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분석

[추락하는 이커머스] SK가 '손절'한 11번가, '황금알'에서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하다

Numbers_ 2023. 12. 18. 20:18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던 국내 이커머스 업계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독주로 얼어붙은 이커머스 기업들을 분석해봅니다.

 

11번가 (사진=11번가).

 
11번가는 한 때 '한국형 아마존'을 꿈꿨다. 쇼핑의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엔 이커머스 업체 '거래액 1위'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을 비롯한 투자자(FI)들은 전도유망해 보이는 11번가에 약 5000억원을 쏟아부었다. 누구도 11번가의 목표인 상장(IPO)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이커머스 업계가 재편되면서 시장의 예측은 빗나갔다. 쿠팡의 독주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며 11번가는 경쟁력을 상실했고 2023년 9월까지 상장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1번가의 기업 가치는 4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모기업 SK스퀘어는 최근 11번가의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11번가를 '손절'했다.


11번가, SK의 '황금알'될 줄 알았지만..

 

2008년 서비스를 시작한 11번가는 1세대 오픈마켓 플랫폼이다. 매년 11월마다 '십일절'이라는 대규모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고객을 끌어모았다. 2009년 약 5%에 불과했던 11번가의 오픈마켓 점유율은 2014년 30%까지 치솟았다. 2017년에는 G마켓을 제치고 '거래액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해 11월 11번가가 기록한 거래액은 1조원에 육박했다. 

이듬해 SK텔레콤은 SK플래닛에서 11번가를 분리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고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로 구성된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SK텔레콤은 5년 이내 11번가를 상장시켜 '한국형 아마존'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마침 코로나19로 앞당겨진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은 적자에 허덕이는 11번가에게 '한줄기 빛'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코로나19와 쿠팡의 독주… 11번가의 추락

 

11번가 연간 실적 추이. (사진=박진화 기자)


하지만 코로나19는 11번가에게 오히려 '위기'로 작용했다. 2018년 5000억원의 투자를 받은 11번가가 인건비와 광고비를 크게 줄이며 IPO를 위한 재무 개선 작업에 나선 사이 쿠팡은 대규모 손해를 감수하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해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새로운 '유통공룡'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이커머스 업체의 무한 경쟁이 펼쳐졌지만 11번가는 오히려 힘이 빠졌다"면서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돈을 쏟아부은 경쟁자와 달리 재무 개선 작업에 나선 것이 패인"이라고 말했다. 11번가는 지출을 줄여 2019년 영업이익 14억원을 기록해 가까스로 흑자전환했지만 이듬해부터 또다시 적자 전환해 지난해 영업이익 -1515억원까지 미끄러졌다.

11번가는 '슈팅배송'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이는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2014년)에 비해 8년이나 늦은 시점이었다. 직매입 시장에서도 물류센터 확보가 늦어지며 쿠팡에 뒤쳐졌다. 2020년 미국 아마존과 손잡고 도입한 해외직구 서비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는 해외직구의 보편화와 알리·큐텐의 국내 시장 진입으로 효과가 미미했다.

 

SK에게 버려졌지만, 새 주인 찾기도 힘들어

 

결국 11번가는 '2023년 9월까지 상장'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2018년 2조 7500억원을 인정받았던 기업 가치는 사실상 5500억원 이하로 축소됐다. SK스퀘어가 FI들이 보유했던 지분 18.18%를 다시 회수하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콜옵션 행사 비용이 약 550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기업 스스로 11번가의 기업 가치를 5500억원보다 낮게 본 평가한 셈이다. 

11번가 지분 매각 권한은 FI로 넘어갔지만, 투자자들은 현 상황을 당혹스럽게 보고 있다. FI는 11번가를 5500억원 이상으로 매각하기만 하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 상황이지만, 11번가를 인수할 원매자 후보가 나타날 기미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앞서 아마존, 알리바바, 큐텐 등이 SK 측과 11번가 매각 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가운데 큐텐이 11번가 매각 가격을 1조원 이하로 협상했던 사실이 밝혀져 향후 매각에 성공한다해도 몸값은 1조원을 훨씬 하회할 가능성이 크다. SK가 당초 11번가를 놓고 그렸던 장밋빛 전망 속의 '잭팟'은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

SK의 11번가 '손절'은 SK에 대한 자본시장의 신뢰를 잃는 계기도 됐다. FI들이 당초 IPO 실패 시 미리 정한 가격에 지분을 팔 수 있는 '풋옵션'을 넣지 않은 것도 콜옵션 조항이 지켜질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SK가 계열사인 11번가의 경영권과 임직원을 포기하는 ‘악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SK가 11번가를 포기하면서 11번가는 만 35세 이상부터 희망퇴직을 받는 등 강도 높은 '몸집 줄이기'에 나서야 했다. 

한 관계자는 "설사 매각이 된다해도 쿠팡이 선점한 이커머스 시장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 sjlee@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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