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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정치와 관료는 4류, 기업만 일류
내달 故 이건희 삼성 회장 ‘베이징 발언’ 30년경제 선진국에 비상계엄…정치·관료 ‘뒷걸음질’삼성 이재용 글로벌 기업들과 中 시진핑 면담현대차 정의선 백악관서 ‘민간 경제대통령’ 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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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故 이건희 삼성 회장 ‘베이징 발언’ 30년
경제 선진국에 비상계엄…정치·관료 ‘뒷걸음질’
삼성 이재용 글로벌 기업들과 中 시진핑 면담
현대차 정의선 백악관서 ‘민간 경제대통령’ 役
SK 최태원 “한국정치 초불확실성 최대 리스크”
벌써 30년 전의 일이네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던 그 유명한 ‘베이징 발언’ 말입니다.
요즘 3~4세대 오너 기업인들과 달리 평소 정치권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건희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4월 13일,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폭탄 발언을 합니다. 당시 삼성의 부산 자동차 공장 건설이 김영삼 정부의 비호를 받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 경쟁력은 2류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베이징 폭탄 발언 이후 꼭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 회장은 이제 고인이 됐습니다. 그 사이 대한민국 정치와 관료, 기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는 여전히 그대로 4류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4류보다 더 퇴보했습니다. 관료도 정치인들을 닮고 동조화돼 4류로 떨어졌습니다.
유일하게 퇴보하지 않고 발전한 것은 기업입니다. 이건희 회장 발언 뒤 3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 일류 기업이 됐습니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가운데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1인당 국민총소득 기준 세계 6위의 선진국 자리에 올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정치를 미얀마, 필리핀, 에콰도르 수준으로 후퇴시켰습니다. 모두 최근 10년 새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라입니다. 비상계엄 선언만이 아닙니다.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더 경악스럽습니다. 대통령이 관저에서 경호관 ‘인간 띠’와 철조망을 동원해 정당한 체포를 거부하면서 농성에 나서고, 여기에 여당 의원들이 가세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정통 보수 여당이 극우 세력과 손잡고 극우 목사·유튜버 등의 지시에 따르기까지 하는 현실입니다. 브라질의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처럼 극우 출신 인사가 우리나라 보수 정권을 대표하는 인물로 나설 수도 있습니다. 브라질의 정치가 한국 정치의 모델입니다.
문제는 대통령과 여당만이 아닙니다. 국회에서 17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탄핵 발의만 30번 했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과 9전 9패의 성적표를 받고도 또다시 탄핵 발의를 준비합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4류가 되고 저급화된 데는 불통과 독단으로 일관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국회 권력을 쥔 민주당의 오만과 폭주도 원인입니다.
정치가 흔들리면 그래도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건 전문 관료들입니다. 문제는 관료 집단까지 점점 정치권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관료의 정치화’는 고위 관료들에 대한 탄핵이 일상화된 탓도 있지만, 모든 정책 판단과 결정까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다는 점에서 폐해가 큽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재의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계속 거부합니다. 정통 관료 출신인데도 하는 짓은 정치인 뺨칩니다. 헌재 기능이 마비되어 국가가 무정부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도 오로지 정치적으로만 행동합니다. 관료들이 정작 할 일은 하지 않고 정치인처럼 행동하다 보니 미국 에너지부(DOE)가 우리나라를 ‘민감국가’로 지정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사전에 챙기지 않습니다.
‘관료의 정치화’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이고, 사법부가 4류가 되는 것입니다. ‘사법의 정치화’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1심과 항소심 재판이 아주 잘 보여줍니다.
사법의 정치화 가운데 제일 우려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정치화’입니다. 헌법재판소까지 정치화돼 정치나 관료처럼 4류로 추락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통제 불능이 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뒤 100일이 넘고, 헌재의 탄핵 심판 변론이 끝난 뒤 한 달이 지났음에도 8인의 헌법재판관들이 선고를 못 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윤석열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은 커집니다. 경제 선진국이자 문화 선진국 대한민국에 4·19나 5·18 같은 지옥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던 고 이건희 회장의 베이징 발언 후 30년이 흐른 지금 일류가 된 것은 기업뿐입니다.
지난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독일, 영국 등 세계 각국 CEO 30여 명을 만나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이 초청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합니다. 미국의 퀄컴, 독일의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덴마크 해운기업 머스크,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 등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포함됐습니다. 두 기업의 글로벌 위상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상도 그렇지만, 더 놀라운 것은 현대차와 정의선 회장이 요즘 미국에서 보여주는 활약상입니다.
지난 24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210억 달러(약 31조 원)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기업인이 세계 정치의 심장인 백악관에서 현직 미국 대통령과 ‘미국 연방 서열 3위’인 하원의장과 함께 선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입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 자리에 선 외국 기업인은 50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1000억 달러 투자를 밝힌 대만 TSMC의 웨이저자 회장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로 대한민국 정치인이나 관료 중에 누구 한 사람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은커녕 전화 통화조차 못 하는 현실에서, 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을 대신해 총대를 메고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사실상의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 정 회장이 ‘민간 경제 대통령’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나 대만의 TSMC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임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차그룹이 2023년 8월부터 해외 대관 조직인 ‘글로벌 폴리시 오피스’(GPO)를 꾸려 미국 정치권을 상대로 꾸준히 대외 활동을 벌인 결과입니다.
현대차와 정의선 회장이 미국 투자계획 발표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와 결속을 다지는 것은 단순히 기업 생존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일본이나 대만도 그렇지만, 북한·중국·러시아의 군사 위협 앞에서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높은 국가적 현실을 고려하면 안보 차원에서도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선택입니다.
정의선 회장은 백악관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 참석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앨라배마(현대차 36만 대)와 조지아(기아 34만 대)에 총 70만 대의 생산 설비가 있는데, 여기에 이번에 30만 대 생산시설을 완공함으로써 미국에서만 총 10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췄습니다. 2005년 앨라배마주에 현대차 공장을 가동하며 현지 생산에 나선 지 꼭 20년 만입니다.
현대차·기아는 메타플랜트 준공과 동시에 20만 대 규모의 새 공장 건설에도 나서 미국에서의 생산능력을 120만 대로 늘릴 계획입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판매량이 171만 대였음을 감안하면, 판매량의 70%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수입 자동차와 주요 부품에 대해 4월 2일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사실을 고려하면, 현대차의 선제적 대응이 매우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2일부터 모든 관세가 발표되는 것은 아니며, 많은 국가의 관세를 유예할 수도 있다”고 밝힌 점에 비춰보면 정 회장의 대규모 투자 약속 덕분에 우리나라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정의선 회장은 “관세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차 같은 하나의 기업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관세 정책이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관세 협상은 정부 주도 아래 개별 기업도 해야 하므로 4월 2일 이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관세 전쟁은 단판 승부가 아닌 장기전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과 정부가 ‘원팀’을 구성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기업과 함께 뛸 일류 정치인도, 일류 관료도 대한민국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SK 최태원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초불확실성이 기업 경영의 최대 리스크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는 ‘수퍼 언노운’(Super Unknown) 상태가 계속되면 기업이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4가지 폭풍’으로 세계 통상질서 변화,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에다 한국 정치를 꼽았습니다.
정의선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공통적으로 요구한 것은 그들과 함께 뛸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의 불확실성 제거입니다. 대한민국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이처럼 분명합니다. 4류로 전락해 버린 대한민국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에 부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지속되고 대한민국호는 추락하고 말까요. 기업 혼자의 힘만으로는 결코 일류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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