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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깅노트] 이니텍 매각으로 '세력 놀이터' 만든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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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KT인데 이런 식으로 딜을 진행해도 되나요?"
그동안 수많은 인수합병을 지켜봤다는 한 업계 관계자는 이니텍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물음표를 떠올렸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석연치 않다며, KT DS의 매수자 검증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과거 공기업 문화가 아직 다 지워지지 않은 KT의 상황상 인수자 선정에 정치적인 배경도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전했다.
KT DS가 공식적으로 이니텍을 시장에 내놓은 건 지난해 10월이다. 당시 KT DS는 이니텍 지분 57% 매각을 위해 원매자들을 대상으로 복수의 인수의향서를 받았다. 이후 매도 측은 건설사가 컨소시엄으로 들어간 잠재적 투자자와 우선적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다만 이 원매자는 주요 투자자였던 건설사의 의향이 시들해지면서 자금을 증빙할 수 없었고 우선협상자의 몫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최종적으로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은 로이투자파트너스와 사이몬제이앤컴퍼니 컨소시엄이었다. 시장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로이투자파트너스는 2013년 설립된 다담인베스트먼트를 전신으로 해 비교적 잘 알려진 투자사였지만, 사이몬제이앤컴퍼니는 지난해 5월 설립된 신생 하우스로 트랙레코드가 전무하다는 점에서다. 대형 사모펀드(PE)들도 펀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생 PE가 600억~800억 규모의 딜을 소화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도 봤다. 이니텍 입찰에 참여했던 일부 원매자는 "거래 종결(딜 클로징)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매각 측에 우려도 전달했다.
실제로 우선협상자 선정 이후에도 로이·사이몬 컨소시엄은 인수 자금을 증빙하지 못하는 등 조달에 난항을 겪었다. 이에 서울PE, 유니베스트투자자문과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달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하며 컨소시엄은 와해됐다.
문제는 컨소시엄에 균열이 생기면서 나왔다. 우선협상자인 사이몬제이앤컴퍼니에 정체 불명의 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반면 로이·사이몬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개운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화살은 KT로 향하고 있다. KT DS는 매수자 검증을 철저히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다 매각에만 초점을 맞춰 매수자 검증 없이 절차를 진행해 세력들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기존 주인으로서 해야할 책무다. 단순히 비싼 값을 받아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주인이 자금 조달은 확실한지, 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KT DS가 진행한 이니텍 매각 과정에서는 이런 고민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모습이다.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은 달라진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주인을 잘못 만나 무너지는 기업이 적지 않다. 기업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킨 뒤 내부 자산을 빼돌리는 먹튀 수법도 비일비재하다. 숨어 있는 누군가가 바지사장을 내세워 횡령하는 경우도 있다. 그 피해는 당장 기업의 임직원과 소액주주가 짊어져야 한다.
이니텍은 1000억원의 현금을 갖춘 데다 금융보안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다. 이런 강점 덕분에 입찰에서는 사모펀드 등의 투자사가 아닌 일반 기업인 전략적투자자(SI)를 포함한 다수의 매수인이 관심을 보였다. 이니텍의 미래는 아직 KT의 손에 달려 있다. 시장은 KT DS가 마지막까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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