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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삼성 인사로 본 이재용의 생각

Numbers_ 2024. 12. 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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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삼성 인사로 본 이재용의 생각

직원들·시장여론은 냉담…“신상필벌 없었다”“인사는 현실, 제약조건 속 최선의 선택” 評경영진단실 신설 ‘컨트롤타워 준비’ 잘한 일‘포스트 정현호’ 박학규 최윤호 김용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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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시장여론은 냉담…“신상필벌 없었다”
“인사는 현실, 제약조건 속 최선의 선택” 評
경영진단실 신설 ‘컨트롤타워 준비’ 잘한 일
‘포스트 정현호’ 박학규 최윤호 김용관 ‘주목’

 


지금은 해체됐지만 미국의 유명 컴퓨터 제조·판매회사 HP 창업자 데이비드 패커드의 이름에서 따온 ‘패커드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기업도 성장을 실현하고 위대한 회사로 만들어 갈 적임자를 충분히 확보하는 능력 이상으로 계속 수익을 빠르게 늘려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재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전적 명언입니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계적으로 봐도 인재의 10%가 회사 전체 성과의 90% 이상을 올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수 인재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를 통해 조직 전체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의 차이는 개별 구성원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개개인을 잘 어울리게 해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기업의 성공 방정식은 우수 인재를 확보해 이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자리에 배치할 때 완성됩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萬事)이고, 기업경영의 시작이요 끝이 되는 것입니다. 

삼성 내부는 물론 재계와 금융·자본시장에서도 주목받았던 삼성그룹 임원인사가 발표됐습니다. 재계와 금융계, 시장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은 삼성과 삼성전자의 지금 상황이 그만큼 위중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에 이어 이재용 회장까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항소심 결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위기를 공식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위기 극복을 위한 파격이나 쇄신은 없었다는 게 시장과 삼성 직원들의 평가입니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게시판 등을 통해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실망과 불만의 핵심은 “신상필벌이 없다. 돌려막기 인사다. 인사를 보고 삼성이 진짜 위기임을 확인했다.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등입니다.

자본시장의 반응도 삼성전자 주가 움직임 등을 보면 비슷합니다.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가 위기에 대한 해법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0조원 자사주 매입 발표가 “오너 일가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받은 주식담보 대출이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 위기에 처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측이 내놓은 대책”쯤으로 오해를 사면서 당초 기대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 이어 부회장·사장단 인사까지 시장에 실망만 안긴 것으로 보입니다. 

인사권자인 이재용 회장으로서는 곤혹스럽겠지만 시장과 직원들의 반응이 부정적인 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이 처한 상황이 위기라면 이번 위기를 초래한 고위직들에 대한 문책과 쇄신이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에 취임한 전영현 부회장은 차치하더라도 사업지원TF를 총괄하는 ‘2인자’ 정현호 부회장과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이 모두 유임됐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품질 논란에 휩싸였던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노태문 사장도 유임됐습니다. 문책은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사장과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물러나는 데 그쳤습니다. 선대 회장 시절의 추상같은 신상필벌 원칙은 사라졌습니다.

“올드보이 중심으로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역시 이유가 있습니다.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7년 만에 메모리사업부장을 다시 맡고, 경력의 대부분을 메모리사업부에서 보낸 한진만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파운드리사업을 맡겼습니다. 지난해 퇴임했던 이원진 사장은 1년 만에 마케팅과 브랜드, 온라인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로 복귀했습니다.

시장의 반응이 부정적이고 내부 직원들의 불만도 많지만 인사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없는 인재를 당장 어디서 데려올 수도 없고 적임자가 없다고 자리를 비워둘 수도 없습니다. ‘차선’이 아니라 ‘차차선’의 선택이라도 해야 하고 ‘최악’만 아니면 당분간 그냥 가야 할 때도 많습니다. 오죽하면 ‘인사는 60점만 받아도 성공’이라 하겠습니까. 

시장과 내부 직원들의 냉담한 평가를 별개로 하면 이번 삼성 인사는 제약조건 하에서 최선의 인사를 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고위 인사는 “바둑으로 치자면 삼성에는 현재 돌이 많지 않다. 이재용 회장이 많지 않은 바둑알을 갖고 최선의 수를 뒀다”고 지적했습니다.

삼성은 이번에 반도체 미래 전략을 담당하는 사장급 보직을 신설해 그 자리에 전략통이자 그룹 내 ‘차세대 리더’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김용관 사업지원TF 부사장을 승진 발령했습니다. AI반도체 시대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뺏긴 뼈아픈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매우 긍정적입니다.

분기마다 1조원 이상 적자를 내는 삼성전자의 ‘아픈 손가락’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많이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파운드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빅테크 등 큰손 확보가 중요한 만큼 기술 전문성은 물론 마케팅 역량을 겸비한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사업을 맡겼습니다. 이와 동시에 핵심 과제인 파운드리 수율 향상 등을 위해 CTO 직을 신설하고 공정 개발 전문가인 남석우 DS부문 제조·기술 담당 사장을 앉혔습니다. 두 사람이 철수 주장까지 나오는 파운드리 사업을 끌어가고 해법을 찾는 데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혼자가 아닌 두 사람한테 맡겨 다시 도전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결단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HBM과 파운드리 사업에서 해법과 탈출구를 찾기 위한 인사도 중요하지만 이번에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사업지원TF와 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내 경영진단실 관련 인사입니다. 많은 것을 함축합니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에서 사업지원TF 내 반도체 투자전략을 지원하는 자리로 옮긴 박학규 사장과, 삼성SDI 사장에서 신설된 삼성글로벌리서치 경영진단실 초대 실장으로 임명된 최윤호 사장은 ‘2인자’ 정현호 사업지원TF 부회장을 이을 후계 재목으로 꼽힙니다. 당연히 두 사람 모두 이재용 회장의 신임이 두텁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움직임 자체가 눈길을 끕니다. 

지금까지 정현호 부회장 밑에 부사장들로만 채워졌던 사업지원TF에 박학규 사장이 가세함로써 사업지원FT는 더 강해졌습니다. 한편에서는 정현호 부회장이 퇴진할 경우를 대비해 박 사장이 자리를 옮겼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안팎으로 퇴진 압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정현호 부회장입니다. 재계에서는 여러 유력 인사들이 이 회장에게 직접 정현호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 조언했다는 설도 파다합니다. 그럼에도 이재용 회장은 그를 다시 신임했습니다. 이는 정현호 부회장을 대체할 인물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내년 2월 3일로 예정된 항소심 판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재용 회장의 스타일상 사법 리스크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코 정 부회장을 물러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내년 2월 항소심에서 삼성의 바람대로 이 회장이 무죄판결을 받는다면 사업지원TF에는 큰 변화가 올 수 있고, 차기를 끌어갈 사람으로는 박학규 사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관측입니다.

물론 인사는 알 수 없습니다. 이건희 선대 회장 시절의 이학수 부회장처럼 ‘이재용 시대’에는 정현호 부회장이 오래오래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정현호 부회장을 다시 신임한 것에서 확인됐지만 이재용 회장은 인사에서만큼은 누구 말을 듣기보다 철저히 본인 생각대로 하는 스타일입니다.

이번에 글로벌리서치 내 신설된 경영진단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해 나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최윤호 사장이 초대 실장으로 임명돼 더 주목받습니다. 경영진단실 신설에 대해 삼성은 “과거 미래전략실 시절처럼 감사 기능은 하지 않고 관계사의 요청으로 경영과 조직, 업무 프로세스 등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하고 지원하는 전문 컨설팅 조직”이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삼성이 경영진단실을 신설한 것을 두고 ‘그룹 컨트롤 타워의 전면 부활’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성이 그동안 컨트롤 타워나 미전실 부활 얘기만 나오면 펄쩍 뛰었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 분명합니다. 경영진단실 신설에다 지난해 만든 미래사업기획단, 이번에 박학규 사장을 합류시켜 강화한 사업지원TF 등을 종합해 보면 마음만 먹으면 삼성은 언제든 그룹 컨트롤 타워를 부활시킬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항공모함’ 삼성에게 컨트롤 타워의 부활은 시급하고 필수적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삼성 내부적으로도 ‘HBM 사태’ 등을 겪으면서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계열사에만 맡겨두면 ‘미래보다는 단기성과’에 매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임기가 제한된 계열사 CEO 입장에서는 자신과 무관한 5~10년 뒤를 보고 투자하는 일보다 재임 중 단기성과를 극대화해 거액의 보상을 받는 게 훨씬 낫습니다. 

문제는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 등 외부의 부정적 여론입니다. 때문에 삼성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재판과 구속의 트라우마가 큰 이재용 회장 입장에서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 ‘주역’의 63번째 괘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이고 여우가 시내를 건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통 여우는 꼬리를 치켜세우고 개울을 건너는데 여기에 나오는 여우는 꼬리를 물에 적신 채 개울 건널 생각은 하지 않고 매우 신중하고 조심합니다. ‘주역’에서는 개울물을 건너는 여우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듯이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은 신중할수록 좋다는 교훈을 강조합니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인사를 보면서 주역의 이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주역의 가르침처럼 조심하고 신중한 것도 좋지만 그러나 한편에서는 압박감에 맞서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지혜나 지능보다 용기가 더 중요합니다. 삼성 이재용 회장도 하루빨리 그동안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더 용기를 내고 더 단호하게 결단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인사는 물론이고 파운드리 사업구조 재편 등 산적한 난제들을 하나씩 풀 수 있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