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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매트릭스] ⑥ '제2의 금호' 우려…안정적 '현금 보유고' 버팀목

Numbers 2023. 10. 5. 17:16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HMM(옛 현대상선)은 국내 최대 선사로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매각을 추진하는 산업은행은 하림그룹·LX그룹·동원그룹으로 입찰적격후보(숏리스트)를 추렸다. 이런 가운데 자금 동원력이 핵심 관건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후보 기업들의 현금 자산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결국 차입이나 재무적투자자(FI) 확보 등을 통한 추가 자금 유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 우려가 커지는 만큼 FI 참여에도 신중함이 요구된다. 과거 대우건설과 대한통운(현 CJ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무리하게 확장에 나섰다가 유동성 위기를 맞이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 사례가 되풀이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각각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재계 순위가 순식간에 11위에서 7위로 오르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대규모 차입을 추진할 정도로 무리했던 인수는 결국 독배로 작용했다. 당시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에 6조6000억원, 대한통운은 4조1000억원을 각각 투입했다.

대우건설 인수 과정에서 차입을 일으키면서 대규모 이자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자금의 40%를 신규 계열사인 대우건설이 부담할 정도로 실탄을 끌어 모아야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재무구조 악화 수순을 밟았고 전체 시공능력평가액도 떨어진 가운데 2008년 금융위기가 결정타를 날렸다.

금호그룹은 각종 무리수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컨소시엄 일원으로 참여한 18개 FI를 통해 3조원을 조달했다. 여기에는 산업은행도 FI로 참여하면서 발을 걸쳤다. 이 과정에서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주가가 3만4000원을 밑돌 경우 FI로부터 주식을 되사주는 풋백옵션(PBO)을 부여했다.

PBO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우건설 주가가 하락하면서 골칫거리로 남았다. 이는 금호사태 유동성 위기에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호그룹이 PBO 이슈 해소를 위해서는 3조5000억원을 일시에 상환해야 했다. 대우건설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면서 유동성 확보에 나섰지만 오히려 기업가치를 끌어내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2009년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자본잠식 상태로 떨어졌고 이듬해인 2010년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체결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 경영권은 산업은행에 넘기며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사례로 남았다. 이후 금호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금호고속, 금호렌터카, 금호생명 등 계열사들을 줄줄이 매각했다. 2011년에는 대한통운도 CJ그룹에 넘겼다.

산업은행은 금호그룹으로부터 대우건설을 인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풋옵션을 보유한 FI와 지리한 협상을 가져야 했다. 이후 2018년 호반건설에 매각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 결국 10년 이상 정상화를 진행하고 2021년에야 중흥건설에 매각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무리한 인수의 후유증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HMM 민영화를 추진 중인 산업은행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하림그룹과 동원그룹, LX그룹으로 숏리스트를 선정했지만 자체 자금력에 의문 부호가 붙는다. 이에 후보 기업들은 실사 기간 동안 금융권 파트너 확보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HMM 몸값을 마련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하림그룹은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을 우군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IB(투자은행) 업계는 HMM의 민영화와 관련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한 점은 매력적이나 해운업 특성상 장기적 관점에서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버텨야 한다는 리스크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인수 이후 우려와 관련해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갖춘 만큼 제2의 금호사태와 결이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막대한 현금을 활용해 차입매수(LBO)를 추진할 가능성도 일부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이 사이클을 타는 산업인데다 HMM 자체도 규모가 크고 공적자금까지 들어간 곳이다보니 투자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면서 "다만 HMM 자체가 현금이 많아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 시너지가 높은 기업이 무리하지 않고 인수하면 금호사태처럼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필호 기자 nothin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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