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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OCI 통합] 머리 2개 달린 지주사...그들은 왜 '1+1'을 선택해야 했나

Numbers 2024. 1. 17. 09:53

(사진 좌측부터)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사진=각 사)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서로를 선택했다. 여기에 한미약품은 자금, OCI는 미래 먹거리를 얻었다. 이종 그룹간 통합을 하게 된 근원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의 의견을 종합하면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은 창업주가 떠난 이후 오너가의 지배력이 불안정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2020년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명예회장이 타계한 이후, 부인인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임성기 명예회장의 세 자녀는 상속세로 인한 지배력 약화 우려에 시달렸다.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그룹 오너가의 상속세 총액은 총 5400억원에 이르렀으나 한마디로 이 세금을 낼 돈이 없었다.

송영숙 회장과 세 자녀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2021년 서울 잠실세무서에 상속세 납부를 조건으로 총 12.29%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담보로 잡혔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한미약품은 지난해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으나, 라데팡스가 매입 자금을 구하지 못해 이 거래는 중단됐다. 회심의 해결 카드가 무위에 처할 무렵, 라데팡스가 해결사로 나서 OCI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사이언스 오너가 담보 현황. (자료=전자공시시스템)


OCI 측 또한 창업주의 손자인 이우현 OCI 회장의 지배력이 약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회장의 OCI홀딩스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고, 이 회장의 작은아버지인 이복영, 이화영의 지분이 OCI홀딩스 지분율 약 15%에 육박한다. 지주회사 전환 이전의 지분율은 이보다 더 적었다. 늘 경영권 위협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는 우려가 꼬리표처럼 뒤따랐던 곳이 바로 OCI그룹의 이우현 회장이었다.

즉, 양측 모두 약한 지배력을 보완해 줄 세력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이해타산이 맞아 양측의 통합이 이뤄졌다는 것이 두 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두 그룹 모두 미래 먹거리를 얻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신약 개발 의지는 강력하지만, 개량신약을 제외하고 신약 허가(NDA)를 받은 제품은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가 유일하다. 그 외의 제품들은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에게 기술 수출 형태로 전달됐다. 이러한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출구엑시트 전략’은 기술 수출료를 챙기는 실리적인 면도 있지만, 대규모 임상3상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한 면도 있었다. OCI그룹과의 통합을 통해 자금 마련 창구를 늘리고 안정적인 신약 개발이 가능해지는 실리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OCI그룹은 폴리실리콘 등 화학소재 제조 개발이 주력인 그룹이다. 태양광 불황을 겪으면서 OCI도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 회장 또한 화학·소재산업은 성장성이 낮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OCI그룹은 2018년 부광약품 지분을 매입하기 이전부터 바이오 분야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P사 등의 지분 매입을 검토하고 있던 OCI는 최종적으로 부광약품 지분을 매입해 조인트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이후 2022년 부광약품 지분을 재매입하며 부광약품을 아예 인수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경영 경험이 전무했던 OCI그룹이 부광약품을 인수한 후 부광약품은 적자를 지속하면서 사세가 기우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부광약품이 아닌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과 손잡는 방안을 강구하던 중 라데팡스의 중개와 모친간 인연이 더해져 이번에 한미약품과의 통합까지 추진하게 됐다.

두 그룹의 통합은 외부적인 요인을 제외한다면 당분간 공고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서로 간의 백기사 역할과 양측의 실리 추구로 인해 서로를 마다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업종이 전혀 다른 두 그룹의 결합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이와 같은 명분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상속세 문제로 아예 그룹을 통째로 매각하는 일부 다른 중견기업과 달리 한미약품그룹은 그룹을 유지한다는 대원칙 아래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을 선택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합병'이 아닌 '통합'의 형태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이유는 절차의 효율성 때문이라는 게 두 그룹의 설명이다. 법률적 용어인 '합병'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면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통합'이라는 법적 구속력이 약한 방식을 취하면 간단한 '지분맞교환'과 같은 거래만으로 문제를 간명하게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일부 주주들의 반발은 두 그룹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최근 부각되고 있다. 당장 탱크식으로 밀어부친 '통합' 자본거래가 과연 적절한 절차를 거쳐 성사된 것인지 일부 주주들은 따지기 시작했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만을 위해 대그룹의 명운을 바꿀 자본거래가 단행됐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법적 책임도 뒤따를 수 있다.

두 그룹은 이러한 반발 시나리오도 사전에 충분히 예상했다고 한다. 양측간 매우 강한 '주주간계약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방증이다. 이사회를 동수로 구성하고, 이에 대한 강한 구속력을 부여하는 주주간계약서인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 관계자는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했고 충분한 준비를 해 놓았다"며 "두 그룹이 내세우는 명분대로 통합 작업이 무리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안치영 기자 ac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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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OCI 통합] 머리 2개 달린 지주사...그들은 왜 '1+1'을 선택해야 했나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서로를 선택했다. 여기에 한미약품은 자금, OCI는 미래 먹거리를 얻었다. 이종 그룹간 통합을 하게 된 근원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의 의견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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