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화학이 지주회사 효성을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 카드를 꺼냈다. 자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이 수월치 않자 상대적으로 곳간 사정이 여유로운 모회사가 지원에 나선 양상이다.
통상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서 발행가액을 결정할 때 시가 대비 10~30%의 할인율을 내걸지만 효성은 할인 없이 신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리스크를 감내하고 자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부채비율 8937%' 효성화학, 효성까지 나선 배경은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은 이달 12일 5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최대주주인 효성에게 신주 60만1685주를 배정하는 유상증자로 납입일은 이달 23일이다.
유상증자의 표면적인 이유는 운영자금 확보다. 다만 실질적인 목적은 취약해진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고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 조달의 성격으로 파악된다.
효성화학은 수년간 효성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혀 왔다. 올해 2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적자에 부채비율은 8937.6%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 6월 신용등급이 A0에서 A-로 하향 조정되면서 그간 주요 자금조달 방안이었던 회사채, 기업어음(CP) 발행도 여의치 않아진 상황이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던 베트남 사업이 부진했던 탓이다. 효성화학은 2018년 효성에서 분리된 이후 2021년까지 베트남 법인을 중심으로 프리프로필렌(PP)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위해 회사가 투입한 금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최대 수입국 중국의 수요 감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베트남 법인에 현금출자, 채무보증 등 각종 지원을 진행했던 효성화학은 부채비율이 불과 5년 만에 8500%p 급증했다.
이에 효성화학은 지난달 7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표면이자율만 8.3%에 달하는 데다 2년 뒤 연 3.5%, 5년 뒤 연 4.5%의 스텝업 조항까지 걸려있어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다. 다만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신종자본증권 성격상 재무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부채비율이 임계치를 넘어선 회사로선 특단의 조치였던 셈이다.
현금성자산 1711억…투자 원동력
이 같은 상황에서 실시하는 이번 유상증자는 자회사 혼자서 위기를 돌파하기 어려워 보이자 지주사가 본격적인 자금지원에 나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실제 효성이 보유 중인 현금성자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1711억원에 달한다. 효성은 지주사업과 화학사업(효성화학) 외에도 △무역·섬유제조(효성홀딩스USA) △펌프 제조(효성굿스프링스) △정보통신(효성티앤에스) △수입차 딜러(에프엠케이) 등 사업을 왕성한 수익사업을 펼치는 자회사들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상반기에만 1조706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존 발행주식총수(319만126주)의 18.9%에 해당하는 적잖은 규모의 유상증자임에도 할인율이 0%로 적용돼 눈길을 끈다. 통상 제3자배정은 유상증자는 기준주가에서 10~30%의 할인율이 적용된다. 투자자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할인율이 0%일 경우 투자자는 발행사의 주가가 하락했을 때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효성은 비용 부담을 감내하고 자회사의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의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효성 관계자는 “효성화학의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진행되는 유상증자”라며 “할인율이 0%인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수현 기자 clapnow@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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