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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정치와 경제 분리는 ‘어불성설’

Numbers 2024. 12. 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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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정치와 경제 분리는 ‘어불성설’

밸류업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도 물거품삼성 자사주 매입·두산 지배구조 개편 무위신속한 정치 로드맵이 경제 추락 ‘제동장치’매년 마지막 분기는 기업들이 한 해 사업성과를 되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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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도 물거품
삼성 자사주 매입·두산 지배구조 개편 무위
신속한 정치 로드맵이 경제 추락 ‘제동장치’


매년 마지막 분기는 기업들이 한 해 사업성과를 되돌아보고 내년도 계획을 수립하는 시기다. 불확실한 미래를 계획할 때 필요한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이 경제성장율 금리 환율 주가 등 거시경제 지표들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내일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경영현장의 푸념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침반과 지도 역할을 하는 사업계획을 해마다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실행한 후 성과를 평가해 보상을 한다. 아마도 지금 대부분의 회사는 내년도 경영계획에 대한 이사회 보고가 끝났거나 진행중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확정하거나 수립중인 사업계획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말이 해가 바뀌지도 않은 지금부터 벌써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이미 수립한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 기업도 많을 것 같다.

공동체의 가치 파괴적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지만 경제가 내상을 입고 정치와 사회시스템에 후폭풍을 몰고오는 힘은 비교적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타나지만 치명적이다. 정치와 경제는 샴쌍둥이(Conjoined Twins)로 서로 분리되는 즉시 생명력을 잃게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경제상황을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주가 금리 환율이다. 핵심 경제주체인 기업의 가치가 내장된 지표가 주가이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측정하는 돈 값이 금리와 환율이다. 이 지표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작금의 불법 비상계엄 정치 이슈로 인해 여러 경제현안을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이 올스톱 되거나 소멸돼 버렸다. 그동안 우리 금융시장의 최대 적은 정부라는 사실을 전 세계인의 뇌리에 다시한번 명확히 각인시켰다.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침탈하는 현장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온 세계인이 지켜봤다. 여행 자제국으로 지정된 나라와 정상적인 비즈니스와 외교관계를 이어갈 기업과 국가는 많지 않다. 올해 금융당국이 최고 흥행작이라 자평하는 기업 밸류업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날아갔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내년도 본격 시행을 앞둔 책무구조도의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우리금융에 대한 금감원 감사결과 발표는 내년 초로 연기됐다. 우리금융이 명운을 걸고 추진중인 보험사 인수와 증권사 본인가는 기약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독과점적 폐해를 시정하고자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제4인터넷뱅크 인가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시장과 금융당국 설득에 성공하며 거의 문턱을 넘으려던 두산그룹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개편 계획도 주가하락과 불확실성 증대로 중단됐다.

11월말 4150억달러 수준으로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외환보유액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간주되는 4000억달러 아래로 붕괴되기 직전이다. 노무라증권은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정국 안정이 지연되면 최근 1430원을 넘나들고 있는 환율이 내년 5월말경에는 1500원 선이 뚫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등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여러 비관적 전망이 분출하고 있다.

경제 펀더멘털 약화로 글로벌 증시 중에서 유일하게 디커플링(Decoupling)되고 있던 주가지수 역시 9일 연간 최저점(2360.58)을 터치하고 단기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로 평가되며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실망한 시장과 투자자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내놓은 10조원의 자사주 매수도 비상계엄이라는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경제는 정치를 떠받치는 토대다. 하지만 정상 작동되지 않는 정치시스템 혼돈의 무게가 과중해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정치경제가 한 몸으로 어우러져 유지되는 국가 공동체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치 불확실성을 최대한 빨리 제거할 수 있는 로드맵이 확정돼야 더 이상의 경제상황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지난 2022년3월8일 대선을 하루 앞두고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 공개 유투브 강연에서 대통령선거 이후 대한민국의 국운을 '화수미제(火水未濟)'의 점괘를 뽑아 설명하는 것을 우연히 본적이 있다. 화수미제는 주역 64괘 중에서 마지막 괘다. 평소 과학의 영역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도올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는 해석이 흥미로워 까맣게 잊고 있던 게 기억났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건넜을 즈음 그 꼬리를 적신다. 이로울 바가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강을 건넜다는 것은 일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리고 꼬리를 살짝 적신다는 것은 작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을 도모하는 자들이 거의 마지막에 작은 실수로 실패해 이로울 것이 없지만 그 실패가 국민들에게 이롭다는 것으로 도올 선생은 풀이했다. 최근 불법 비상계엄으로 말미암은 혼란스러운 상황과 앞으로 펼쳐질 대한민국의 앞날을 예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다시한번 시청했다.

비즈니스 관계로 맺어진 지인들과는 평소 만남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불문율이 우리사회의 상식처럼 자리잡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돼 고상하게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그럴까? 정치가 시장과 경제논리를 무시하고 위정자와 호가호위하는 세력들이 멋대로 시장과 경제에 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치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경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상상일 뿐이다. 이번 불법 비상계엄 상황을 겪으면서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12.3 불법 비상계엄 상황을 지켜본 세계인들은 두 번 놀랐다고 한다. 우선 글로벌 10위 경제대국으로 K팝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주적 문화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미개한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군사 쿠데타의 주범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것에 경악했다. 또 한번은 불법 군사 쿠데타를 2시간 30분만에 민주적 절차를 통해 무력화시키며 공동체 질서를 다시 세워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에 깜짝 놀라고 감동했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결국은 이겨내고 혼돈의 강을 무사히 잘 건너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혜를 나는 믿는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