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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일어날지 몰라…금융감독 공백 불가피
농협금융 정권교체까지 감안 이찬우 회장 발탁
우리금융 계엄·탄핵 최대 수혜…혁신인사로 돌파
#영국 매체 가디언은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레임덕(lame duck)’이 아닌 ‘데드덕(dead duck)’이라고 했지만 비상계엄 선언과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에까지 이른 지금의 대한민국은 데드덕을 넘어 무정부 상태로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법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자리에 오른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현재로서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 부총리는 이미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은 내각 전체에 대한 탄핵이며,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평생 경제관료를 했던 그가 비상계엄 사태가 우리 경제에 줄 엄청난 충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언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경제수석에서 경제부총리까지 윤석열 정부와 깊은 인연을 생각하면 한덕수 총리도 하지 못한 일을 그에게 기대하기엔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거대 야당은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인 최 부총리마저 탄핵할 것이고, 최 부총리가 빠지면 15인 이상~30인 이하로 구성돼야 하는 국무회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국무회의 기능마저 정지됩니다.
한덕수 총리에 이어 최상목 부총리까지 3인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면 6명으로 운영되는 헌법재판소가 내란죄 혐의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선고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헌재는 6인 체제에서는 심리는 가능하지만 선고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심하고 논의 중이라고 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리와 선고가 늦어져 내년 4월을 넘기면 그나마 있던 6명의 재판관 중 2명이 퇴임하게 돼 4명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때는 헌재 기능마저 완전 마비됩니다.
결국 데드덕·무정부 상태의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복귀할 수도 있고, 상상하기조차 싫은 4.19나 5.18 같은 내전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경제는 당연히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의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우리가 뽑은 정치인과 그들에 빌붙은 전문가 집단이 하루아침에 나라를 무너뜨렸습니다.
#금융은 규제산업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금융산업은 어느 업종보다 외풍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금융감독기관장이 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립니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주요 금융그룹은 늘 당국과 편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금융지주 회장이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에 선임됐다는 이유로, 때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살얼음판을 걸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양해 아래 선임된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조차 전임회장 관련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면서 관계가 최악으로 빠졌습니다.
대한민국의 무정부 상태가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는 부담이지만 금융계를 옥죄었던 정부와 금융당국의 힘이 무력화되고 금융감독도 한층 느슨해진다는 측면에서는 한숨 돌리게 된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실세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주요 금융그룹의 지배구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주 끝난 5대 금융그룹 경영진 인사에서 이런 사실들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확인됩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금융지주 경영진 인사를 놓고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은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입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및 계열사인 농협은행장 등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 강호동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후 이번에 제대로 본인 뜻대로 인사를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눈치 보지 않고 전임 이성희 회장 사람들을 모두 정리했고, 금융계열사 임원 중 70%를 물갈이했으며, 심지어 임기가 남아있는 CEO들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빈자리는 강 회장의 중앙회장 선임에 기여한 이른바 ‘선거캠프 출신 공신’이나 동향인 부산·경남 출신 인사로 채웠습니다. 농협캐피탈 부사장에서 하루아침에 농협은행장 자리에 오른 강태영 신임 행장을 비롯 퇴임한 지 2년이 지나 현직에 복귀한 송춘수 농협손보 대표, 김장섭 저축은행 대표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NH농협금융 주요 계열사 CEO 가운데 강호동 회장의 의중에 반하고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지난 3월 금감원과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엄호에 힘입어 우여곡절 끝에 선임된 윤병운 NH투자증권 대표에 불과합니다. 윤병운 대표도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지 알 수 없습니다.
강호동 중앙회장이 막판까지 고심한 것은 2년 임기가 끝난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임 인사입니다. 이석준 회장은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1호 인사로 영입된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입니다. 이석준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고 은둔하다시피 했지만 유임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습니다. 강호동 회장이 후임으로 선택한 인물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입니다.
이찬우 회장 내정자는 전임 임종룡 이석준 회장 등에 비해 중량감이 다소 떨어집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차관보에다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해 금융당국과의 관계 조율에 유리합니다. 게다가 부산 출신으로 합천 출신인 강 회장과 동향이고 전임 문재인 정부와 인연이 깊어 차기 정치권력 변화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됩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중앙회장을 ‘상왕’으로 모셔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거물급 인사들은 하나같이 피하는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찬우 카드는 그래도 괜찮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터지고 윤석열 정부가 데드덕 상태에 이르면서 최대 수혜자는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이라는 얘기가 파다합니다. 임종룡 회장은 탄핵 사태가 없었더라면 자리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금감원은 임종룡 회장 재임 중에도 전직 회장 관련 부당대출이 많았다는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이유로 임 회장의 퇴진을 다시 한번 압박하려 했다는 전언들이 나옵니다.
이복현 원장은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검사 결과 발표를 12월에서 1월로 미룬 게 ‘매운맛’으로 시장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며 벼르지만 추는 임 회장 쪽으로 기운 듯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금감원 발표가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복현 원장이 임종룡 회장을 당장 직무정지하지 않는 한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금융 사외이사들도 정찬형 이사회 의장과 윤인섭 이사 등을 중심으로 임 회장을 강력 지지합니다. 정찬형·윤인섭 이사는 우리금융 이사회의 핵심 축입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복귀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또 일어나겠지요.
임종룡 회장은 윤석열 정부의 레임덕·데드덕 상황 속에서 혁신적 인사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가장 주목받은 인사는 정진완 은행장 선임입니다. 우리은행 내부 규정에 따르면 2년 이상 부행장을 역임해야 차기 CEO로 선임한다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 있다고 합니다. 정진완 신임 행장은 이런 규정을 깨고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1년 만에 부행장에서 은행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정 신임 행장은 영업력이나 리더십 등에서 내부 평가가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은행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파격 승진이 가능했던 것은 임종룡 회장과의 오랜 인연 덕분입니다. 20년 전 임종룡 회장이 주영국대사관에서 일할 당시 우리은행 런던지점에서 근무했던 정진완 행장과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우리투자증권 남기천 대표와 임종룡 회장의 런던 인연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다시 오해를 무릅쓰고 같은 ‘런던파’인 정진완 행장을 선택한 것은 욕을 먹더라도 그룹 내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은행에 대한 확고한 장악을 위한 것입니다. 인사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진완 행장 인사 외에는 임기 만료된 계열사 사장을 모두 교체하고 특히 우리카드 대표에 현대카드 출신의 진성원씨를 선임한 것 정도가 주목받습니다.
이번 우리금융 인사에서는 CEO 급은 아니지만 눈여겨봐야 할 인사가 있습니다. 장광익 우리금융지주 브랜드 부문 부사장의 퇴진과 법무법인 대륙아주 출신 이동수 변호사의 윤리경영실장 영입입니다. 장 부사장은 임 회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하면서 큰 기대를 걸고 의욕적으로 영입한 외부 인재지만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사태를 거치며 문제를 수습하기보다 증폭시켰다는 지적을 받았고, 임 회장이 고심 끝에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장 부사장은 우리금융경영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검사 출신인 이동수 윤리경영실장 영입은 대형 금융사고가 두 번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는 임 회장의 절박함에서 나온 결단이지만 이명박·윤석열 등 보수 정부와 인연이 깊은 법무법인 대륙아주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금융권은 주목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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