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바로가기
2차 ICA 중재안 신창재 회장 재무적 부담 가중
낙관적 시나리오 가치평가도 사모펀드 투자손실 예상
금융지주 전환 등 성장 모멘텀 확보 대가지불 불가피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과 어피니티 등 사모펀드 컨소시엄간 풋옵션 행사가격 이견으로 6년 이상 이어진 다툼이 지난 19일 국제상공회의소(ICC,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의 국제중재재판소(ICA,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2차 중재 판결로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신창재 회장은 30일 이내에 외부평가기관 1곳을 선정해 공정시장가치(FMV, Fair Market Value)를 제출해야 한다. 어피니티 제시가격과 10% 이상 차이가 나면 어피니티측이 선정한 제3의 평가기관 3곳 중에서 신창재 회장이 선택한 1곳이 제시한 공정가치가 풋옵션(Put Option) 가격이 된다.
ICA 1차 중재안(2019년9월)은 신창재 회장이 가격산정절차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피니티측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가격(40만9912원)으로 풋옵션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ICA는 주주간의 풋옵션 계약은 유효하기 때문에 신창재 회장이 주주간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판정했다. 만일 2차 중재결과를 이행하지 않으면 중재결정문이 신창재 회장에게 도달한 시점부터 이행시까지 공휴일을 포함해 매일 20만달러(약 2억9000만원)씩 지연배상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신창재 회장과 사모펀드 모두 상당한 재무적 손실과 경영상의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우선 신창재 회장은 풋옵션에 응할 충분한 돈이 없다. 공정가치가 어피니티측의 최초 투자시 주당가격 이하로 제시되면 주주간계약(SPA)에 따라 둘 중 높은 가격인 ‘최초투자가격’(24만5000원)이 풋옵션 가격이 된다. 신창재 회장이 조달해야 하는 자금규모가 적어도 1조2000억원을 웃돈다는 의미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소송비용과 지연배상금만 증가한다. 신창재 회장이 과중한 자금부담을 줄이려면 교보생명 공정가치 평가액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자신이 경영한 회사의 가치를 평가절하해 기업가치 시장평가액을 줄이면 새로운 투자자 모집과 자금조달에 애로사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피니티측도 투자금을 되돌려 받으려면 펀드투자자의 당초 기대수익을 상당규모 포기하거나 심지어 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2년 9월 지분 24%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하며 평가한 주당 24만5000원을 공정가치 평가액이 밑돌면 사모펀드 투자자에게 약속한 기대수익율 보장은 커녕 원금도 날려야 할 판이다. 생명보험사에 대한 평가가치(AV, Appraisal Value)는 주로 ‘내재가치’(EV, Embedded Value)를 기준으로 ‘신계약가치’(VNB, Value of New Business) 등 영업권과 주주환원에 필요한 자본비용(CC, Cost of Capital)을 반영해 산출한다.
‘내재가치’는 가치측정 시점에 장부상에 이미 반영돼 있는 조정순자산가치(ANW, Adjusted New Worth)와 기존 보험계약 유지를 통해 장래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보유계약가치(VIF, Value of In-force Business)로 구성된다. IFRS17 회계에서 보유계약가치는 보유계약에 대한 미래수익의 현재가치로 계약서비스마진(CSM, Contract Service Margin)에 해당한다. 교보생명의 2024년 2분기 K-ICS기준 자기자본 총계는 13조 4461억원이다. K-ICS기준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신종자본증권(1조6074억원)을 차감한 조정순자산가치(ANW)와 보유계약가치(VIF)로 간주할 수 있는 조정준비금(4조7682억원)을 반영한 교보생명의 내재가치는 11조8387억원이다. 신계약가치(VNB)는 영업권 등 경영권 프리미엄을 평가하는 것으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 가정과 예측의 영역이다. 현재의 신계약 CSM이 일정기간 지속될 것으로 가정하거나 인수합병시 많이 활용되는 경영권 프리미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2024년6월말 기준 내재가치와 상반기 신계약CSM(7046억원, 5년간 유지 가정)을 감안해 추정한 교보생명의 평가가치(AV)는 11조6000억원 정도다. 시장평균 PBR 0.26배 기준으로 주당가치는 15만원 남짓이고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삼성생명 PBR 0.42배를 반영해도 24만원 수준이다. 상반기 신계약 CSM 10년 유지와 삼성생명과 동일한 시장가치를 가정해도 39만원 수준으로 어피니티측이 요구한 풋옵션 가격 40만9912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그동안 30% 이상의 높은 배당성향으로 이자수익은 벌충했을 수 있지만 2012년 9월부터 12년을 기다려온 어피니티 등 사모펀드 투자자 불만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로 2023년 8월 교보생명이 금융지주로 지배구조 전환과정에서 우리사주와 골드만삭스 등에서 매입한 자사주(2%)의 주당가격이 19만8000원이었다.
신창재 회장과 어피니티의 다툼을 겉으로 보면 풋옵션 공정가치 산출방법과 수준에 대한 이견으로 보인다. 하지만 계약시점에 각자 예상한 당초 상황인식에 대한 결이 다르고 그 차이가 점점 확대된 것이 더 근본원인이다. 어피니티가 제시한 주당가격 40만9000원이 국내 생명보험시장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전망을 합리적으로 반영된 수준인지는 의문이다. 사모펀드의 국내 보험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전망이 낳은 투자판단 실패일 가능성이 크다.
신창재 회장은 그동안 주주간계약(SPA)에 명시된 공정가격 산출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주간계약에는 양측이 제시한 가격차가 10% 이내면 두 가격을 평균해 풋옵션 행사가격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10% 이상 벌어지면 인피니티측이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선정해 그 중 1곳을 신창재 회장이 선택하면 그 기관의 평가가치를 풋옵션 가격으로 적용해야 하는데 이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2차 ICA 중재안은 주주간계약서에 명시된 신창재 회장의 가격산정절차 의무이행을 강제하는 판결한 것이다. 비즈니스 거래는 거래상대방 각자의 낙관적 전망이 상호 공유돼야 계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세상사는 당초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시장경제에서 상식과 합리성이 작동되지 않으면 시장은 늘 우리를 배신한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은 가업으로 물려받은 회사를 나름 탄탄하게 잘 성장시켜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늘 개인기업 오너로서 원초적 고민거리였던 낮은 지분율의 한계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큰 장벽이었다. 어피니티측이 인수한 대우인터내션널(현 포스코인터내션널) 지분은 교보생명 창업주가 광화문 사옥을 건축할 때 대우그룹에 건축비 명목으로 양도한 지분의 일부로 알려진다. 태생적으로 취약한 지분과 자본력을 사모펀드 자금을 동원해 보완하는 과정에서 신창재 회장이 고심 끝에 선택한 전략적 수단이 자신의 경영안정 걸림돌이 된 셈이다.
2024년 3분기 교보생명 부채는 전년동기대비 18조7391억원 증가하고 자본은 2조8046억원 감소했다. 채권과 외화자산의 평가손실이 3조1215억원으로 금리하락과 환율변동 등 시장변동성 확대에 취약한 국내 생보사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IFRS17 시행으로 당기순이익은 증가했지만 시장금리의 추세적 하락과 보험업 성장정체로 악화되는 경영환경에 더하여 사모펀드와 다툼으로 경영권 방어와 재무적 부담이 가중돼 교보생명이 더욱 힘든 국면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특히 교보생명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 모색을 위해 추진중인 금융지주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전략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신창재 회장이 경영권 안정을 유지하고 그룹 성장전략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어피니티 등 사모펀드를 내보낼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신창재 자신과 어피니티측 지분을 모두 담보로 내놓고 금융기관 차입을 하거나 아니면 어피니티측의 지분을 대신 인수할 또다른 투자자를 물색해야 한다. 물론 신창재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면 국내 금융지주 등 유력한 의외의 인수자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신창재 회장이 위기를 잘 견디고 민족기업 교보생명이 안정적인 경영상태를 회복하며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Perspect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종면칼럼] ‘무정부’ 시절의 금융지주 인사② (4) | 2025.01.02 |
---|---|
[박종면칼럼] ‘무정부’ 시절의 금융지주 인사① (3) | 2025.01.02 |
[데스크시각] 삼성·SK에 'LG CNS 상장'이 중요한 이유 (1) | 2024.12.27 |
[박종면칼럼] 한덕수의 ‘계지재득’(戒之在得) (1) | 2024.12.23 |
[CFO 리포트] 정치와 경제 분리는 ‘어불성설’ (2) | 2024.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