다 6개월여에 걸친 양측의 협상과 합의, 김영식 여사의 자필 서명에 법적으로 인정받는 3년의 ‘제척기간’까지 지났기 때문입니다.
2년여에 걸친 김영식 여사의 싸움은 단지 구광모 회장만이 아니라 장자 장속 원칙과 인화를 최우선하는 LG 가문을 상대로 한 소송이 되면서 김 여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가문의 어른들이 한남동에 가지 않고 화담 회장의 제사를 따로 지낼 만큼 김 여사가 가문에서 고립되고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고인이 된 화담 회장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입장에서 보면 이번 상속 분쟁의 본질과 해법은 쉽게 나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고 집안의 큰 며느리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라는 뜻도 포함해 대단히 예외적으로 큰 지분을 줬는데 김영식 여사는 분란의 중심에 서고 말았습니다. 지금 김 여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인화의 LG가 사람들이 아니라 눈과 귀를 가리고 시간을 끌수록 많은 보수를 받는 로펌과 홍보 대행사 사람들뿐입니다.
재계에서는 이번 상속 분쟁의 배후로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의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를 꼽습니다. 김영식 여사나 구연경 대표 모두 상속 분쟁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고 대외적으로 경제활동을 한 경험이 거의 없는 데 반해 윤관 대표는 자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번 분쟁 과정에서 공개된 가족 간 대화 녹취록에 그가 등장해 분쟁을 부추긴 배후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윤관 대표가 이번 상속 분쟁에서 주목받을수록 그의 여러 일탈 행위가 더 드러납니다. 서류를 위조해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하고 병역을 면탈했다는 의혹부터 불법적인 미국 시민권 취득에 대한 의구심 등 한둘이 아닙니다.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123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텨 국세청과 1년 넘게 소송전을 벌입니다. 최근에는 윤 대표 본인은 물론 아내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까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매수, 금융당국으로부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통보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생활과 관련한 여러 의혹도 쏟아집니다. 윤관 대표의 일탈이 많이 드러날수록 상속 분쟁에서 김 여사 측은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고 더 고립될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미술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균형이 완벽하게 잘 잡힌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너무 자족하거나 너무 불안정하거나 너무 신뢰하거나 너무 의심한다. 그런데 예술은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의 적당한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 또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전문 미술가로서 손색이 없는 LG 가문의 큰 며느리 김영식 여사가 지금의 힘든 시간을 본인의 특기이기도 한 예술을 통해 잘 견뎌내길 바랍니다. 구광모 회장은 물론 특히 LG 가문의 집안 어른들을 의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의심이 된다면 화담 회장과 명예회장이 남긴 유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하루빨리 스스로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윤관 대표와 법무법인 홍보대행사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곳은 김영식 여사가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그들과 결별하고 집안 어른들과 화해하고 소송도 취하하길 바랍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선고가 끝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싶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LG그룹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아무나 경영하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그릇이 돼야 하고 오랜 기간 경영수업도 필요합니다. 특히 평판이 중요합니다. LG 구성원들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김영식 여사의 사위도, 두 딸도 LG를 끌어갈 경영자는 못 됩니다. 그런데도 더 많은 ‘경영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과욕일뿐더러 그룹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일이 막히고 세력이 줄어든 사람은 마땅히 그 첫 마음을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김영식 여사도 그랬으면 합니다. 나이가 60살이 넘고 70살이 넘으면 어렵지만 인생의 가을과 인생의 내리막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화담 회장이 타계 1년 전인 2017년 4월 큰 수술을 앞두고 유지 메모를 남겼던 그때처럼 말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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