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총수 취임 3년차인 지난해 역대급 성과를 내며 새로운 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핵심 계열사 현대자동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를 보였고 전기차 부문에서는 GM과 포드를 제치고 판매량 기준으로 첫 2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안정적 수익 성과를 토대로 수소 생태계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체제 전환이라는 카드를 과감하게 꺼냈다.
정 회장은 실적 개선세를 통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선순화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현대차그룹은 오랜 기간 순환출자 고리 해소 문제가 꼬리표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배력 강화에 필요한 현금 확보 차원에서 계열사 기업공개(IPO)와 배당 확대 등의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총수 4년차' 정의선, '청사진·조직' 변화 속도
정의선 회장은 미래 비전과 조직 구조와 관련해 빠른 변화의 발걸음을 가져가고 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 이하 CES) 2024'의 참가 주제로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을 내세웠다. 그동안 전기차에 밀려 소외됐던 수소 사업에 다시 힘을 주겠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
정 회장은 "수소 기술은 저희 세대가 아닌 후대를 위해 준비해 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기존 연료전지 브랜드 ‘HTWO’를 그룹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확장하는 'HTWO 그리드(Grid) 솔루션'을 내놓았다. 2035년까지 연간 수소 소비량을 300t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환도 꾀했다. 여기에는 정 회장이 2022년 인수 당시부터 직접 챙긴 포티투닷(42dot)이 중심을 잡고 있다. 정 회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송창현 현대차·기아SDV 본부 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는 SDV 기반 SDx(소프트웨어로 정의된 모든 것) 사업의 중책을 맡았다. 그는 이번 CES에서 키노트 연설을 맡으며 그룹 내 입지를 증명했다.
정 회장은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R&D) 조직을 중심으로 순혈주의 타파에 나서는 진통도 감내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용화 최고기술경영자(CTO) 사장이 취임 6개월만에 물러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그동안 소프트웨어 R&D 부문은 김 사장과 송 사장으로 나뉘어진 채 운영됐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 사장의 퇴진과 함께 SDx 사업 체제는 송 사장 중심으로 정리가 되는 모양새다.
정 회장이 그룹의 과감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으로 실적 개선세가 뒷받침하는 오너십 안정화를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판매법인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합산 연간 판매실적은 전년 대비 12.1% 늘어난 165만2821대로 최다 판매 기록을 새롭게 세웠다. 미국 자동차 평가 기관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는 GM과 포드를 제치고 판매량 기준 첫 2위에 올랐다.
이는 수익 증가로 이어졌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으로 전년 대비 14.1% 늘어난 162조6000억원, 영업이익은 59.1% 증가한 15조6000억원을 각각 전망했다. 물론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전기차 수요 둔화를 비롯해 러시아 공장 매각,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 제외 등 각종 이슈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순환출자 해소' 여전히 숙제…'현금 확보' 방안 관심
정의선 회장은 미국 시장 판매 성장과 함께 실적 개선세를 토대로 그룹 경영 체제에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배체제를 확고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정 회장은 2020년 10월 총수 자리에 오르며 경영권을 승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상당 규모의 지분은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분을 온전히 승계하기 위해서는 내야하는 막대한 세금에 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게다가 오랜 기간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을 따라다니는 '순환출자' 해소 문제가 여전하다. 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출자 고리로 이뤄졌다. 정 회장이 보유한 주요 계열사별 지분 규모를 살펴보면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현대자동차 2.65%, 현대모비스 0.32%, 기아 1.76%를 기록했다. 때문에 낮은 지분율에도 순환출자를 활용해 지배력을 가져가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 회장은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했다. 앞서 2018년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았다. 현대모비스를 부품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나눠 모듈·AS부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치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2022년 1월에는 사모투자펀드(PEF) 칼라일그룹과 손을 잡았다. 칼라일은 오너인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인수하고 3대주줄로 올랐다. 당시 이사 1인을 지명하고 정 회장이 지분을 매각할 때 함께 팔 수 있는 ‘태그얼롱(Tag-along)’ 조건도 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사익 편취 규제 이슈를 덜었고 지배구조 개편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딜을 이끌었던 이규성 전 칼라일 최고경영자(CEO)가 그해 8월 돌연 사퇴하면서 협력 관계에도 불확실성 요인이 불거졌다.
이런 가운데 정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현금 확보 수단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배당을 꼽을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 등 핵심 계열사의 지난해 실적 개선세는 오너가의 현금 마련 수단인 계열사 배당 확대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간 현대차 연간배당 총액을 살펴보면 2020년 7855억원에서 2021년 1조3007억원으로 65.6% 증가했다. 이듬해인 2022년 1조8304억원으로 40.7% 늘었다. 이를 통해 정 회장은 그룹 계열사로부터 10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계열사의 IPO도 또다른 승계자금 마련의 통로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에 성공하면 정 회장은 구주 매출을 통해 최대 40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쥔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수요예측 결과가 부진하면서 결국 2022년 1월 철회 결정을 내렸다. 현대엔지니어링의 IPO는 훗날을 기약하는 상황이지만 이처럼 IPO를 활용하는 방안은 다른 계열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필호 기자 nothin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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